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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에 지쳐 붉게 물든 꽃무릇


꽃무릇을 아시나요. 초가을, 절 주변을 수놓는 그 붉디붉은 꽃 무리를.

상사화라고도 불리는 꽃무릇은, 꽃이 먼저 피었다 지고나면 그 자리에 잎이 나와 평생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는 꽃이다. 속세의 여인을 몹시도 사랑했던 한 스님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후 붉은 꽃으로 피어났다는 애틋한 전설을 지녔다. 그 때문인지 꽃무릇은 유난히 절집 주변을 붉게 물들인다. 이 맘 때쯤이면 선운사를 비롯, 서해안 일대의 절집 부근에는 어김없이 꽃무릇을 볼 수 있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꽃대 위에 수줍은 처녀의 머리카락처럼 피어난 그 어여쁜 모습을.

옛사랑이 그리워지는 이 때, 숲길을 따라 빨갛게 불을 밝힌 꽃무릇의 행렬 속으로 떠나보자. 전남 영광읍 불갑산 기슭에 자리잡은 불갑사 또한 꽃무릇으로 붉게 물드는 절집이다. 절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건 붉은 신호등처럼 나타나는 꽃무릇이다. 띄엄띄엄 모습을 보이던 꽃송이가 절집이 가까워지면서 연등처럼 긴 행렬을 지어 길손을 맞는다. 살랑이는 가을바람에 붉은 화관을 쓴 꽃무릇이 가냘프게 몸을 나부낀다.

불갑사(佛甲寺)는 삼국시대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한 인도스님 마라난타존자가 백제 침류왕 1년(384)에 영광땅 법성포로 들어와 지은 첫 절이다. 그래서 절 이름도 갑, 을, 병, 정… 의 첫 ‘갑’자를 딴, 유서 깊은 고찰이다.

돌계단을 올라 처음 마주하게 되는 천왕문 안에는 목조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이는 도선국사가 창건한 전북 흥덕 연기사에 있던 조선 중기 때 작품인데, 고종 7년에 설두선사가 불갑사를 중수하면서 폐사된 연기사에서 옮겨 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인도불교를 직수입한 탓에 대웅전 용마루 한가운데 세워진 작은 석탑의 상륜부와 보리수를 새긴 삼존불대는 남방불교의 요소를 풍긴다.

불갑사에 가서 꼭 확인해 볼 것은, 대웅전은 남향 건물이면서 부처님은 동쪽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절은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두 곳뿐이다. 보물 제 830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과 측면 모두 가운데 칸의 세짝문을 연화문과 국화문, 보상화문으로 장식했고 좌우칸에는 소슬빗살 무늬로 처리해 분위기가 매우 화사하다. 경내에는 만세루, 명부전, 일광당, 팔상전, 칠성 각, 향로전 그리고 요사채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참식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수로 10월이나 11월에 암꽃과 수꽃이 각각 딴 그루에서 피며, 다음해 10월쯤에 열매가 붉게 익어 꽃과 열매를 함께 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주변에 불갑산, 불갑저수지주변공원, 내산서원, 용천사, 원불교 성지 등이 있다.

*가는 요령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에서 나와 23번 국도를 타고 영광.목포 방향으로 달린다. 불갑면 소재지 삼학검문소 앞에서 좌회전, 모악리-불갑사에 이른다.

*별미
영광 법성포는 소문난 ‘영광굴비’의 본고장.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던 진상품으로 유명한 이 참조기는 석수어(石首魚: 머릿속에 단단한 뼈가 있기 때문)라고도 한다. 산란을 위해 동지나에서부터 추자도와 흑산도 해역을 거쳐 서해안으로 회유하는 참조기가 3월(음력)중순 곡우 사리경 칠산 앞바다를 지날 때 가장 알이 충실하고 황금빛 윤기가 돌아 이 때 잡은 참조기를 잡아 건조한 걸 영광굴비라 한다.

영광읍내 국일관이 굴비정식으로 전국에 소문난 맛집이라면, 법성포에는 ‘일번지식당(061-356-2268)’, \'007식당(061-356-2216)’ 등이 있다. ‘일번지식당’은 사람 수에 따라 굴비가 한 마리씩 나오는데 거기에 자린고비 찜과 조기매운탕이 더해지고, 서해안에서 나오는 열대여섯 가지의 생선과 해물반찬이 상을 가득 메운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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