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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설 속으로 떠나는 천불천탑의 운주사

운주사 천불천탑.
전남 화순에 있는 운주사로 가는 길은 미지의 세계, 아득한 전설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착각을 준다. 더욱이 비라도 흩뿌리는 날은 안개까지 더해져 한층 더 몽환적이다. 그 건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운주사의 전설 때문만은 아니다.

야트막한 산허리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주변 풍경들은 왠지 이재무 시인의 시 <풍금>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신의 목소리엔 물기가 묻어 있었지요
낭하를 걸어나와 화단에 줄지어 피어있는
봉숭아 채송화 칸나 깨꽃들을 어루만질 때
당신의 손길에 부끄러워 꽃들은 더욱 붉게 봄을
울었지요 하학 종소리
솔숲 잔가지 흔들어 새를 날리고
밭둑, 소리의 손에 멱살잡힌 풀잎들.....

고향마을의 누이 같은, 수줍고 소박한 풍경들을 지나면 도암면 대초리, 운주사가 들어앉은 그 전설의 산골짝에 닿는다.

천불천탑의 명성답게 매표소만 지나면 여느 절집과 달리 무리지어 선 석탑들과 만난다. 과거에 정말 1,000개의 석불과 1,000개의 석탑이 있었는 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10분의 1 정도 남았을까 말까 한데도 그 옛날 운주사의 전설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말 도선국사가 운주사를 창건하며 우리나라 지형을 배에 견줬을 때, 운주사 자리는 한반도의 배꼽이자 배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리고 기가 허한 이 자리에 천불천탑을 세우면 국운이 열릴 것이라 믿고 도력을 부려 하룻밤에 1,000기의 석탑과 1,000기의 석불을 세우기로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닭이 우는 통에 한 쌍의 불상은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그 와불은 지금도 절 서쪽 산비탈에 남아 있다고 한다.

황석영은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운주사를 숙종 때 의적 장길산이 민중과 함께 새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실패했던 ‘혁명의 땅’으로 묘사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1530년 증보된 <동국여지승람> ‘능성현’조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는데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씩 있고, 또 석실도 있는데 두 석불이 등을 마주대고 앉아 있다”고 쓰여 있다.

또 1632년 <능주읍지>에도 “운주사는 현의 남쪽 25리에 있는데 천불산 좌우 산계곡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기씩 있고 석실에는 두 개의 석불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운주사는 임진왜란 때 법당을 비롯해 석불과 석탑이 크게 부서졌던 것을 6.25 이후 새로 지었다. 현재도 산과 절터 여기저기에는 탑과 불상들이 흩어져 있다. 탑은 3층에서부터 5, 7, 9층과 원형다층석탑 등 모두 16기가 남아 있다. 석불은 와불 2기, 좌불 3기, 마애불 2기, 입불 43기, 목이 없거나 형체만 남은 불상 20기 등 모두 70기가 현존한다.

대웅전에서 오른쪽으로 약 200m 오르면 높지 않은 산꼭대기에 전설 속의 와불이 있다.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 있는 쌍부처는 마치 부부처럼 다정한 모습이다. 길이 12m, 폭 10m의 거대한 와불은 도선국사가 천탑을 세우고 마지막 천불인 이 불상을 세우려고 할 때 새벽 닭이 울어 세우지 못했다는 바로 그 전설 속의 와불이다.

*가는 요령
호남고속도로 동광주IC를 나와 만나는 첫 4거리에서 ‘무등산·화순’ 이정표를 보고 직진하면 도심을 거치지 않는 외곽도로로 연결된다. 외곽도로에서 화순 방향 국도 29번을 타고 너릿재터널을 넘는다. 보성 방면으로 달리면 운주사 가는 길이다.
능주 4거리에서 5.6㎞ 진행한 뒤 좌회전해 817번 지방도, 도암쪽 818번 지방도를 차례로 따라가면 운주사 입구에 이른다. 화순읍에서 운주사까지는 15㎞ 정도. 운주사 관리사무소(061-374-0548)

*맛있는 집
운주사 들머리에서 화순 방향 길가에 ‘용강식당(061-374-0920)’이 있다. 미꾸라지 살을 발라내 푹 끓여내는 남도식 추어탕이 전문. 남원식처럼 걸쭉하지 않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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