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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쏘렌토 5단 자동변속기, 결함 정말 없나


기아자동차 쏘렌토를 두고 벌어진 법정 공방에서 결국 기아가 승소했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들은 패소보다는 소송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이번 소송으로 자동차회사의 판매풍토가 새롭게 바뀌는 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4월말 2004년쏘렌토미션리콜추진카페 회원 326명이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의 주장은 자동차의 치명적인 안전 상 결함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기아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제기한 문제는 품질 상의 문제로 안전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 그러나 이 사건은 리콜에 만족하지 않고, 소비자들이 이를 손해배상 소송으로 직접 가져간 첫 사례로 꼽히며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소송의 발단은 기아가 2004년 성능을 개선한 쏘렌토를 내놓으며 시작됐다. 당시 회원들은 기아가 수동 겸용 자동 5단 변속기를 새롭게 탑재한 뒤 쏘렌토의 성능이 좋아졌다는 말을 믿고 차를 구입했다. 그러나 구입 후 높은 엔진회전수에서 변속이 되고, 엔진이 수시로 회전수를 올리고 내리는 널뛰기 현상을 보이자 문제가 불거졌다.

회원들은 2003년식 이하 구형 쏘렌토(4단 자동변속기)는 엔진이 분당 2,000~2,200회를 회전하는 영역에서 안정된 변속이 이뤄지지만 5단 자동변속기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회원들은 또 ‘운전 정숙성이 향상됐다’는 기아의 광고내용과 실제 나타나는 현상은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며 기아에 시정을 요구했다. 이들은 기아가 경쟁사의 신차 출시에 대응키 위해 기술적인 토대와 검증없이 일본 자트코의 변속기를 그대로 들여와 장착, 문제가 발생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제조사의 조치를 요구했다. 3,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주고 산 자동차가 운행중 심각한 불편과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기아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던 것.

그러나 제조사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이들은 2004년 3월 소비자보호원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소보원은 조사를 통해 2003년 12월13일부터 2004년 1월19일까지 생산된 쏘렌토 5단 자동변속기차 7,230대에 대해 품질개선을 권고했다. 그러나 기아는 소보원의 권고에 따르기는 하되 변속기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ECU 인젝터 코드 점검 및 수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소비자들이 소보원에 제기한 변속기 결함에 관해선 언급도 없었다.

이에 분노한 해당 차 보유자들은 온라인에서 ‘04년쏘렌토미션정식리콜추진카페’를 개설, 뭉치기 시작했다. 카페는 개설하자마자 1,200명이 리콜 서명운동에 나서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결국 기아는 쏘렌토 5단 자동변속기 모델 중 일부에서 변속기를 제어하는 TCU의 프로그램 오류 데이터 입력으로 주행 시 가속불량 및 변속지연이 발생한다며 자체적인 무상점검을 실시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이 또한 기아의 눈가림식 대응이라며 반발했다. 이들은 변속기 문제가 발생하는 차는 대부분 네 바퀴 모두에 구동력이 전달되는 4WD 방식이지만 정작 기아의 무상점검은 두 바퀴에만 구동력이 전달되는 2WD만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기아는 2004년 4월 리콜을 추진하는 카페 회원 일부를 경기도 남양연구소로 불러 각 개발팀 담당자들과 직접적인 미팅을 추진했다. 회사측은 문제가 되는 차의 전자제어 기능을 업그레이드한 뒤 이를 해당 차 보유자들이 시험해보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프로그램 업그레이드차를 시승한 후 프로그램 보정이 변속기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못한다며 공식적으로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회사측도 해당 차 소유자 중 일부만이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점을 들어 변속기관련 건은 단순히 자신의 운전패턴과 상품성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회사로선 기계적인 결함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결국 양측은 결함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갔다. 리콜추진카페 회원 326명은 십시일반으로 소송비용을 걷어 기아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기아도 품질 상의 결함은 인정하되 안전 상의 결함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맞섰다. 결국 법원은 제조사의 손을 들어줬고, 회원들은 패소했다. 현재 회원들은 이후 소송 절차를 포기한 상태다.

소송 대표였던 강일권 씨는 “추가 소송을 제기하려 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패소했으나 소비자들의 힘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을 대기업에 보여준 사례를 남긴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소송을 계속 하려면 변속기 문제가 안전 상의 결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해줄 건설교통부 산하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도 제조사와 같은 입장을 내놓고 있다”며 “결국 해외 연구기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이 비용을 개인들이 감당하기란 무리”라고 덧붙였다. 즉 법정 투쟁을 끝까지 하고는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이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들이 2심을 포기한 데에는 제조사의 엄포도 일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기아 관계자는 “법원 판결 후 어떻게 대응할 지 다각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소송을 계속 제기하면 이에 걸맞는 적절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조사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대응이란 소송비용과 관련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소비자들이 상급 법원으로 소송을 가져간 뒤 만약 제조사가 승소할 경우 소송비용까지 모두 원고측에 떠넘긴다는 것. 이 경우 회원들은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점을 십분 활용한 셈이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한 이견도 적지 않다. 법무법인 백상의 강원필 변호사는 “제품에 문제가 있어 소비자들이 분명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라며 “그렇다면 이에 대해선 일부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게 상식”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의 품질결함과 관련된 이의 제기가 끊이지 않는 만큼 제조물의 결함에 대해선 제조사도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이번 소송을 놓고 상당수 소비자들은 “자동차회사가 소비자들이 자동차에 대해 기술적으로 잘 모르는 점을 이용하려는 풍토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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