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싼 차도 3,000만원 가까이 되는 수입차를 팔려면 현장에서 발로 뛰는 영업사원은 반 도사가 돼야 한다. 자신들이 만나는 고객을 보기만 해도 차를 살 지 안 살 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영업활동을 어느 정도나 해야 되는 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업사원들의 전통적인 고객 판단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전시장에 들어서는 고객의 복장을 살핀다. 너무 화려한 정장을 차려입었거나, 아예 힙합 또는 찢어진 청바지 등 불량한 복장을 한 사람들은 차를 살 가능성이 적다. 세련된 세미 캐주얼을 입은 고객이면 OK. 둘째, 고객과 상담하는 동안 구두나 핸드백, 장신구 등을 본다. 고급 브랜드를 하나 이상 갖고 있는 사람이면 그 만큼 확률이 높아서다. 마지막으로 고객이 몰고 오는 차의 번호판을 확인한다. 구 번호판의 경우 52, 53, 54 등 서울 강남권에 거주하는 사람일수록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영업에는 복병도 있기 나름. 고객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한 게 빗나갈 때도 있다고. 의외로 트레이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오는 고객이 차를 사는 경우가 있다.
이 처럼 영업사원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다고 해도 수입차를 팔기는 쉽지 않다. 내방고객 중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고작 20% 내외이기 때문. 지금 차를 사러 간다고 전화가 와서 외근도 못나가고 기다려보지만 저녁 때까지 연락도 없이 안오는 고객이나, 차를 산다고 약속했다가도 몇 개월씩 연기해 활동비만 날리는 예도 있다. 또 무턱대고 차값을 깎아달라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마진을 포기하는 때도 자주 생긴다.
국내에서 수입차가 판매된 지 벌써 20년이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간 판매대수가 1,500~2,500대에 불과했고 영업사원도 통틀어 100여명뿐이었다. 그러나 올들어 수입차업계는 호황을 맞아 지난 5월까지 1만6,607대나 팔렸으며, 영업사원 수도 10배 이상 늘었다. 이에 따라 수요층이나 영업방법 역시 바뀌고 있다고 각 업체들은 입을 모은다.
시장규모가 작았던 수입차 판매초기에는 기업체 대표, 한국주재인, 외국인 등이 주 수요층이었다. 고객들이 영업사원에게 사례비를 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반면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이 컸고 세무조사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또 어떤 계약자는 차값을 꼭 현금으로 내야 하는 줄 알고 1만원짜리 돈다발을 메고 오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러나 요즘은 국산 대형차 구입자, 전문직, 중소규모 자영업자들으로 수요층이 넓어졌으며 일부 브랜드는 마니아들까지 생겨 영업사원들보다 차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고객들이 흔해졌다. 구매방법도 합리적으로 바뀌어 각 전시장을 돌며 가격 대비 성능과 옵션을 꼼꼼하게 비교한다.
이런 수요층 변화는 영업사원들의 판매방법에도 혁신을 가져 왔다. 10여년 전만 해도 ‘영업은 군대와 학교의 중간이다’라는 말이 나돌 만큼 영업사원들 사이에 기강이 잡혀 있었다. 선배들보다 비싼 차를 모는 건 당연히 안되고, 선배 가방을 들어주는 일도 다반사였다. 선배들은 차를 못파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실적을 넘겨주는 일도 있었다. 영업사원들의 성격은 외향적이고, 성격이나 말주변이 좋아 고객들과 몇 마디만 하면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신세대 영업사원들은 철저한 개인주의 및 능력주의다. 선배들의 눈치를 보는 법도 없고 자신에게 실적을 넘겨 줘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부담스럽다는 것. 또 e메일, 동영상, 문자메시지, 개인 홈페이지 등 각종 새로운 기법으로 차를 판다. 가끔은 물좋은 나이트클럽이나 가라오케에서 고객을 발굴하는 예도 종종 있다. 성격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으로 변한 대신 치밀하고 계획적이어서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판다는 자세로 영업에 임하고 있다.
수입차업계의 한 영업사원은 "수입차시장의 규모가 과거보다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영업사원들의 문화나 세태도 크게 달라지는 추세"라며 "이런 문화를 따라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살아남는 게 수입차 영업현장"이라고 설명했다.
진희정 기자 jinhj@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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