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산 대형 SUV 시장의 왕좌는 기아 모하비가 굳건히 지키고 있었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 대형  SUV 시장을 평정했던 것은 쌍용 렉스턴이었다. 그러나 제조사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왕좌의 자리를 모하비에게 넘겨줬고, 이후 구매자들은 매년 별다른 변화 없이 가격이 오르는 모하비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2017년, 독과점에 가까웠던 대형 SUV 시장에 완전히 새로운 렉스턴이 다시 등장했다. 외관은 우람한 모습으로  눈에 확 들어오는 강렬함은 없지만 보면 볼수록 싫증나지 않는 우직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간혹 티볼리를 늘려놓은 모습이라고 비아냥대는 목소리도 들려오지만 패밀리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그럴 수도 있다.

실내는 쌍용의 기함급 모델임을 입증하듯 고급스러움을 강조했지만 디테일적 요소들은 아쉽기도 하다. 물론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 수도. 센터페시아와 도어트림에 스티치를 가미한 가죽 인테리어는 어떤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는지 이해가 되다가도 인민군의 군복이 떠오르기도 한다. 연일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앉는 순간 편안함이 느껴지는 시트는 고급 세단을 연상케 한다. 운전석에서 사이드미러와 룸미러를 조정하고 전방을 바라보면 높은 차체를 실감하게 되는데, 도심형 SUV를 표방하며 전고를 낮춘 SUV들이 익숙한 운전자라면 색다른 시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높아서 불편하기보단 운전하기 편한 시야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G4 렉스턴은 2.2리터 4기통 디젤 엔진에 메르세데스-벤츠의 7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려 최고출력 187마력, 최대토크 42.8kg.m를 발휘한다. 출시 전부터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는데 2.2리터 엔진은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직접 시내주행이나 고속주행을 해보면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메르세데스-벤츠 자동변속기의 체결감이나 부드러운 변속은 특히 매력적이다. 또한 높은 차체와 거대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고속주행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안정감을 제공한다. 여기에 포스코의 기가스틸이 적용된 프레임바디에 장착된 현가장치는 주행 중 소음과 진동을 잘 걸러줘 묵직하면서고 안정된 승차감을 선사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2.2리터 디젤 엔진은 일상적인 주행에서 큰 불편함이 없지만, 괜한 욕심을 부려 가속 페달을 깊게 누르면 한계가 와 닿기도 한다. 엔진 소리는 커지고 속도는 즉각적으로 치솟지 않아 답답한 순간이 연출된다. 그러나 G4 렉스턴 같은 성격의 SUV에게 폭발적인 가속력을 기대하는 운전자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단단한 하체와 직관적인 반응의 브레이크, 파트타임 사륜구동 시스템을 바탕으로 온로드와 오프로드 가리지 않는 안정적인 주행에 만족할 확률이 높다.

렉스턴이 왕좌의 자리에 올라설 당시 ‘대한민국 1%’라는 광고 문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모하비를 비롯해 쟁쟁한 SUV들이 등장하면서 1%밖에 안타는 자동차로 조롱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G4 렉스턴이 등장했고 상황도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G4 렉스턴은 2,079대, 모하비는 1,806대가 신차로 등록되며 출시 첫 달부터 모하비의 신차등록대수를 가볍게 넘어섰기 때문이다.

제왕의 귀환은 왕을 기다리는 지지자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쌍용 G4 렉스턴은 사라지고 있는 프레임바디와 정통 SUV를 그리워하는 소비자들에게 눈길을 받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 과거와 현재의 모든 지지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모해 나간다면 다시금 왕좌에 올라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