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중고차시장은 극심한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의 구매심리가 위축되면서 IMF 때보다 더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두 가지 모습이 나타났다. 대부분의 중고차업체들은 판매부진이라는 수렁에 빠져 별 대책도 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다. 반면 일부 온·오프라인 기업형 업체들과 대형 시장들은 새로운 마케팅을 시도하면서 불황탈출과 미래의 주도권 장악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국내 중고차시장의 특징과 현재 수면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살펴 본다.
▲몸집을 키워라
2001년 9월 개장된 강남 율현시장은 연면적 1만5,000평에 70여개 상사를 입주시켜 장안평시장(연면적 7,000평, 64개 상사)이 수십 년 간 지켜 온 '국내 최대 규모\'라는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호객꾼들과의 공생관계를 없애기 어렵고 낙후된 외양을 지닌 장안평시장은 율현시장은 물론 강서권의 현대식 시장들에게까지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율현시장이 차지했던 국내 최대 규모라는 타이틀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같은 강남권에 위치한 서울오토갤러리(연면적 2만3,200여평, 81개 상사)가 10월 개장하면 넘겨줘야 하기 때문.
이 같은 대형화는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과 같은 효과를 불러 온다. 고객의 선택폭을 넓힐 뿐 아니라 정비, 용·부품, 금융 등 자동차관련 서비스를 모두 한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어 소비자 유인이 쉬워진다. 대형화는 또 수많은 딜러와 판매차들을 단일 판매망으로 묶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자마이카 등 기업형 업체는 또 매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중고차 검색시스템 설치, 존(zone) 개념을 도입한 차종별·모델별 전시 등을 통해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고 판매증진을 꾀하고 있다. 입주상사 편의를 중심으로 한 기존 시장과는 달리 고객 위주의 서비스를 펼치는 것이다.
서울오토갤러리의 경우 쇼핑몰을 금관, 은관, 전시관으로 세분화했다. 전시장을 사이에 두고 지하 4층과 지상 6층 규모의 금관과 은관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금관에는 수입 신차 전시장과 종합 클리닉센터 및 식당같은 근린시설이, 은관에는 매매상사 사무실이 들어선다. 고객상담실과 은행, 할부금융사 등이 입주하고 정비, 튜닝전문점, 액세서리점 등도 자리잡고 있다.
사실 신생 대형 시장과 기업형 업체들이 강조하는 ‘자동차 토털서비스 제공을 통한 복합쇼핑몰화’는 기본이 된 지 오래다. 차별화라는 말을 쓰려면 자동차와 연관이 적거나 없는 서비스까지 실시해야 복합쇼핑몰로 인정받을 수 있다. 다양한 이유로 시장을 찾는 소비자를 늘려 잠재고객을 확보하고 시장 운영업체의 수익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 서울오토갤러리의 경우 농수산물유통센터와 화훼시장, 대형 할인점이 입점해 있고 유동인구가 많은 양재동에 자리잡아 복합쇼핑몰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대형화는 그러나 입주상사들의 이기적 행위나 변칙적 영업행위를 통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기존 재래시장에서보다 높아진 고객의 요구수준으로 또 다른 소비자 불만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중앙집중식 관리나 제어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소비자 보호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서울오토갤러리가 고객상담실 운영에 신경쓰는 것도 그래서다.
▲정보와 기술은 젖줄이다
규모가 크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시장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기술을 접목시켜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판매전략을 구사하지 못하면 빈 껍데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신생 시장들은 인터넷 환경을 접목, 단순히 매물정보의 도구로만 이용되던 웹사이트에 대출조회 및 제휴 신용카드 신청시스템을 반영하는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하고 있다. 카패스는 KT파워텔과 제휴, 무선통신(무전기)과 이동통신(휴대폰) 기능을 통합한 TRS(주파수공용통신)로 실시간 중고차매물과 관련정보 및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오토갤러리도 81개 입주상사에 전시장 상황과 보험, 금융 등의 정보를 화면을 통해 실시간 중계하는 PDP를 설치하고 딜러들에게 정보취합과 매매에 활용할 수 있는 PDA를 무상으로 나눠줬다. 서울오토갤러리의 PDA는 세계 1위 PC업체인 미국 델의 제품으로 포켓PC 2002년 운영체제 등을 탑재, 성능면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 시장 및 업체들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 중고차유통에서 더욱 중시되고 있는 정보 회전과 공유가 원활해지고 유통비용과 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동거동락(同居同樂)으로 시너지를 창출한다
중고차업계와 신차업계 간 동거가 가속화되고 있다. 동거는 처음에 신차업계의 요구로 이뤄졌다. 신차 판매를 위해선 고객들의 중고차를 처리해줘야 했고 이 때문에 경매장을 설립했던 것. 그러나 중고차시장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경매장도 수익 다각화에 나서고 있고 기업형 업체나 대형 시장들은 경매장이 없는 신차업계와 제휴를 맺어 공동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서울경매장의 경우 국내 최초의 경매장인 한국경매장을 제치고 대표적인 경매업체로 성장했고 인터넷경매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또 중고차유통세미나, 중고차아카데미 등을 주도해 중고차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로 인정받고 있다. 현대·기아경매장은 지난 7월 현대·기아차 계열사인 한국로지텍에 인수됐다. 이로써 물류회사인 한국로지텍의 노하우를 이용, 인터넷 경매와 중고차수출 등으로 중고차사업부문이 확대·강화될 전망이다. 자마이카도 GM대우, 대우자판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갖는 신차판매계약을 체결, 영업에 들어갔다.
