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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이 문제냐, 차가 문제냐 (9/24)


- 디젤엔진과 연료 놓고 책임공방 벌여

자동차 제조사와 정유사가 디젤엔진의 시동꺼짐 및 떨림현상의 원인을 놓고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실제 커먼레일 디젤엔진뿐 아니라 일반 디젤엔진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게다가 한 곳의 주유소에서 주유한 여러 대의 차에 같은 문제점이 동시에 나타나 그 책임 여부를 두고 소비자와 자동차제조사, 정유사 간 공방이 팽팽해지고 있다.

경기도 오산에 사는 임형택(26.자영업) 씨는 지난 9월10일 추석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다 오산시 누읍동에 위치한 현대오일뱅크 상표의 O주유소에서 자신의 카니발2 커먼레일 디젤엔진차에 기름을 가득 넣었다. 충남 당진이 고향인 임 씨는 그러나 즐거운 귀향길이 악몽으로 변했다.

주유 후 길을 떠난 임 씨는 고향에 도착한 다음날 성묘를 가다 낭패를 당했다. 갑자기 엔진이 멈추며 차가 길 위에 서버린 것. 몇 번의 재시동을 시도했으나 시동은 걸리지 않았고, 결국 보험회사의 견인차를 불러 기아자동차 당진 정비센터에 차를 입고시켰다.

연휴기간이라 어쩔 수 없이 며칠을 기다린 후 임 씨의 차를 검사한 기아자동차측은 "기름에 물이 섞여 있다"며 임 씨에게 불량연료 사용으로 엔진에 이상이 생겼다고 판정, 통보했다.

임 씨는 이 사실에 분개, 렌트까지 해가며 오산의 O주유소를 찾았다. 임 씨는 불량기름 판매와 관련,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주유소측은 "하루에 수백 대의 경유차에 기름을 넣는데 어떻게 임 씨 차만 문제가 생길 수 있느냐"고 되물으며 자신들의 기름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임 씨는 분명 물이 섞인 기름으로 자신의 차가 고장났다는 자동차제작사의 말을 토대로 보상을 요구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경찰서를 찾았다. 그러나 경찰측은 주유소 불량연료 판매는 시청으로 신고해야 한다며 임 씨의 신고를 받지 않았고, 결국 임 씨는 오산시청 지역경제과에 신고접수를 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났다. 임 씨가 신고를 위해 시청을 찾았을 때 담당자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행방을 묻는 질문에 다른 공무원이 O주유소에 불량 경유판매 신고가 들어와 그리로 갔다고 전했다. 곧바로 O주유소로 다시 간 임 씨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날 기름을 넣고, 같은 날 차가 멈춘 또 다른 카니발2 커먼레일 디젤엔진차의 소유주를 만났다.

또 16일 시청 게시판에 올려 놓은 글을 보고 현대 테라칸 커먼레일 디젤엔진 소유주가 같은 날 기름을 넣고 다음날 문제가 생겨 임 씨에게 연락해 왔다. 커먼레일 디젤엔진이 아닌 쌍용 무쏘의 소유자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주유한 후 이튿날 엔진 울컥거림 현상이 심해 주유소를 의심하던 중 게시판의 글을 보고 임 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 처럼 O주유소에서 9월10일 경유를 넣고, 다음날 엔진에 이상이 발생한 차만 모두 카니발2(커먼레일) 2대, 현대 테라칸(커먼레일) 1대, 트라제XG(커먼레일) 1대, 무쏘(인터쿨러) 1대, 카니발2 (일반엔진) 1대 등 모두 6대였다. 이 중 엔진은 가동하나 경유에 이물질(물과 이물질) 등으로 수리가 필요한 차가 3대, 아예 엔진이 멈춘 차가 3대였다.

임 씨를 비롯한 6명은 즉각 주유소측에 보상을 요구하며, 이 곳에 기름을 공급한 현대오일뱅크측에도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정유사의 입장은 단호했다. 정유사측은 문제가 된 무쏘에서 기름을 추출, 자체 분석한 결과 모든 성분이 규격 이내인 데다 현대오일뱅크가 제조한 기름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7~9월중 해당 주유소에 경유를 공급한 바 없어 주유소측이 다른 불량 경유를 사입, 판매한 만큼 주유소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씨 등은 그러나 "그렇다면 왜 현대오일뱅크 상표를 걸어 놓게 했고, 현대오일뱅크 상표를 보고 기름을 구입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느냐"며 강력히 반발했다. 결국 정유사가 자신들의 상표를 내걸고 판매하도록 허가해준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현대오일뱅크 소비영업과 박종윤 과장은 "문제가 된 연료를 분석한 결과 이상이 없고, 다만 수분이 다소 과다한 것으로 결론났다"며 "모든 성분이 기준치 이내에 있는 만큼 공급 기름을 불량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커먼레일 디젤엔진의 수분발생현상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는데 엔진 자체의 결함으로 볼 수도 있지 않느냐"며 "그 것도 아니라면 주유소의 관리불량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전국 수백 곳에 달하는 주유소를 정유사가 모두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정유사와 주유소, 자동차제작사 등 모두 책임지는 곳이 없어 현재 피해자들은 평균 190만원에 이르는 엔진 수리비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게다가 대부분의 피해차들이 1년이 채 되지 않은 새 차임을 감안할 때 피해자들의 억울함은 더욱 크다.

피해자들은 "불량연료가 아니면 엔진 결함인데 이 또한 자동차제작사가 인정하지 않고, 정유사는 주유소측에 책임을 전가하고, 주유소는 소비자 부주의 탓으로 돌리는 게 관행이 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동차10년타기운동본부 강동윤 실장은 "커먼레일 디젤엔진 내 수분발생으로 인한 결함 여부를 조사중이지만 정유사와 자동차제작사 간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 계속되고, 연료의 성분을 분석하는 석유품질검사소측의 분석결과도 의심이 간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정부가 발벗고 나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 않을 경우 가해자없는 피해자만 속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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