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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단속 위에 나는 불법주차


연말연시가 되면 시내는 항상 자동차로 가득 찬다. 날씨가 추워져 많은 이들이 자가용을 선호하는 탓도 있지만, 교통체증의 상당부분은 불법 주-정차로 빚어진다. 갓길을 가득 메운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차량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본지 정재용 기자가 불법 주-정차 단속현장을 취재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12월 22일 오전 7시. 서울 종로소방서 5층 교통지도단속반 서북지역대 사무실. 10여명의 불법 주-정차 단속조 조장과 함께 아침조회를 하고 있을 무렵 기자의 휴대전화 벨이 다급히 울렸다. 종로소방서였다. \"소방차가 나갈 길에 차를 대놓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빨리 내려와서 차를 치우지 않으면 견인차를 부르겠다\"는 통첩이었다.

하루 14시간 \'뚜벅이\' 단속

나름대로 소방차의 진-출입을 방해하지 않는 위치를 잡아 주차했다고 생각한 터라 당황스러웠다. \'불법주정차 단속\'이라는 노란 완장을 착용한 상태로 1층으로 내려가자 \"알만한 분이 왜 그러느냐\"며 항의가 들어왔다. 무조건 \"미안하다\"며 차를 이동시키는데,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전날 불법 주-정차 단속을 당하고 견인까지 당했던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날 오후 7시 30분쯤. 서울 홍익대 입구 근처에 볼일이 있어 근처 공영주차장을 찾았다. 근무시간이 오후 7시로 끝난 탓인지 근무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주차된 차 뒤쪽에 직각 방향으로 주차해놓고는 두시간쯤 지난 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으나 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주차공간이 없어 주차선 밖으로 바퀴 두개를 내놓은 채로 주차를 했는데, 불법 주-정차 단속으로 견인된 모양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았다가 엉뚱하게 불법 주차로 견인당한 사실에 화가 치밀어 마포구청측에 따졌으나 주차장법 위반으로 단속했다는 답변뿐이었다.

\'아, 내일 불법 주-정차 단속현장에 취재를 나가기로 되어 있는데 미리 단속당한 사람의 입장을 느끼라는 것인가.\' 단속현장에 나가려던 차에 공교롭게도 불법 주차와 관련된 사건을 두번이나 겪은 기자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주-정차 단속을 하는지 두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겠다는 다짐으로 현장으로 향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영화배우 심은하는 티코를 타고 다니는 주차단속 요원으로 등장한다. 영화를 감명깊게 본 탓에 기자는 당연히 단속차량을 타고 다니며 주차단속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오전조는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후조는 오후 2시부터 오후 9시까지 근무하는데, 계속 걸어다닌다고 한다. 더욱이 그날은 무척 추웠다. 잉크가 얼어붙어 볼펜을 사용하기 힘들 정도였다.

단속현장인 서울 남대문시장 근처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40분쯤이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대로변에 불법 주-정차 차량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운전석에는 사람이 앉아 있었고, 신문을 보거나 잠을 자거나, 심지어는 손톱을 깎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며 차를 이동하라고 열심히 손짓을 했으나, 운전자들은 시큰둥했다. 동행한 서울특별시 교통지도반에 따르면 차량 안에 사람이 있으면 주차단속 스티커를 발부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운전자들은 조수석에 할머니나 아주머니, 심지어 젖먹이까지 동승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남대문시장 근처로 이동하면서 단속한 어떤 차량도 조수석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반말-욕설에 회의 느껴

원래는 차안에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5분이 지나면 불법 정차로 스티커를 발부할 수 있다. 하지만 운전자로부터 운전면허증을 받아 이를 경찰에 통보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5분이라는 시간을 증명하기가 어려워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때문에 대부분 운전자가 차안에 누군가를 동승하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법 주-정차의 수는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전 11시께 이르자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점거한 차선은 남대문시장 입구의 경우 3개 차선까지 늘어났다. 일본인 등 외국 관광객을 태운 미니버스와 짐을 내리는 화물차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차를 빼달라\"는 주문에는 한결같이 시큰둥했다. 바로 옆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줬지만 \"주차장이 어디 있느냐\"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위치를 손가락으로 정확히 지적해도 딴청을 피우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옆에서 스티커를 발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를 움직이지 않는 \'간 큰\' 운전자도 있었다.

남대문시장 일대의 경우 워낙 스티커를 자주 발급당한 탓인지 운전자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했다. 차에 누군가를 앉혀놓는 것 이외에도 화물차를 시장 상인에게 맡겨놓는 방법, 번호판을 가려 단속을 지연시키는 방법뿐 아니라 전날 퇴계로 근처에서 발부된 스티커를 마치 그날 발부받은 것처럼 와이퍼 사이에 끼워놓은 운전자도 있었다.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니 \"한번 끊긴 차는 다시 끊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태연하게 답변했다. 날짜를 교묘하게 가려놓은 탓에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발각하기 힘들다는 점을 노린 \'신종 수법\'이다. 심지어는 몇달 전에 발부된 스티커를 버젓이 올려놓은 경우도 있었다. 이날 오전 남대문시장 근처에서는 영업용 차량 7대, 승용차 7대가 주-정차 위반으로 스티커를 발급받았다.

