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이란 곳은 육지와 떨어져 있어서인 지 늘 마음 한 구석에 알알한 아련함을 준다. 무엇인가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하고 그 곳에 가면 복잡했던 마음들이 스르르 구름이 바람에 날리듯 그냥 흘러가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강화도는 육지와 다리로 연결돼서 그런 지 섬의 본래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지만 넓은 갯벌과 배 주위를 맴도는 갈매기들로 섬다운 매력을 곳곳에 품고 있다. 또 길가의 작은 돌 하나에도 역사와 전설이 담겨 있는 그 곳은 비밀을 하나하나 알게 되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청동기시대 대표적 무덤 중 하나인 지석묘가 있는 곳, 고려 고종 때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마지막 보루로 삼아 도읍을 옮긴 곳, 조선 인조 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마지막 싸움터, 조선말 서양 열강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결국엔 우리나라의 문을 강제로 열게 된 전쟁들과 조약이 맺어진 곳. 학창시절 국사 수업시간에 매시대 빠지지 않고 등장한 곳이 바로 강화도다. 그렇게 강화도 곳곳은 역사와 현 시대가 공존하는 살아 있는 현장이다.
◆아름다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광성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멀리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보이는 광성보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지만 역사를 통해 보면 그 곳만큼 처절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 또 없다. 이 곳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전투를 치른 곳으로 특히 고종 8년(1871년)에 벌어진 신미양요 때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해 200여명의 군인들이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가 되는 걸 거부,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는 전원 순국한 곳이다.
당시 신미양요 전투에 참가했던 미국 해군장교 브레이크 중령의 기록을 보면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도 이렇게 좁은 지역에서 48시간이란 짧은 시간동안 그렇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적이 없다”고 회고할 정도였으나 우리측 피해는 엄청난 데 비해 미국은 3명의 전사자와 7명의 부상자를 냈을 뿐이라고 한다.
입구부터 산책로까지 잘 정비된 광성보는 성문인 안해루 앞에서 왼쪽 옆으로는 광성돈대가, 오른쪽으로 난 길을 걸으면 차례로 어재연 장군과 순국영령을 기린 쌍충비각과 신미순의총과 만나게 된다. 계속 길을 따라가면 순돌목돈대를 지나 용두돈대에 이르는데 길 주변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그윽한 운치를 자아낸다. 강화해협을 지키던 천연요새 용두돈대는 1977년 성벽이 복원돼 지금은 두 개의 포대와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강화도는 일괄표를 구입할 경우 강화역사관, 고려궁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을 모두 관람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전적지 일괄표 요금은 대인 2,700원, 청소년 1,700원.
◆수백년 간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간직한 전등사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던 광성보를 나와 덕진진과 초지진을 지나 우회전하면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람성 안에 위치한 전등사로 들어서게 된다. 1,6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전등사는 고찰답게 갖가지 전설이 내려오는데 그 중 하나가 대웅전 추녀를 떠받들고 있는 벌거벗은 여자 모습의 나녀상에 얽힌 이야기다.
옛날 대웅전을 중건할 때 절을 맡아 짓는 도편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미모의 주모에게 반해 그 동안 벌었던 품삯을 모두 맡겼으나 어느날 이 여인이 그를 배반하고 패물을 들고 몰래 도망가고 말았다. 이에 화가 난 도편수는 추녀를 이고 있는 자세로 대웅전에서 흘러나오는 불경소리를 들으며 참회하라는 뜻으로 그가 짓는 절의 추녀에 그녀의 모습을 조각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전설은 전등사 앞 마당에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에 관한 것. 수령이 500년이 넘는 이 은행나무는 은행열매를 더 차지하고자 하는 욕심많은 강화유수 때문에 어느 날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순식간에 불에 타 오늘날까지 더 이상 은행이 열리지 않게 됐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에 빛이 바랜 추녀의 칠과 오랜 풍상에 거칠어진 나무 대들보 그리고 1,500여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바람과 기원을 말없이 듣고 있는 그 곳의 푸근한 정취가 조급하고 성급하게만 여겼던 세상의 모든 일들이 허망하다는 것을,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는 걸 말없이 들려주고 있는 것만 같다.
◆일몰이 아름다운 환상의 섬 석모도
석모도행 배를 탈 수 있는 곳은 내가면 외포리와 화도면 내리 두 군데다. 외포선착장에서 타면 석모도 석포선착장에, 내리의 선수선착장에서 타면 보문선착장에 닿는다. 카페리에 승선할 때는 꼭 준비해야 하는 게 과자 한 봉지. 배를 따라다니는 갈매기떼는 여행자가 던지는 과자를 아주 정확히 받아먹는 묘기를 연출해주기 때문이다.
왕복요금은 차를 가지고 탈 경우 운전자 1인을 포함해 1만4,000원, 대인은 1,200원, 소인 600원이다. 외포선착장에서는 30분, 선수선착장에서는 1시간마다 출항하는데 석모도에서 돌아오는 배편은 평일과 주말에 따라 달라지므로 꼭 확인해야 한다. 물론 서해안의 장관인 일몰을 바라본다는 핑계를 대고 일부러 막배를 놓쳐버리는 엉큼족도 있으니 조심(?)할 것!
석모도에서 꼭 봐야 할 곳은 삼량염전과 보문사. 삼량염전은 우리나라에서 몇 남지 않은 천일염전 중 하나다. 이 곳에서는 검게 그을린 일꾼들이 햇볕에 바닷물을 건조시켜 얻는 천일염 제조과정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가서 석모도 끝에 위치한 민머루 해수욕장도 들러보자. 아직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편이 아니어서 한적한 이 곳은 2km에 이르는 긴 백사장 아래 썰물 때는 갯벌을, 밀물 때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한참 놀다 이번엔 섬 한가운데 있는 보문사로 발길을 돌려본다.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으로 꼽히는 보문사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 왼쪽으로 석굴법당이 하나 있다. 이 곳에 모셔진 돌상들은 옛날 한 어부가 바다에서 그물로 올려 안치한 것으로 그 어부는 이후 부자가 됐다고 한다. 일반적인 법당과는 달리 전면이 돌로 돼 있어 분위가 색다르다.
대웅전의 오른쪽 뒤로 돌아서면 일명 1,000개의 계단–실제로는 430여개–이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길이 나타난다. 이 곳을 오르면 털털한 모습을 한 마애석불이 눈썹처럼 나온 돌을 이고 앉아 있다. 보문사를 오르는데도 거리는 그리 길지 않지만 경사가 심해 숨이 가빴는데 이 마애불상으로 향하는 끝없는 계단을 보면 숨이 턱까지 차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가슴 터질 듯한 고통을 감수하고 올라가면 자연이 주는 보너스가 하나 있다. 바로 하늘과 수평선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일몰이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장엄한 광경. 일출이 가슴 벅차 오르는 감동을 준다면 일몰은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 선조들을 만나고 일몰로 마음을 감싸주는 그 곳, 강화도. 그 섬에 가고 싶다.
강화군청 문화관광 032-930-3621, 석모도행 배편 삼보해운 032-932-6007
◆강화도 가는 길
88올림픽대로를 이용할 경우 88대로 끝에서 김포ㆍ강화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제방도로를 따라 가거나 3번째 분기점에서 48번 국도로 바꿔 계속 가면 강화대교를 넘어 강화도로 들어설 수 있다. 100번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탈 때는 김포IC에서 나와 김포ㆍ강화 방면으로 진출해 48번 국도 강화 방면으로 들어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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