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뉴스

[여행] 풍류의 고장, 담양의 맛을 찾아서

소쇄원의 담장.
담양 전통식당의 장단지들.
가장 한국적인 정원으로 평가받는 소쇄원.
서울에서 담양까지는 꽤 먼 거리다. 웬만큼 여유있는 일정이 아니면 떠나기 부담스러울 정도지만 늘 마음 한쪽이 그 곳으로 달려가는 것은 담양군 일대에 스며 있는 남다른 풍류와 흉내낼 수 없는 맛 때문이다.


“엇던 디날손이 셩산의 머믈며서, 셔하당 식영뎡 쥬인아 내말 듯소, 인생 셰간의 됴흔일 하건마는, 엇디 한 강산을 가디록 나이녀겨, 적막 산듕의 들고 아니 나시는고” (정철의 <성산별곡> 첫머리)


담양은 조선 중기, 무수한 정자를 중심으로 가사문학이 활짝 꽃피어난 곳이다. 식영정·송강정·면앙정·소쇄원·환벽당 등은 당시 호남문단을 이끈 주요 활동무대다. 경치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자연을 벗한 선인들의 유유자적한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멋과 풍류뿐만이 아니라 그 곳에는 생각만 해도 절로 군침도는 토박이 맛이 여럿 기다리고 있다. 신식당의 떡갈비와 전통식당의 한정식, 그리고 한상근 대나무통밥 등.


맨 처음 조우했던 담양의 별미는 \'신식당\'(☎061-382-9901)의 떡갈비였다. 풋내기 기자시절,바캉스 특집책자를 펴내기 위해 소문난 맛을 찾아 전국을 헐떡거리며 쏘다니고 있었다. 매일매일 만나는 산해진미에 질려 나중에는 어떤 별난 음식이 나와도 식상하고 감동이 없어졌다. 취재를 위한 취재를 계속하던 어느 날 담양읍에 이르렀다.


예나 지금이나 허름하기 그지없는 \'신식당\'으로 들어섰을 때 고기 굽는 연기가 마당 가득했다. \'고기 한 번 유별나게 굽네\'. 시큰둥하게 여기며 들어섰지만 바람에 실린 고기냄새는 확실히 뭔가 달랐다.


곧 우리 앞에 모양을 드러낸 떡갈비는 한눈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3대에 걸쳐 70여년간 손맛을 전수하고 있다는 \'신식당\'의 떡갈비는 갈비에 붙은 기름을 떼어내고 살코기만 발라서 부드럽게 다진 후 다시 갈비뼈에 두툼하게 살을 붙여 떡처럼 구워낸 것이었다. 숯불에 고기를 놓고 양념장을 계속 발라가며 구워낸 갈비맛은 말 그대로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그 때 우리는 앞쪽 지방 취재로 인해 이미 한껏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1인당 두 대씩 나온 떡갈비를 게눈 감추듯 없앴다. \"배부른 상태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데, 도대체 배고플 때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 것일까\" 이런 장탄식까지 곁들여가며.


그 후 남도지방 취재 때면 빼놓지 않고 \'신식당\'을 찾아가 그 황홀한 맛에 감동하곤 했으니 벌써 15년이 넘는 단골집이다. 지난해 여름 담양읍을 찾았을 때도 \'신식당\'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그 맛을 지키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손님들로 떠들썩하게 붐비면서.


\'전통식당\'(☎061-382-3111)의 정성 가득한 한정식을 맛보게 된 것은 담양군 주변의 정자를 찾아 떠난 길에서였다. 건듯 바람이 불 때마다 광주호의 푸른 물살이 게으르게 몸을 일렁이는 남면 지곡리. 소쇄원과 식영정의 고아한 멋과 풍류를 한껏 즐긴 후 고서리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전통식당\'이 보인다.