서울오토갤러리는 쌍용차와 ‘중고차사업 제휴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지난 7월 강남·서초권 등지의 10개 쌍용차 영업소를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실시했고 9월부턴 25개 영업소로 넓혔다. 서울오토갤러리는 쌍용차 영업소를 통해 들어오는 중고차 중 연간 8만~9만대를 처리할 계획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기존 중고차업계의 영업방식은 단순했다. 취약한 자금력과 인적자원으로 단순 매매차익과 자동차보험 수수료, 할부금융 지원금을 얻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수익창출 방법을 가지지 못했고 마케팅 능력도 쌓지 못했다. 이는 결국 중고차 거래규모가 커지는데도 업체의 수익성이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새로 중고차사업에 뛰어든 온·오프라인 기업형 업체들과 신생 시장들은 이 같은 기존 업계의 문제점을 답습하지 않고 차별성도 높이기 위해 신선한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겉만 대형화·현대화됐을 뿐인 업체나 시장은 결국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서다. 기업형 업체들의 경우 소비심리가 위축된 지난해부터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마케팅도 실시하고 있다.
기업형 업체인 오토큐브와 자마이카는 브랜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로써 ‘~시장’으로 불리는 재래시장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제휴시장이나 프랜차이즈업체 간 매물을 공유하며, 정비업체 등 관련업체와 사업을 연계해 전국적인 네트워크 구축이 가능하게 된다. 서울오토갤러리도 브랜드 마케팅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마이카는 이 밖에 지역주민인 녹색어머니회 회원들을 중고차매매 서포터로 활용하고 이익의 일부를 지원해주는 \'입소문\' 마케팅을 적용하고 있다. 또 근처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대형 할인점 상품에 쿠폰을 붙여 판매, 투입비용보다 높은 실적을 거뒀다.
▲교육은 백년지대계
국내에 중고차유통업이 등장한 지 30년이 넘었으나 중고차유통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시스템은 전무했다. 중세시대 도제처럼 일종의 견습생으로 매매업체에 취업, 경험을 쌓는 게 교육의 전부였다. 이는 결국 중고차매매업의 후진성을 불러일으켰다. 마케팅능력 부족과 소비자 불신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2001년 6월부터 서울경매장이 중고차 아카데미를 개최하고 대림대학 등과 산학협력을 체결했다. 서울경매장의 중고차 아카데미는 업계의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중고차이론의 토대를 쌓는 데 기여했으나 교육기간이 짧고 수용인원이 적다는 한계를 지녔다.
그러나 올 8월부터 서울조합이 서울경매장에 이어 중고차 아카데미를 개설, 운영에 들어가면서 중고차 유통교육에 대한 수요를 좀 더 충족시킬 수 있게 됐다. 중고차시세표 발행업체인 카마트도 딜러들을 대상으로 영업 전문화과정 개설을 추진중이다. 서울오토갤러리의 경우 시장 차별화를 위해 전체 입주상사 대표 및 딜러들을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들 교육엔 기존 아카데미를 통해 노하우를 쌓은 강사진과 대학 교수들이 참여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고차 아카데미 활성화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중고차시장에 투입됐던 딜러들이 전문성을 높이고 매매업이 전문직종으로 인정받을 기반이 마련됐다. 또 중고차유통 발전을 위한 이론적 토대가 만들어지고 중고차시장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중고차유통 교육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건 경계해야만 중고차유통업이 질적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일부의 지적은 깊이 새겨야 할 점이다.
최기성 기자(gistar@autotimes.co.kr)
추가정보를 입력해주세요!
서비스(이벤트, 소유차량 인증 등) 이용을 위해, 카이즈유 ID가입이 필요합니다.
카이즈유 ID가 있으신가요?
카이즈유 ID를 로그인 해 주세요.
SNS계정과 연결되어, 간편하게 로그인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