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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서킷을 지배한 포르쉐 군단의 질주



돌이킬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한국에 상륙한 신형 911을 비롯해 22종의 포르쉐 컬렉션이 용인 스피드웨이 트랙 위에 도열했다. 연신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카메라 셔터에 저절로 손이 가는 걸 보니, 시작부터 포르쉐의 유혹에 꼼짝없이 매료되고 말았다.


포르쉐 월드 로드쇼는 독일 본사에서 직접 주관하는 행사로, 악명이 자자한 ‘포르쉐 바이러스’가 글로벌 전역을 돌며 전염병을 일으키다 3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트랙 주행, 브레이킹, 슬라럼, E-하이브리드, 택시 드라이빙 등 그야말로 온종일 포르쉐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셈이다.



트랙 주행 요령과 올바른 운전 자세 교육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서킷 주행에 나섰다. 4도어 모델인 파나메라, 마칸, 카이엔 등을 번갈아 타며 핸들링을 체험하는 코스. 그런데 운이 좋았다. 파트너가 없던 탓에 무려 10바퀴를 홀로 돌며 매끄러운 감각이 돋보이는 4도어 모델들을 온전히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유독 눈길을 끈 상대는 가장 마지막에 탑승한 파나메라 터보 스포츠 투리스모.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모델로 2명이 탈 수 있던 기존 파나메라의 뒷좌석을 3인 시트로 재구성했고,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 포르쉐 트랙션 매니저먼트 등의 시스템을 장착한 사륜구동방식으로 극한의 코너링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4도어 모델들과 함께한 질주의 흥분이 가라앉을 즈음, 슬라럼 코스의 하얀 카이엔 E-하이브리드 모델이 시야에 포착됐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있는 힘껏 출발, 속도를 빠르게 높인 후 라바콘 사이를 요리조리 통과한 다음 급제동으로 첫 체험을 마무리했다.


다음은 순수 전기 모드 차례. E-차지 모드에서는 최고속도 140km/h로 최대 44km까지 주행 가능하며, 0-100km/h 가속 시간은 단 5초에 불과하다. 특히 론치컨트롤 기능이 지원되어 정숙성과 역동성을 함께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카이엔 E-하이브리드는 단순히 연비만 알뜰히 챙기는 살림꾼이 아니었다.



폭풍처럼 휘몰아친 포르쉐의 열기에 살짝 지쳐가던 찰나, 일렬로 늘어선 신형 911과 718 박스터 GTS의 살아있는 눈망울을 본 순간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 아우성을 친다. 태양빛이 드리워진 신형 911의 고혹적인 자태를 견뎌낼 재간이 없다.


2도어 서킷 주행의 첫 주자는 샛노란 911 카레라 4S 모델. 맹렬히 내달리는 앞차를 따라 급가속을 시도하자 450마력의 출력을 온전히 노면에 뿌리기 위해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서킷 정복에 나선다. 빠른 속도로 코너에 진입하자 현란한 네 바퀴와 이를 제어하는 전자장비들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어서 만난 모델은 911 GT3. 이전 세대 모델이지만 포르쉐 레이싱카 생산 라인을 거쳐 탄생한 만큼 경량화와 더불어 911 라인업에서 자연흡기 엔진의 명맥을 이어가는 유일한 모델이다. 500마력의 출력 또한 존재감을 드높이는 수치다.


가속 페달을 사정없이 짓누르자 수평대향 6기통 4.0리터 자연흡기 엔진의 포효와 배기음이 온몸을 휘감아 심장박동수를 한껏 높인다. 자연흡기 엔진답게 타코미터의 바늘은 거침없이 고회전으로 치솟고, 간혹 타이어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지만 스티어링 휠과 브레이크 페달로 조율하면 본투비 서킷 머신의 저력을 과시하듯 자유자재로 몸놀림을 제어한다.



다시 짜릿한 슬라럼 코스에서 718 박스터 GTS와 조우했다. 욕심과 긴장이 한데 뒤섞여 연습 주행에서는 라바콘을 쓰러트리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내 가벼운 몸놀림에 완벽히 젖어들어 즐거움을 만끽했다.



연달아 진행된 브레이킹 코스에서는 신형 911 카레라 S에 올라탔다. 론치컨트롤을 활용해 급가속과 급제동을 맛보는 시간. 왼발로 브레이크를 짓누르고 오른발로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가 회전수가 고정되는 순간 왼발을 떼면 가장 빠른 가속력을 선사하고, 풀 브레이킹으로 흥분을 가라앉히자 일말의 불안감 없이 빠르게 멈춰선다.



끝으로 화끈한 택시 드라이빙이 포르쉐 월드 로드쇼의 대미를 장식했다. 추첨을 통해 탑승하게 된 모델은 신형 911 카레라 S. 독일 출신 전문 인스트럭터가 시작부터 론치컨트롤로 매운맛을 보여주더니, 코너 중심부에서 뒷바퀴를 흘려보내며 연신 드리프트 묘기를 선보였다. 감탄사를 넘어서 행복한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각기 다른 성능과 매력을 지닌 22종의 포르쉐 모델들과 함께 서킷을 누비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경험이다. 포르쉐 월드 로드쇼는 온몸에 포르쉐 바이러스를 침투시키며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갔지만, 어떤 모델보다도 코드네임 992 신형 911과 다시 한 번 조우할 그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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