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짝사랑하던 그녀가 곧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건넨다. 떨리는 두 손으로 받아들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축하한다는 말을 간신히 내뱉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슬픔과 아쉬움이 뒤섞여 거칠게 소용돌이쳤다. 그날 시승한 차는 부분변경을 거친 푸조 208. 울컥거리는 마음처럼 울컥거리는 MCP 변속기의 반응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탁월한 운전재미에 빠져들어 잠시나마 슬픔을 달랠 수 있었다.
글 /
김태준 기자 (메가오토 컨텐츠팀)
사진 /
김상준 기자 (메가오토 컨텐츠팀)
편집 /
김정균 팀장 (메가오토 컨텐츠팀)
모델명에서 알 수 있듯 2라인의 8세대 모델인 208은 최근 부분변경 모델로 새롭게 출시됐으나 내외관 디자인이 소폭 달라졌을 뿐, 기대했던 변속기 변경은 없었다. 외관은 푸조의 패밀리룩을 따르면서 새로운 범퍼와 한층 넓어진 그릴, 투톤 헤드램프, 날카로운 테일램프 등으로 스포티함과 강인함을 강조했다.
소형 해치백인 208의 실내는 예상만큼 공간이 협소하다. 넓거나 좁다는 건 개인적인 견해차이지만 배가 살짝 나온 30대 노총각이 타기엔 비좁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통유리로 이뤄진 천장 덕분에 일조량만큼은 풍부하다. 일반적인 선루프처럼 열리지는 않지만 광합성이 필요하거나 그녀를 떠올리며 유리에 맺히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싶을 땐 상당히 유용하다.
P 모드가 없어 MCP 변속기임이 분명한 기어레버를 바라보면 고개를 절로 가로젓게 되지만, 작고 그립이 좋은 D컷 스티어링 휠은 푸조 특유의 끈적이는 핸들링을 가늠케 한다. 절묘한 위치로 보이는 계기판은 스티어링 휠의 각도에 따라 살짝 가려지기도 하지만, 차를 탓하기보다는 배가 나와 각도를 높여야 하는 몸뚱이를 탓할 수밖에.
스마트키와 스타트버튼 대신 키를 꽂고 돌려서 시동을 걸어야 하는 방식은 아날로그 감성을 잃지 말라는 푸조의 배려가 아닐까 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본다. 208은 1.6리터 직렬 4기통 디젤 엔진으로 최고출력 99마력, 최대토크 25.9kg.m를 발휘하며, 수동 기반의 MCP 변속기와 맞물린다. 소형 해치백의 성격에 맞게 일상주행에서 주로 사용되는 1750rpm의 저회전 영역부터 최대토크가 형성되기 때문에 도심에서는 출력이 부족하지 않다.
고성능 차량일수록 스포티하게 달리며 변속을 감행하면 온몸을 짜릿하게 하는 빠르고 강한 변속충격이 운전자를 즐겁게 한다. 하지만 더 나은 연비를 위해 MCP 변속기를 품고 있는 208은 온몸을 저릿하게 하는 변속 딜레이로 운전자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물론 ‘관용’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인 ‘똘레랑스’가 몸에 베인 프랑스인들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성격 급한 한국인들에게 MCP 변속기의 반응은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울컥거리는 변속기가 가뜩이나 우울한 마음을 혼란스럽게 어지럽히던 와중에 굽이진 와인딩 코스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러자 물 만난 물고기처럼 힘차게 코너를 돌아나가기 시작하는 208. 레이싱 게임용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자그마한 스티어링 휠을 요리조리 돌리면서 전달되는 하체의 반응은 톡톡 튀면서도 예리한 감각으로 운전재미를 자극한다. 코너를 돌아나가는 그 순간만큼은 우울한 마음이 치유되는 듯했다.
언제나 그녀 뒤에서 소리 없이 이것저것 챙겨주기만 했던 착하고 순진한 동네오빠의 아쉬운 점은 용기가 부족하다는 것. 스포티한 디자인과 탁월한 핸들링, 뛰어난 연비를 지닌 소형 해치백 208의 아쉬운 점은 MCP 변속기라는 것. 시승을 마칠 무렵, 추적한 빗방울이 208의 유리지붕을 채우기 시작한다. 맺히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시야는 점점 더 흐려지고, 다시금 진한 슬픔과 아쉬움이 한없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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