공권력이 약화된 시대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운전자들은 단속요원에게 반말과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한 운전자는 차를 빼달라는 기자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욕설을 뱉어냈다. 약간은 험상궂게 생긴 기자에게 막말을 해댈 정도라면 조기퇴직자나 고령자 등으로 구성된 단속요원에게는 어떻게 대할 것인지 쉽게 짐작이 갔다. 한 단속요원은 서울 압구정동에서 고급 외제차에 스티커를 발부했다가 차량 주인인 젊은 20대 여성으로부터 심한 욕설을 듣고는 회의를 느껴 그만두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은 많은 단속요원이 단속을 하면서 \'과연 내가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주변의 인식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오죽하면 한 단속요원의 남편이 단속일을 갓 시작한 자신의 아내에게 \"남에게 피해줄 짓을 뭐하러 하느냐\"며 만류했을까.



백마디 말보다 \'스티커\'가 특효

이에 그치지 않는다. 심지어는 단속요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운전자도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서울 시내에서 1주일에 1~2건 정도는 폭력사건이 발생한다. 현장 취재에 나섰던 당일에는 다행히도 폭력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위기상황은 있었다. 남대문시장 앞을 단속하던 중 흰 승용차에 앉은 두명의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동행한 단속요원이 차를 빼라고 이야기하자 체격이 건장하고 헤어스타일이 심상찮은 이들은 \"알았다고, 아줌마\"라고 하면서 도전적인 눈빛을 보냈다. 상대가 여성이었던 탓에 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나 긴장감을 갖기엔 충분했다. 이들이 사라지고 나자 단속요원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이들을 단속했는데 말을 듣지 않아 결국 경찰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는 것. 이처럼 검은 양복을 빼입고 머리를 짧게 깎은 건장한 젊은 남성을 단속할 때가 가장 두렵다는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시민들이 주차단속에 대해 거세게 저항하는 것일까. 그 의문은 오후 시간의 체험현장이었던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에서 풀렸다. 이날 동행한 서남지역대의 주차단속요원은 쉴새없이 불법 주-정차 차량 운전자에게 아무데나 차를 세우지 말도록 설득했다. 오후 단속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법 주차 택시가 눈에 들어왔다. 주차단속 요원은 스티커를 발급한 뒤에도 이동하지 않고 택시기사를 기다렸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기사가 나타났다. 기사는 불법 주차를 하지 말도록 설득하고는 스티커를 회수하려는 단속요원에게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였다. \"이차는 영업용 차예요. 영업용 차를 단속하면 어쩌자는 거에요. 이거 끊기면 사흘 동안 일 안 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이럴 수 있어요?\" 거칠게 따지는 기사에게 단속요원은 \"이곳에 불법으로 주차하면 시간에 관계없이 스티커를 발부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한번 혼을 내줘야 불법 주차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막무가내로 목소리를 높여 떠들던 기사는 단속요원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차분히 설명해나가자 점차 목소리가 낮아지다가 스티커를 회수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슬며시\' 고분고분해졌다.

그날 기자가 동행한 단속반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선릉역까지 세번 왕복하는 사이에 모두 39건을 적발, 이중 17건에 대해서는 계도 뒤 스티커를 회수했다. 스티커를 되돌려받은 운전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자리를 떠났다. 운전자가 떠난 뒤 단속요원은 \'물론 한번의 경험이 불법 주-정차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날의 경험을 떠올린다면 그걸로 계도효과는 충분한 것 아니겠느냐\'고 단속의 효과를 설명했다.

주차단속 중 가장 자주 적발된 차량은 택배차량 등 화물차였다. 단속을 하거나, 계도를 할 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알게 됐다. 빌딩가의 특성상 배달지인 빌딩 주차장은 화물차의 진입을 금지한다. 그러면서 책임은 운전기사에게 돌렸다.

한 빌딩의 경비원은 \"자기네들이 귀찮아서 안 들어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들여보내주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래서 스티커가 발부되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불법 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 택배차량의 경우 전날 끊기고 아침에 끊기고, 오후에도 단속될 뻔했다. 짐칸의 크기가 너무 커 주차장 진입이 허가되더라도 들어갈 수 없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도 빼놓을 수 없는 골칫거리다. 경기가 나쁜 탓에 택시는 연료비를 아끼느라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 역 근처에 대기하는 게 보통이다. 이동하라는 말도 잘 듣지 않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택시 행렬 중 가장 앞 차량에 가서 단속하는 척하면서 사진을 찍어대는 것이었다. 사진의 플래쉬가 터지면 택시는 총알같이 도망갔다. 앞차가 빠지면 나머지 행렬도 금방 빠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금방 돌아온다.

하루 동안 50㎞ 이상을 걸으며 불법 주-정차 단속 전후의 교통 흐름을 눈으로 확인한 결과 단속당한 사람의 기분은 나쁘겠지만 단속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무차별 단속보다는 계도를 병행한 단속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 경우 기자가 직접 체험한 것처럼 반발심만 키울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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