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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모란이 뚝뚝 떨어지는 영랑의 고향

영랑생가 전경.
우리나라 순수 낭만주의 시인 영랑의 고향 전남 강진땅을 찾아가는 길은 짙은 서정과 낭만이 깔려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 테요’라던 영랑의 노래며, 이 나라의 큰 스승인 다산 정약용의 한숨과 고독으로 얼룩진 유배의 세월이 나그네를 한없이 취하게 만든다.

‘북도에 소월이라면 남도에 영랑’이라던 우리나라 서정시의 대표시인인 영랑 김윤식은 1903년 강진읍 남성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나온 후 서울로 올라와 휘문의숙에 입학하지만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 고향으로 내려온다.


고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모의하다가 사전에 발각돼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그는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간다. 1923년 동경 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민족수난의 한과 비애를 달래기 위해 대나무숲에 싸인 생가의 사랑에서 손수 북을 둥둥 치면서 시를 읊었다.

마침내 영랑의 서정시가 영롱한 광채를 발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30년.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등이 동인이 되어 내놓은 <시문학>에서다.


‘....5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강진읍에 있는 영랑의 생가는 말끔히 복원돼 길손들을 맞고 있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 차례 전매됐으나 1985년 강진군이 매입, 관리하고 있다.

안채는 일부 변형됐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했고, 문간채는 철거됐던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 복원했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됐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장흥에서 강진으로 들어오는 ‘영랑로터리’에는 그의 동상이 봄햇살 속에 서 있다.


*맛집
강진읍내에 있는 해태식당(061-434-2486)을 비롯해 명동식당(061-434-2147), 흥진식당(061-434-3031) 등은 맛의 고장 강진을 대표하는 맛집이다.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 내려온 손맛은 한상 그득 나오는 한정식의 어느 반찬을 집어먹어도 나무랄 데 없다. 반찬가짓수 많기로 소문난 남도 한정식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특히 해태식당은 유홍준 교수의 남도답사일번지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식당.

*드라이브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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