\'전통식당\'의 예사롭지 않은 기운은 앞마당을 가득 채운 크고 작은 장단지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다. 장독대를 꽉 채운, 반들반들 윤이 나는 장독들에서 안주인의 정성과 바지런한 기운이 거듭 느껴진다.


그런 기대는 정갈하고 푸짐한 한정식을 받게 되면 \"역시!\" 하게 된다. 젓갈류, 장아찌, 김치 등의 밑반찬류만 20여가지가 넘는 상차림은 시중의 흔한 한정식과 차원이 다르다. 그 차이는 다름 아니라 바로 흉내낼 수 없는 정성과 농익은 손맛이다.


2년 묵은 김치가 한 접시에 담겨 나오는 \'삼합\'부터 시작해 담양의 특산품인 죽순숙회, 다진 쇠고기로 속을 채운 섬진강 참게장(임금님 수라상에만 올랐던 귀한 반찬이다), 민물새우젓인 토하젓과 굴로 만든 진석화젓, 한 해 전에 담근 전어창젓, 골뚜기젓, 굴젓 등 젓갈류만 해도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인스턴트 식품이 범람하는 요즘 세상에 놀랍기만한, 묵히고 곰삭은 정성이 아낌없이 상에 오른다. 이 외에도 구이 등 생선요리와 떡갈비찜, 장아찌류와 여러 종류의 산나물이 상이 비좁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식당\'에서 감동한 것은 상차림뿐만이 아니다. 손님을 대하는 주인의 가식없는 반김이었다. 흔히 소문난 맛집은 그 유명세로 인해 손님 보기를 돌같이(?) 한다. 먹으려면 먹고 말려면 말아라. 당신 아니어도 우리 집엔 손님이 넘쳐 탈이다. 뭐 그런 생각이 은연중 종업원들 태도에 배어 난다.


그러나 \'전통식당\'은 그게 아니었다. 허름한 차림새에 일행도 없이 단신으로 찾아간 나를 반갑게 맞았다. 웬만한 한정식집이라면 2인 혹은 4인 이상이라는 단서를 붙여 혼자 온 손님을 문전에서 박대하지만 전통식당은 우선 \'내 집에 온 손님\'을 반겼다.

\"꼭 이 집 한정식을 맛보고 싶으니 1인분 상차림도 해줄 수 있냐\"고 간청하니 주인 윤해경 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먼데서 오신 손님을 어떻게 박정히 내몰 수 있냐”며 흔쾌히 안으로 청했다. 주인의 푸근한 인심 덕분에 혼자서도 상차림을 받긴 했지만, 전통식당에 가려면 정성 가득한 그 많은 반찬들을 남기지 않기 위해 2인 이상 찾아가는 게 예의일 것이다.


최근에 알게 된 \'한상근 대나무통밥집\'(061-382-1999)은 담양읍에서 백양사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둘레 10cm 가량의 대나무 줄기에 찹쌀, 흑미, 조, 수수 등을 넣고 밤, 대추, 은행 등을 곁들여 한지로 봉한 뒤 압력솥에 1시간 이상 찌면 대나무 약효가 스며든 영양식 대나무통밥이 된다. 고구마를 찐 듯한 구수한 향에 쫀득쫀득한 찹쌀과 달콤한 밤, 대추가 어우러져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이 곳에서 또 맛볼 수 있는 별미는 죽순회. 큼직하게 썬 죽순에다 오이, 논우렁 등을 넣어 초고추장, 설탕 파 등의 양념을 곁들여 버무린 죽순회는 아삭아삭한 죽순의 질감과 새콤매콤한 맛이 그만이다.


*담양 정자 나들이
\'금강산도 식후경\'을 만족시켰다면 이제 담양군 내 곳곳에 자리한 정자 나들이를 떠나 보자. 옛사람의 멋과 풍류를 한눈에 보여주는 정자 나들이는 세상사의 시름을, 답답한 무더위를 저만큼 물러나게 한다.


