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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소문난곱창’의 곱창구이&전골

선암사.
그 곳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이자 이름난 절 송광사와 선암사가 바로 이웃해 있고 코 앞에 낙안민속마을이 기다리는 그 곳. 이름도 아름다운 율포해수욕장이 지척이고, 유명한 보성 차밭의 초록빛 향연도 덤으로 구경할 수 있는 그 곳. 그래서가 아니다. 전라도 벌교를 생각하면 속절없이 가슴이 설레는 것은.

10년도 훨씬 전이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고,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가뜩이나 낯선 지방에서 갈피없이 헤매고 있었다. 거기에 허기까지 겹쳐 굶주린 하이에나 꼴로 먹이를 찾아 벌교읍을 헤맸다. 물론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아무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야 있었지만 그 포만감 뒤에 쏟아질 허탈함이 싫어 ‘아무 집이 아닌 집’을 찾느라 이리저리 헤맸다.

역전의 몇 식당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그리 신통치 않았고, 시장통 안은 더더욱 아니었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고, 날은 더욱 어두워졌다. 이럴 바에야 아예 순천으로 나갈 걸, 하는 후회와 그냥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버려?, 하는 갈등으로 마음 속은 진흙탕처럼 질척거리는 그 때.

국도변에 허름하게 서 있는 그 집이 눈 안으로 쑥 들어왔다. 조금도 눈길을 끌 만한 외관은 아니었다. 나무로 된 옛 미닫이 유리창엔 까만 셀로판 종이가 붙어 있어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허름한 그 식당이 왠지 땡겼다.

일행과 함께 망설이지 않고 가게의 미닫이를 드르륵 밀치고 들어섰다. 순간 매캐한 연기가 왈칵 덮쳐 왔다. 서너 평 남짓한 좁은 실내는 드럼통을 엎어 놓은 듯한 좌석이 여남은 개 놓여져 있었고, 이미 그 곳을 차지한 손님들로 우리는 작은 방을 튼 듯한 구석자리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았다.

시원시원한 인상의 주인아낙은, 한눈에 보아도 객지사람이 분명한 우리에게 싱긋 웃어 보이곤 말없이 화덕과 석쇠를 내왔다. 수다스럽지 않은 주인아낙의 그 반김에 턱없이 마음이 놓이며, 제대로 들어왔구나 하는 감이 왔다.

예감은 적중했다. 숯불 화덕에 석쇠가 놓이자 주인아낙은 정갈하게 손질한 곱창과 소스, 밑반찬을 내왔다. 그리고 불길 고른 석쇠 위에 곱창 두서넛 가닥을 올려 놓았다.


치직-. 뜨거운 열기를 이기지 못해 하얀 곱을 툭툭 터뜨리며 구불거리는 곱창가닥을 주인 아낙은 잽싸게 잡아 올려 능숙한 가위질로 썩둑썩둑 썰었다. 한입에 들어가기 적당한 크기로 썰린 곱창은 지글지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우리는 넋을 잃고 아낙의 능숙한 손놀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따, 싸게싸게 안드시고 뭣들 하고 있소?”

터져나온 곱이 노릇노릇 굽혀진 곱창은 기가 막혔다. 고소하고 졸깃졸깃한 맛이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곱창 특유의 구린내도 없었고, 질깃거리지도 않았다. 담백한 고소함이 입안 가득 느껴졌다.

“기름소곰 찍어먹어야 쓰제”

익기가 바쁘게 널름널름 고기점을 집어먹는 우릴 보며 주인아낙은 예의 사람좋은 웃음을 씨익 웃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보배소주가 맥없이 허리를 꺾으며 쓰러져나갔다. 늦은 가을비는 추적추적 끝없이 내렸고 가끔씩 경전선 기차가 "뚜~" 기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그 날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 지 기억나지 않는다. 벌교를 무대로 했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뭐라 떠벌렸고, 거기에 나오는 지식인 출신 파르티잔 염상진과 회의적인 지식인 김범우에 대해 갑론을박하며 술잔을 비웠던가? 그러나 뒷날 떠오르는 것은 그 때까지 먹어본 곱창 중 가장 맛있는 그 날의 곱창에 대한 기억뿐이다.


꼭 1년이 지난 뒤 기억에 가물거리는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그 집을 찾아갔다. 성흥식당(061-858-1589)은 변함없이 그 곳에 있었고, 주인아낙의 시원한 눈웃음도 변함없었다. 더더욱 변함없었던 것은 기억 속에 가물거리던 그리운 곱창맛. 곱창구이에, 전골에, 전골에 볶은 볶음밥까지. 어느 한 가지도 빼놓을 수 없어 풀코스로 먹다 보면 벌써 부른 배가 원망스럽다.

1년에 한 번 꼴로 찾아가는 벌교읍의 성흥식당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10여년. 언제 찾아가도 “긍께 곱창은 이 똥창(막창)이 최고제”라며 내놓는 진짜배기 곱창맛과 “아따, 고런 정 벗겨지는 소릴랑 하지 마셔”라며 반기는 주인아낙의 곰삭은 친절은 서울에서 벌교까지 그 먼길도 마다하지 않게 한다.

◈찾아가는 길
벌교로 가는 지름길은 호남고속도로 승주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지방도 857번을 탄다. 3.2km 가면 선암사 입구 작은 3거리. 곧장 직진해 15.3km 가면 낙안민속마을. 계속해 857번을 타면 벌교읍에 닿는다. 성흥식당은 벌교역을 마주보고 선 상태에서 우회전해 보성읍(국도 2번)과 고흥읍(국도 15번과 27번 겸용)으로 갈라지는 3거리 바로 못미처 오른쪽 길가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 구경거리
벌교로 가는 길목에 선암사와 낙안민속마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선암사는 고적한 분위기가 일품이고, 낙안민속마을도 볼만한 구경거리가 많은 곳이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나들이에 좋다.

최근 벌교는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소설에서 얻은 감동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려는 문학기행 인파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 이와 함께 옹기, 염색, 차, 용문석과 같은 전통문화를 연계한 관광코스도 개발돼 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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