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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 고소득층 품으로 질주


시장 점유율 3% 이지만 판매액 10% 육박
3000cc 초과에선 46%‥준대형도 잠식 대형·고급차 시장 브랜드 이미지 큰 영향
국내업체 모델 업그레이드 등 대책 부심


수입차 판매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국내 자동차업계에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부가가치가 높고 브랜드이미지 제고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고급차·대형차 시장이 급속도로 잠식돼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고급·대형차 부분을 강화하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14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수입차 판매 대수는 2034대로 지난 6월부터 연속 3개월 2천대를 넘어섰다. 1~8월 누적 판매대수는 1만4938대이다. 이 추세라면 연간 판매량 2만대 돌파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승용차 시장 점유율(3.06%)도 지난달(3.24%)에 이어 계속 3%를 넘어섰다.

3%라는 숫자는 얼핏 미미해 보인다. 하지만 차급별 점유율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통계를 분석해 보면, 지난 7월 대형차로 분류되는 2000cc 초과~3000cc 이하 차량(RV포함) 판매(2만1896대)에서 수입차(1863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8.50%로 훌쩍 높아진다. 3000cc 초과 차량 판매(2116대)에서 수입차(967대) 점유율은 무려 45.69%다. 최고급 대형차 시장은 수입차가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같은 달과 견주어 보면 수입차의 성장세를 알 수 있다. 지난해 7월 2000cc 초과~3000cc 이하 차량에서 수입차 점유율은 4.61%(2만9085대 중 1343대)였고, 3000cc 초과 점유율은 30.69%(1772대 중 544대)였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 양극화로 고급차 시장은 확대되고 있는데 국내 업체들은 빠른 대응을 하지 못하는 반면 수입차업체들은 적극적인 마케팅과 다양한 모델로 고소득층을 파고 들고 있다”고 말했다.

1억원을 호가하는 최고급차는 국내 자동차회사에선 아예 만들지 못하고 있다. 5천만원 안쪽의 고급차 시장도 국산모델은 빈약한데 반해 중저가 수입차 모델은 점점 다양해지면서 수입차에게 고객을 빼앗기고 있다. 지난 5월부터 3천만원대 어코드로 국내 공략을 시작한 혼다의 경우, 고객의 90%가 국산차를 타다가 옮겨타는 경우라고 혼다 쪽은 설명했다. 현대차의 한 영업사원은 “서울 강남지역의 경우, 국산 준대형급 이상을 타던 고객의 30%는 수입차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국산 대형세단 판매량은 전년 대비 22.6% 감소했지만, 수입차는 48% 증가했다.

문제는 대형차·고급차 시장은 가장 부가가치가 높고 자동차회사의 브랜드이미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하다는 점이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수입차 점유율이 3%밖에 안된다고 하지만 판매액 기준으로 본다면 거의 10%에 육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1일 출시한 쏘나타를 업그레이드된 중형차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내년 3월 내놓을 그랜저XG 후속모델(TG)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TG는 3.3람다엔진을 달아 그랜저XG보다 한층 고급스러운 차가 될 것”이라며, “TG를 내놓으면 혼다 어코드, 렉서스 ES330, BMW 5시리즈로 몰리는 고객들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르노삼성이 오는 12월 내놓을 SM7도 소위 ‘하이 오너’(고급대형차를 직접 운전하는 고소득층)를 겨냥하고 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그동안 국산 대형차가 마땅치 않아 수입차로 눈을 돌리던 하이오너들을 상당수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2007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도 수입차 시장에 대한 ‘대항마’ 성격이 짙다. 현대차 관계자는 “세계시장에서 브랜드이미지를 올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당장 국내에서 수입차 시장의 확장을 막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국내업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수입차의 성장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수입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빠르게 옅어지고 있는 데다, 수입차들의 마케팅 공세는 더욱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들기 전에 수입차가 최고급차 시장을 선점해버리면 현대차가 고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수입차 시장의 확대가 장기적으로 국내 생산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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