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을 잇던 피서인파가 뜸해졌다.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이던 그 때를 피해 이 맘 때쯤 휴가 짐을 싸고 있는 실속파들이 있다. 맑은 계곡이 있고, 휴양림이 있고, 전설어린 고개마루가 있는 이 곳은 어떨까. 제천 박달재를 넘어 탁사정에 이르는 코스다. 요즘은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거나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면 서울에서도 짧은 시간에 찾을 수 있다.
제천의 대표적인 명승지인 탁사정은 정자 자체보다 주변의 울창한 송림과 기암괴석, 맑은 계곡이 어우러진 풍광이 더욱 눈길을 끄는 곳이다. 차령산맥과 태백산맥이 갈라져 남서로 달리는 남서쪽 골짜기에 자리잡은 이 곳은 영남지방에서 죽령을 넘어 한양에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맑은 물에 땀에 전 갓끈을 빨았다고 한다.
조선 명종 때 제주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해송 8그루를 심은 것에서 유래해 팔송정으로 불렸으나 1925년 그의 후손 윤근이 이를 중수해 탁사정(濯斯亭)이라 했다. 송림과 해묵은 잡목 속에 가려 정자는 보이지 않지만 크고 작은 바위가 맑은 물 흐름에 씻기어 사방에 널려 있다.
‘파라다이스 라이브 카페’가 있는 산언덕을 오르면 짙푸른 물빛과 깨끗한 바위들이 어우러진 선경이 기다린다. 여름 한철엔 이 주변에서 캠핑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으나 지금은 탁사정의 풍광을 독차지하고 맘껏 즐길 수 있다.

38번 국도를 이용해 이 곳을 찾을 경우 천둥산 박달재를 넘는 재미도 있다. 박달재는 봉양읍과 백운면을 갈라 놓은 천둥산의 험한 고개다. 이 곳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 하나.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마침 해가 저물어 어떤 농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박달은 금봉이라는 처녀를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에게 반해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박달이 과거에 급제하면 함께 살기로 약속하고, 박달은 한양으로 떠났다. 하지만 자나깨나 금봉이 생각만 하던 박달은 과거에서 낙방하고, 금봉을 만날 면목이 없어 그 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한편 금봉은 박달을 떠나보내고 날마다 성황당에서 박달의 장원급제를 빌었으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에서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박달은 그제서야 금봉이 숨을 거둔 고개로 돌아와 땅을 치며 목놓아 울다가 너울거리는 금봉의 환상을 쫓아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됐다.

“결국, 어린 놈들이 연애질하다가 일 쳤다는 사연이네”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뒷전이고 여자에게 빠지면 패가망신하구말구”
박달과 금봉의 동상이 있는 박달재 고개 마루에 서서 관광객들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팔각정 휴게소 스피커에선 끊임없이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가 흘러나오고, 노랫가락에 맞춰 어깨춤을 추던 중늙은 사내 몇은 주막같은 휴게소에 들러 동동주와 도토리묵을 청한다.
*별미
박달재 도토리묵을 빼놓을 수 없다. 제천지역의 청정 산간지대에서 자생하는 도토리를 주원료로 만든 쌉싸름한 토토리묵과 채묵은 순수한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한다. 요즘 도토리묵은 위와 장을 튼튼히 하고 혈액순환을 개선시키는 건강식품으로 인기다. 특히 주성분인 아연산은 우라늄, 중금속 폐수를 정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라이브 요령
서울에서는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제천IC(충주방면)-5번국도-봉양읍 구학리 탁사정에 이르는 길이 가장 빠르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이용하거나 청주, 조치원 방향에선 38번 국도를 타고 충주-박달재터널-봉양읍소재지(좌회전)-5번 국도-봉양읍 구학리 탁사정에 이른다. 현지 교통편은 제천에서 탁사정을 오가는 시내버스가 있다. 25분 소요.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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