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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솜씨 좋은 디젤 전도사, 푸조 뉴307 HDi 해치백

인피니티 G37의 부산 원정기(메가오토 롱텀 시승기 참조)를 보다가 문득 1년 전 푸조 307HDi를 타고 부산에 다녀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에 한창 관심이 있었던 승용디젤의 합리성을 몸소 느껴보기 위해 고행 길에 자원했었는데, 무사히 잘 다녀오고 나서는 이래저래 사정이 생겨서 그 결과를 정리하지 못하고 넘어갔었다. 생각난 김에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 보기로 한다.

글 / 민병권 (메가오토 컨텐츠팀 기자)
사진 / 박기돈 (메가오토 컨텐츠팀 팀장), 민병권


2007년 2월 23일, 당시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휴게소의 경유값은 리터당 1,172원이었다. 기자의 차는 가솔린이라서 경유 시세에는 무딘 편이지만, 엊그제 한국석유공사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니 2008년 3월 둘째 주 경유값은 전국 평균이 1,482원이란다. 비교를 위해 차계부를 뒤지다 보니 기자의 차는 2007년 2월에 서울 모처에서 비슷한 가격으로 휘발유를 넣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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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값이 올라 휘발유와의 차이가 적어지면서 ‘이 정도 차이면 그냥 가솔린 탈란다!’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설사 경유값이 휘발유값과 같아진다고 해도 연비가 더 뛰어난 디젤승용차는 유류비 절감면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대게 차 값이 더 비싸기 때문에 이를 상충시키려면 주행거리를 평균 이상으로 늘려야 하는 문제가 있다. 또,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딸딸거리고 상대적으로 진동이 크기 때문에 승차감면에서도 뒤진다. 특히 고급차가 아닌 경우에는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소음, 진동에 대해서는 나름 까칠한 본 기자 역시 디젤 승용차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던 때라 307 HDi의 실력이 내심 궁금했다. 나중에라도 디젤 승용차를 구입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영영 담을 쌓고 지내야 할지 307을 통해 확인해보기로 했다.


시승차는 뉴 307 HDi 5도어 해치백. 뉴 307은 2001년 데뷔한 307이 2005년에 페이스리프트 된 모델로, 얼굴부분에 푸조의 새 패밀리룩을 이식 받았다. 구형이 단아한 분위기였다면 신형은 입을 쩍 벌리고 ‘날 좀 보소’라고 말하는 듯. 구형에 비해 조화가 부족해 다소 어색하다는 것이 뉴307에 대한 첫인상이었지만 적어도 햇빛 아래 반짝거리고 있던 하얀색 시승차는 ‘백사자’의 느낌으로 기자를 유혹했다. 앞뒤로 단 하얀색 긴 번호판이 차체 색에 잘 묻어가는 가운데, 리어스포일러와 17인치 휠이 스포티하게 느껴졌다. 후면의 ‘HDi’로고는 ‘i’를 빨간색으로 구분해 작은 액센트를 더했다.

여는 중간에 저항감이 사라져 살짝 어색한 느낌이 드는 도어를 열고 차에 오르니 스포티한 하얀색 바탕의 계기판과 알루미늄 페달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를 직물로 처리한 혼합형 가죽시트 역시 대중적인 승용차치고는 제법 과격한 형상이지만, 높이 솟은 지지부가 보기처럼 딱딱하지 않아 타고 내리기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다만 풋레스트에 왼발을 올린 채 장거리를 운전하다 보면 허벅지가 그 솟아오른 시트 지지부와 닿아 편치 않게 느껴진다. 등받이 각도 조절도 불편하게 되어있다. 307SW처럼 동반석 왼팔 부분에도 접이식 팔걸이를 달아 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인데, 1열 등받이 테이블은 생략되어 있다.

종종 그 단순함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 실내는 사진으로 보기보단 어느 정도 곡면이 섞여있고 표면의 질감과 디스플레이부의 색상, 그래픽이 잘 어우러져 그리 심심하지는 않다. 메탈그레인과 검은색 조작부의 조화가 아슬아슬한 반면 크롬으로 액센트를 준 부분들은 효과가 좋은 편이다. 견물생심이라고, 해외사양에서 봤던 가죽마감 대시보드가 적용됐더라면 경쟁모델 혹은 국산차들과 좀더 차별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암레스트 부분에 가죽마감이 적용된 도어트림의 포켓에는 2리터짜리 PET병을 넣을 수 있는데도 실내공간면에서는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납공간에 대한 배려는 기가 찰 정도다. 가령 사용자설명서 보관용 칸과 필기구, 카드 꽂이를 구분해놓은 글로브박스(쿨링도 된다.)의 구성이라든지, 시트모서리에 달린 포켓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질감이 떨어져 자칫 조잡해 보일 수도 있다. 특히 조악한 플라스틱 마감에다 완충용의 스폰지를 붙인 양면테잎이 끈적거리고 있던 헤드콘솔의 선글라스 케이스는 할말을 잃게 했다.