\'그림자를 쉬게 한다\'는 뜻의 식영정은 송강 정철(1536~1593)의 주옥같은 가사문학인 <성산별곡>이 태어난 산실이다.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이자 스승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로, 김성원은 정철의 처외당숙인데 이 곳에서 정철·고경명·백광훈 등과 시를 읊으며 지냈다. 초행길의 사람들이 자칫 식영정으로 오인하는 식영정 아래의 서하당·부용정은 모두 최근에 지어진 정자들이다.


식영정 바로 옆의 가사문학관에는 <면앙집> <송강집>과 친필·유묵 등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가사문학관련 문화유산을 전승하고 보전하기 위해 지난 2000년 10월 완공하였다. 본관과 부속건물인 자미정·세심정·산방·토산품점·전통찻집 등이 있다.


가사문학관 앞 강건너엔 정철·김성원 등이 김윤제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던 환벽당이 있다. 정자 앞 창계천엔 깊은 소가 있어 정철 등이 뱃놀이와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조대\'라는 글씨가 남아 있는 이 곳엔 당시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있어 '조대 쌍송\'으로 불렸다.


가사문학관에서 화순 방면으로 걸음을 옮기면 아름다운 정원 소쇄원이 기다린다. 하늘을 가려 어둑해진 대나무숲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정자와 계곡과 바위와 나무들의 절묘한 어우러짐이 한숨을 내뱉게 만든다.


소쇄원은 조선 중기 때 양산보(1503~1577)라는 이가 만든 정원으로, 현존하는 정원 중 한국 정원의 특색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는 찬사를 받는다. 인공미를 가하지 않고 담장 밑으로 흘러드는 맑은 계곡물은 험한 바위를 타고 굽이쳐 흐르다가 연못 위에서 폭포로 떨어진다. 광풍각, 제월당의 아담한 정자를 에워싼 죽림, 노송, 느티, 단풍 등은 산수화처럼 원림을 이루었다. 옛사람들의 풍류에 취해 광풍각 마루에 등대고 누우면 계곡의 물소리, 바람에 댓잎끼리 몸 부딪치는 소리가 더위를 저만큼 물러앉게 한다.


이 밖에도 “너러바회 우히 송죽을 헤혀고 정자를 언쳐시니…”로 시작되는 <면앙정가>의 무대인 면앙정이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제봉산 자락에, <사미인곡> <속미인곡>의 산실인 송강정이 고서면 원강리 산언덕 울창한 소나무숲에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찾아가는 요령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88고속도로로 옮겨 담양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가면 담양읍이다. 혹은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15번 국도를 타고 담양까지 내처 달리는 방법도 있다.


담양읍에서 887번 지방도로(담양교 옆길)를 타고 남쪽으로 5㎞쯤 가면 대추교 다리 건너 제월리 3거리 왼쪽 산 위에 면앙정이 있다. 송강정은 여기서 남쪽으로 29번 국도를 만나 내려가다 죽록천(송강) 다리 건너 우회전하면 왼쪽 언덕에 있다. 면앙정에서 4.5㎞ 거리.


다시 29번 국도를 타고 500m쯤 가다 고서·원강리쪽으로 우회전한 뒤 곧바로 고서쪽으로 좌회전하면 887번 도로다. 직진해 3㎞쯤 가다 고서면 소재지에서 고속도로 밑을 통과해 화순·무등산쪽으로 직진하면 광주댐 지나 식영정 표지판이 보인다. 왼쪽 언덕 위의 정자다. 식영정 바로 옆에 가사문학관이 있고 여기서 화순쪽으로 1㎞쯤 가면 오른쪽으로 소쇄원 주차장이 있다. 소쇄원은 왼쪽으로 200여m 대나무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나온다. 가사문학관 동쪽 다리 건너편에 환벽당이 위치해 있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

Copyright © CARISYOU. All Rights Reserved.

토크/댓글|0

0 / 300 자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매거진

2025-10-13 기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