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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럭셔리 다운사이징 - 재규어 뉴 XJ


굳이 타보지 않아도 견적이 나오는 무난한 차들이 있는 반면, 직접 타보지 않고서는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난해한 차들도 있다. 날이 갈수록 후자에 속하는 차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며, 불과 몇 년 전의 기준으로도 섣부른 평가를 내릴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이면에는 프리미엄 브랜드들을 필두로 최근 유행하는 장르 파괴와 더불어 엔진 다운사이징이라는 중요 키워드가 존재한다.

글, 사진, 편집 / 김정균 팀장 (메가오토 컨텐츠팀)
사진 / 재규어 코리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엔진 배기량만으로 차의 성능을 가늠한다면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F1 경주차에 달린 자연흡기 엔진은 고작 2.4리터 배기량으로 700마력 이상의 출력을 뿜어낸다. 리터당 300마력에 육박하는 이 비현실적인 수치는 제쳐두더라도, 일반 도로를 달리는 양산차들 중에서도 리터당 100마력을 훌쩍 넘어서는 비범한 차들이 흔해진 시대다. 게다가 위화감 없는 터보나 슈퍼차저 등의 과급기가 일반화되고 있는 최근에 들어서는 낮은 배기량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다운사이징 기술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엔진 다운사이징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냐. 결론부터 말하면 장점은 엄청나게 많고 단점은 거의 없다. 엔진이 가벼워질수록 차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 무게가 줄면 그만큼 효율성이 높아지게 되고, 엔진이 앞에 얹히는 일반적인 형태라면 전체적인 무게 배분에서도 커다란 이점이 생긴다. 결국 같은 힘을 내면서 더 가벼운 몸으로 훨씬 경쾌하게 달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단점은? 대배기량의 감성이 그립다는 그 흔한 말. 단지 그것뿐이다.


이제 시승기의 주인공인 재규어 뉴 XJ를 만나보도록 하자. 이안 칼럼이 빚어낸 이 멋들어진 작품은 럭셔리 퍼포먼스를 표방하는 디자인으로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굳이 쿠페형 세단이라는 말로 포장하지 않아도 넋을 잃게 만드는 유려한 라인이 굉장히 감성적이다.

혹자는 현행 XJ의 디자인이 클래식한 재규어답지 않다거나 너무 미래지향적이라는 식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각은 틀렸다.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의 기함들과 비교해보면 XJ는 결코 미래지향적이지만은 않다. 너무 감성이 풍부한 디자인이라 그리 착각할 수도 있으나, 이 시대의 여타 기함들 대비 XJ에겐 여전히 재규어다운 충분한 클래식함이 녹아들어 있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클래식함과 마냥 미래지향적인 것을 혼돈하지 말자.


실내는 호화 요트 같은 분위기의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며 수공예로 가다듬은 부분들도 상당하다. 각 차량마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나오는 목재를 사용한다는 최상급 우드는 물론, 이중 스티치로 장식된 천연가죽 재질이 매우 폭넓게 적용되어 안락함과 부드러움을 배가시켜준다.

모든 정보를 큼직한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보여주는 가상 계기판과 새롭게 적용된 메리디안 프리미엄 서라운드 오디오 시스템 등은 XJ의 가치를 한껏 높여주는 장비들이다. 뒷좌석 또한 품격에 맞는 넉넉한 편안함을 갖추고 있으며 이상적인 승차감을 제공한다.


다음은 다운사이징에 성공한 XJ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능과 주행감각을 테스트해볼 차례. 시승에 앞서 거대하고 길쭉한 XJ 롱 휠베이스 모델을 바라보고 있자니 작은 엔진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절로 생겨난다. 오른발에 아무리 힘을 준다 한들 스트레스 없이 제대로 뻗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만 가득한 채 운전석에 올랐다.

하지만 엔진 스펙부터 결코 무시 못 할 수치들을 보여준다. 최고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34.7kg.m를 발휘하는 2.0리터 직분사 터보차저 엔진은 경량화 설계로 무게가 가볍고 8단 자동변속기와 함께 동력 전달 손실을 최소화시킨 효율적인 시스템을 겸비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에 XJ의 100% 알루미늄 합금 차체도 다시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철판보다 훨씬 가벼운 알루미늄 합금의 존 바디 구조로서, 기본적인 무게가 감소되니 자연스럽게 성능과 연료 효율이 높아지게 된다. 또한 일반적인 볼트 사용이나 용접 방식이 아닌, 우주항공기술에서 비롯된 리벳본딩 방식을 통해 차체 강성을 높임으로서 뛰어난 안정감과 밸런스, 날카로운 핸들링을 가능케 하는 1차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뉴 XJ 2.0 모델은 이러한 차체와 가벼운 엔진이 조합되었기 때문에 전반적인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수밖에 없으며, 그 진가는 실제 주행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가속페달을 지그시 밟으며 출발하자 의외로 탄력 있는 반응이 전해진다. 그대로 오른발에 힘을 주니 직선주로를 뻗어나가는 맛이 꽤나 쏠쏠하고 흥미롭다. 달리기 전에 가졌던 선입견과 의구심이 말끔히 해소되기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일상에서 대형 세단을 운전한다는 범주로 보면 이 정도 힘은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고속도로에서도 시종일관 빠르고 안정감 있는 여유로운 주행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지극히 고요한 정숙성. 오른발의 반응에 따라 이따금 듣기 좋은 엔진음이 스며들기도 하면서 전반적으로 굉장히 조용한 주행감각을 제공한다. 럭셔리 대형 세단다운 정숙성을 위해 여러모로 신경 쓴 흔적이 느껴지는 부분.


직선주로와 고속주행에서 만족스러운 능력을 보여준 저배기량 XJ는 굽이진 코너가 연달아 이어진 좁은 국도에 들어서자 숨겨놨던 진정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상위모델보다 부드럽고 경쾌한 스티어링 반응은 손에 감기는 맛이 일품이고, 한결 가뿐해진 앞머리를 요리조리 흔들어대며 급격한 코너를 빠르게 돌아나가는 반응 또한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탄탄함이 돋보인다. 재규어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히 단단한 하체는 운전자 성향에 따라 여느 독일차들 이상의 만족감을 선사할 수도 있다.


에필로그
결과적으로 뉴 XJ 2.0 모델은 럭셔리 대형 세단으로서의 품격은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충분한 성능과 훌륭한 주행감성을 두루 갖춘, 그야말로 럭셔리한 다운사이징의 진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배기량의 묵직한 감성과 폭발적인 고성능이 사무치게 그립다면 값 비싼 상위모델을 선택해서 더 많은 세금과 유지비를 지불해버리면 그만이다.

어쨌든 선택의 폭은 더 넓어졌고 결정은 각자의 몫이다. 단, 타보지 않고서는 가치를 체감할 수 없는 차가 바로 이런 경우다. 반드시 직접 경험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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