시승차에는 당시 100만원 상당의 옵션이었던 DMB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었는데, 모니터가 대시보드 상단 가운데 앞 끝에 달려있어 보기가 아주 좋았다. 하지만 터치스크린을 직접 만지려면 대시보드 위로 엎어지다시피 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리모컨이 딸려있긴 하지만 쓰다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고… 메모리카드나 USB의 사용이 불가능해 지도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려면 장착업체를 통해야 한다고 들었었는데 지금은 개선되었는지 모르겠다. 블라우풍트 상표의 CD체인저가 글로브 박스 안으로 이동하고 그 자리에 LCD 정보 창이 생긴 것은 뉴 307SW와 같은 내용의 변화다. 예전 같았으면 버튼을 여러 번 눌러 확인해야 했을 양의 정보를 큼지막한 화면으로 한방에 표시해준다. 다만 좌우 독립 온도조절형 에어컨용의 액정은 기존처럼 하단에 따로 두고 있다.

앞 유리 와이퍼가 작동 중일 때 후진기어를 넣으면 자동 작동하는 뒷 유리 와이퍼, 위급한 상황에서 자동 점등되는 비상등, 속도에 따라 자동 조절되는 오디오볼륨 등 똘똘한 기능들도 갖고 있다. 에어백은 6개, 타이어 공기압 모니터링 시스템이 달려있고 ESP는 비상등 옆의 스위치로 쉽게 끌 수 있지만 위험한 상황에서는 개입이 이루어진다. 도어를 잠그거나 열 때의 경고음과 깜빡이 점멸 방식은 색다른 요소다.


시동을 거니 예쁘장한 겉모습과는 달리 목소리가 걸걸하다. 정차 중 시프트 레버를 D레인지에 두면 시트에 진동이 느껴지고, R에서는 이것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나마 처음 우리나라 땅을 밟았던 푸조의 디젤차들과 비교하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저속 주행 중에는 스티어링휠과 바닥, 페달을 통한 진동을 조금 의식하게 되는 정도. 소음은 창문을 열었을 때 주변에 반사되어 들어오는 엔진음을 통해 디젤임을 상기하는 수준이다. 디젤이라서 크게 거슬리는 부분은 없다. 다만 출발 때 동력 연결이 부드럽지 않은 것은 개선되었으면 한다.

‘랠리에서 숙성된’ 핸들링과 서스펜션 성능은 정평이 나있으니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노면이 좋지 못한 시내를 천천히 달려보면 과다한 정보가 고스란히 입력돼 피곤할 정도이지만 큰 요철을 부드럽게 넘어다니는 솜씨는 뛰어나다. 고속 주행시의 소음도 기대 이상으로 적다. 타이어는 205/50R17 사이즈의 피렐리 P제로 로쏘로 스포티한 설정이다. 브레이크는 저속에서 다소 예민한 편. 정차 중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부자연스러운 버걱거림이 느껴지는 것이라든가 깜빡이 조작 스위치의 조작감이 부드럽지 못한 점등 몇 가지 사소한 불만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공회전시 회전수는 800rpm정도. 레드존은 5,100rpm이고, 풀 가속시 변속은 4,600rpm에서 이루어진다. 수동모드에서도 자동으로 시프트업이 진행되는 타입으로, 수동모드건 스포츠모드건 풀 가속시의 변속포인트는 35, 70, 115, 155km/h로 동일했다. 2,000rpm에서 32.6kg*m, 오버부스트시 34.7kg*m의 최대토크가 발휘되고, 138마력의 최고출력은 4,000rpm에서 나온다. 제원상 0-100km/h 가속시간은 10.1초, 최고속도는 203km/h, 307SW보다 아주 조금 나은 정도이다.

100km/h 정속 주행시의 회전수는 6단 1,800rpm, 5단 2,200rpm. 4단 3,100rpm. D에 놓고 고속도로를 100km/h로 정속주행하니 트립 컴퓨터 상의 순간연비가 100km당 3~5리터를 가리켰다. 우리 식으로는 20~33km/리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평균연비는 어떨까? 연비 실측을 위해 서울-부산 구간을 왕복하긴 했지만 일부러 연비(가 잘 나오도록 하는)운전을 하지는 않았다. 고속도로 구간에서도 정속 주행을 유지하기는커녕 마음 내키는 대로 가감속을 반복했고, 서울-부산 구간만 측정한 것이 아니라 시내주행과 단골 시승 구간에서의 연비를 함께 포함시키기로 했다.

시승차는 총 주행거리가 1,200km를 채 안 넘긴, 길들이기조차 안된 상태였는데, 트립컴퓨터상에는 10.1리터/100km, 즉 9.9km/리터라는 몹쓸(!) 연비기록이 남아있었다. 시승을 마치면 이보다 나아질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먼저, 자주 가는 시승코스 중 한 곳에 다녀오느라 178km를 달렸다. 운전스타일은 상상에 맡기겠다. 연료계 눈금이 두 칸 떨어졌고, 남은 연료로 주행 가능한 거리는 640km를 가리켰다. 그날 밤, 동반인 한 명과 함께 단촐한 여장을 꾸려 부산을 향해 출발했다. (야반도주는 아니었다.)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자 시승거리는 205km로 늘어나 있었다.

