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업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메이커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인도와 중국, 브라질 등에까지 미칠 것으로 보인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자동차 저널리스트들은 피아트를 이탈리아 자동차산업의 대명사로 묘사했었다. 물론 대부분 좋은 의미로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피아트는 지금 풍전등화의 상태에 있다. 아넬리가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피아트는 재건 계획을 내놓으며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채무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처방을 제시하고 있지만 여론은 피아트가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해서 몇가지 이론이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피아트가 1950년대와 60년대, 70년대와 같은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는 않다.
올 초 사망한 피아트의 대부 지아니 아넬리(Gianni Agnelli)는 피아트를 단지 이탈리아의 자동차회사로서만이 아닌 농업과 항공산업, 금융산업, 부험산업 등 글로벌 복합기업으로서의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저 멀리 남미와 극동지역으로부터도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후 피아트의 내수시장은 30년 이상 관세장벽으로 보호를 받아왔었다. 그로 인해 아무런 경쟁자없이 피아트는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아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기 위한 그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비록 아넬리가는 알파로메오와 란치와, 페라리, 마세라티 등 이탈리아 대부분의 브랜드를 손에 넣었지만 피아트의 자국 자동차 조직은 자금부족에 시달렸고 점차 힘을 잃어갔으며 설상가상으로 이탈리아 정부는 1980년대 외국 메이커들에게 시장을 개방하기에 이르렀다.
피아트가 해외사업 구축에 초점을 맞추어 러시아와 인도, 중국 등 신흥시장에 아직은 수익을 내지 못하는 곳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는 동안 자국 내 제품들은 점차 노쇄해져 갔다.
유럽에서 피아트는 모델전략에 실패를 거듭했는데 가장 최근의 예가 물티플라(Multipla) 미니밴과 스틸로 해치백이었다.
올 3월 제네바오토쇼에서 피아트는 판다와 세이첸토의 후속인 깅고( Gingo)를 비롯해 푼토를 베이스로 한 마이크로밴 이데아(Idea) 등을 내놓으며 배수의 진을 쳤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10여년 전 미국시장에서의 철수에 이어 지아니 아넬 리가 가장 실망했던 것은 포드와 크라이슷러 그룹과의 제휴 실패였다.
피아트 자동차 부문은 급속도로 쇄락하기 시작했고 1990년 말 GM에게 주식의 20%를 넘기고 미래 파워 트레인과 플랫폼 개발에 협력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GM은 나머지 80%의 주식을 2004년 1월에 인수한다는 옵션을 맺었고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아주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이제 움베르토 아넬리(Umberto Agnelli)와 그의 경영진들은 회사의 비자동차사업부문을 살릴 수 있을지 경각에 달린 상황에 처해있다.
설사 GM이 피아트자동차의 나머지 주식을 인수한다해도 피아트 브랜드가 얼마되지 않은 제품들로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유럽 이외의 피아트 조직은 GM이 아시아와 동유럽, 남미 등 신흥시장에서는 나름대로 이익을 줄 수도 있겠지만 피아트라는 이름 그 자체는 사라질 운명에 놓인 것이다.
물론 이탈리아 시장에서는 피아트라는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겠지만 그 외 시장에서는 GM이 피아트 브랜드를 사용할 아무런 이유가 가치가 없는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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