뻐꾹, 뻐꾹... 뻐꾸기가 울었다.
유월 그 어느 날, 강원도 영월 장릉에 들어서자 구슬픈 뻐꾸기 울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뻐꾹, 뻐꾹, 뻐꾹... 노송(老松)에 둘러싸인 장릉의 두터운 적막을 깨뜨리는 뻐꾸기 울음소리는 아득한 역사 저편으로 나그네를 이끌었다.
사서(史書)에 세조 찬위(世祖 纂位)로 기록되는 비극의 역사는 조선왕조 500년에 가장 성군으로 손꼽히는 세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에게는 모두 18명의 왕자가 있었는데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은 글 잘하고 효성이 뛰어났지만 병약한 몸이었다. 비극의 역사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병약했던 문종이 겨우 열두 살의 어린 세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정국은 술렁였다. 야심을 가진 대군들이 다투어 세력을 확장했고, 그 중에서도 포부와 수단이 남달랐던 수양대군은 정인지, 한명회, 권 탁 등과 결탁해 거사를 계획했다. 일찍이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예감했던 문종은 영의정 황보 인, 좌의정 남 지, 우의정 김종서 등에게 세자의 보필을 명했고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등에게도 뒷일을 부탁했다.
유능한 무인 30여명을 포섭하여 기회를 엿보던 수양대군은 먼저 단종을 보필하던 3공(公) 가운데 지용을 겸비한 김종서를 제거하고, 차례로 반대파 중신들을 없앤 뒤 단종을 하위시키고 실권을 잡았다. 이에 세조 2년(1456) 성삼문, 박팽년, 이 개, 하위지, 유응부, 유성원 등 세종의 신임이 두터웠던 집현전 학자들은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를 반대하고 단종 복위를 꾀했다. 그러나 김 질의 배신으로 복위를 모의했던 신하들은 끔찍한 참형을 당하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
후세사람들은 이 때 참형당한 성삼문, 박팽년, 이 개, 하위지, 유응부, 유성원 등을 사육신이라 부른다.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은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서 그 한많은 유배살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해 9월 금성대군이 다시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단종은 서인이 되고, 세조 3년(1457)에 사사되어 17세 어린 나이로 생을 마쳤다.
영월땅에 들어서면 그 서러운 역사가 가는 곳마다 발길에 밟힌다. 창살없는 천연감옥으로 어린 왕을 처절한 고독에 몸부림치게 했던 청령포와 단종이 숨을 거둔 관풍헌, 한많은 삶을 마감하고 고단한 몸을 눕힌 단종이 잠든 장릉(莊陵),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목숨을 잃은 사육신의 위패가 모셔진 충절사 등 곳곳에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단종애사가 발길을 잡는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한 청령포는 영월읍에서 서남쪽으로 약 4km 떨어진 곳에 있다. 3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였고, 다른 한 면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가로막힌 청령포는 배없이는 한 발짝도 빠져나갈 수 없는, 창살없는 천연감옥이다. 하늘을 가린 빼곡한 소나무로 우거진 그 곳에는 망향탑과 노산대, 유지비, 청령포 금표비, 관음송 등이 남아 있다.
관음송은 주위의 다른 소나무에 비해 군계일학처럼 우뚝 솟아 있다. 수령이 600여년으로 단종 유배 당시 그 때의 생활을 지켜보았을 것이라 해서 '볼 관'(觀)자를 쓰고 단종의 오열을 모두 들었다 해서 '소리 음'(音) 자를 써 관음송이라 한다.
단종이 잠든 장릉은 두터운 그늘을 드리운 노송이 묘역을 에워싸고 있다. 잘 단장된 묘역을 걸어 들어가면 단종비와 충신단, 충신각, 영천, 엄흥도정려각, 박충원기적비 등이 나온다. 단종의 무덤은 산 언덕에 위치해 있다. 팍팍한 산길을 5분쯤 오르면 초라한 석인과 석물에 둘러싸인 외로운 무덤 하나가 기다린다.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아 세상을 바라보면 아등바등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이 더없이 허허롭다.
*별미
그랬다. 그 날 그곳에서 더없이 신산해진 가슴으로 찾은 곳은 영월의 소문난 맛집인 장능보리밥집(033-374-3986). 끊임없이 울어대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타는 목마름을 부채질했다.
장릉 옆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장능보리밥집은 감자알이 툭툭 박힌 꽁보리밥과 애호박을 송송 썰어 넣은 구수한 된장찌개가 별미로 소문난 집이다. 넙적한 대접에 담긴 꽁보리밥에 된장찌개를 몇 숟갈 떠놓고 썩썩 비벼서, 된장에 찍은 풋고추와 상추에 싸먹는 맛은 오랫동안 잊고 지낸 고향의 맛이다. 거기에 맛깔스런 여러 나물무침 반찬과 강원도답게 빠지지 않은 감자부침, 시원한 동치미는 입맛을 산뜻하게 돋운다.
하지만 영월땅 이곳저곳을 둘러본 걸음이라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갈증에 동동주를 청하지 않을 수 없다. 찹쌀과 보리쌀, 찰옥수수를 섞어 빚었다는 노리끼리한 동동주가 빈속으로 넘어가면 짜르르한 슬픔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울컥울컥 치밀어오름을 느낀다.
"나으리."
시뻘겋게 달군 쇠로 팔 다리를 지지는데도 끝까지 세조를 '전하'라 부르지 않고 '나으리'로 불렀다는 사육신의 굳은 절개와 매서운 기백을 생각하면 절로 목이 메인다.
왕명을 받들어 사약을 가지고 내려왔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청령포가 보이는 언덕에 주저앉아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어 읊었던 그 시조를 다시 읊조리며 자신도 모르게 동동주 잔을 비워내게 된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나도 몰라 냇가에 앉았더니
흐르는 물도 내 맘 같아야 울어 밤길 에놋다.'
*가는 요령
영월까지는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서제천 인터체인지에서 빠진다.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읍 4거리-문곡 방면 31번 국도-1.8km 주행 후 좌회전-1.2km를 가면 청령포 입구에 다다른다. 혹은 문곡 3거리에서 우회전해 영월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38번을 따라 소나기재를 넘으면 5.5km 지점에 장릉이 나온다. 장릉 앞 3거리에서 청령포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1.1km 후 또 우회전-1.2km를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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