장거리 운전을 즐기는 동반인에게 스티어링휠을 넘겨주고 동반석에 앉아 있다 보니 어느새 부산에 도착했고, 새벽 시내를 배회하다가 어딘가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정신을 차려보니 시승거리는 580km를 가리키고 있었고 시승구간 연비는 6.5리터/100km, 즉 15.4km/리터로 나왔다. 연료는 1/4이 조금 넘게 남아있었는데, 아직 300km를 더 달릴 수 있다고 표시되고 있었다.


부산 시내에서 일을 본 뒤 오전 중에 다시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이쯤 되니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연비운전을 했더라면 무급유로 서울-부산 왕복을 끝 마쳤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료경고등은 담담하게 점등되었다. 시승거리가 772km로 늘어난 시점이었고, 주행가능 거리는 아직 110km 남아있었다.

그 상태에서 83km를 더 달렸고,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괴산휴게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307HDi의 연료주입구 마개는 시동키로 열어야 하는 타입이라 시동을 안 끌래야 안 끌 수가 없다. 주유구 형상 때문에 주유건이 들어가지 않자 주유원은 이럴 때 쓰기 위해 준비해놓은 (연료첨가제 용기를 잘라 만든) 깔때기를 이용해 주유를 마쳤다. 20리터를 넣으니 17km였던 주행가능 거리가 520km로 늘어났다. 이때까지의 연비는 부산에서 본 것과 달라지지 않았다. 60리터인 연료탱크 용량과 주행거리로 짐작해보면 실제 연비도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별탈 없이 서울에 도착해 다시 약간의 시내주행을 거쳤고, 시승을 종료할 때 트립 컴퓨터를 확인해보았다. 시승거리는 993km. 시승기간 동안의 평균연비는 6.6리터/100km(15.2km/리터)였다. 차의 총 주행거리에 대한 평균연비기록은 10.1리터/100km였던 것이 8.5리터/100km(11.8km/리터)로 늘어나 있었다. 이전에 대체 어떻게 달렸길래 9.9km/리터라는 연비를 기록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푸조 307 HDi 해치백의 공인연비는 14.4km/리터이다.


307 HDi 해치백의 시승을 마치고 내린 결론은 역시 기자는 당분간 가솔린 승용차를 타야겠다는 것이었다. 딱히 흠잡을 곳은 없었지만 왠지 그것을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당장 오늘 디젤 승용차를 산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돌이켜 보건데, 이처럼 경계심을 늦추고 마음의 빗장을 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 307 HDi였다.

사실 307 HDi 해치백의 가장 치명적인 적은 내부에 있다. 307SW HDi는 같은 베이스, 같은 엔진과 변속기로 비슷한 성능을 내고 연비까지 같지만 탈착식 5/7인승 시트와 글라스지붕 등 매력적인 장비들을 추가로 갖고 있다. 이에 대항해 해치백이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은 좌우로 더 민첩하게 흔들 수 있다는 것과 뒷태가 좀 낫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공간만 보자면 해치백도 충분히 실용적이다. 시승차는 어른 셋과 유아용 시트에 앉은 아기, 약간의 짐, 그리고 중형(?) 유모차를 싣고도 비좁은 감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꼭 필요하지 않다면 왜건의 잉여공간도 사치다.

하지만 이 정도의 변론으로는 해치백을 두둔하기 어렵다. 가격이나 성능 등 수입사측의 정책적인 지원이 없는 한 적어도 국내에서는 해치백이 SW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경쟁모델에 대비한 매력이 충분치 않아 보인다는 점이지만, 게임이 2회전으로 넘어가면 상황은 다른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유럽에서 판매를 시작한 후속모델 308은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더욱 어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푸조 307 HDi 해치백 주요제원

크기
전장×전폭×전고 : 4,211×1,757×1,530mm
휠베이스 : 2,608mm
트레드앞/뒤 : 1,505/1,500mm
차량중량 : 1,470kg
최소회전반경 : - m

엔진
배기량 : 1,997cc
형식 : 직렬 4기통 DOHC 16밸브 VGT
최고출력 : 138마력/4,000rpm
최대토크 : 32.6kg.m/2,000rpm
보어×스트로크 : 85×88mm
압축비 : -
구동방식 : 앞바퀴굴림

트랜스미션
6단 자동 팁트로닉
기어비 1/2/3/4/5/6 : 4.15/2.37/1.56/1.16/0.86/0.69/ R:3.53
최종감속비 : 3.53

섀시
서스펜션 : 앞-맥퍼슨 스트럿, 뒤-크로스멤버
브레이크 : V디스크/ 디스크
스티어링 : 랙 & 피니언(파워)
타이어 : 205/55R17

성능
0-100km/h : 10.1초
최고속도 : 203km/h
연료탱크 : 60리터
연비 : 14.4km/L

가격
3,350 만원 (VAT포함, 내비게이션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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