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국내 자동차경주가 연초부터 격랑의 파고를 넘고 있다. 지난해말부터 대립의 평행선을 달려 온 KMRC와 한국자동차경주선수협의회가 ‘화합의 물꼬’를 트지 못한 채 ‘결별 카드’를 선택해서다.
국내 모터스포츠가 이 처럼 양분화된 건 레이스 운영규정에 대한 양측의 시각차이가 큰 데서 출발한다. 지난해 드라이버와 팀 관계자들이 모임을 갖고 대외적인 활동을 시작한 선수협의회는 2006년부터 ‘내구 레이스와 투 드라이버 시스템’을 주요 내용으로 한 운영규정을 제안했고, 2001년부터 국내 간판 자동차경주를 이끌어 온 KMRC는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당장 시행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KMRC와 선수협의회는 이견조율에 실패했다. 이후 KMRC는 기존의 큰 골격을 유지하면서 투 레이스 등 몇몇 규정을 손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반면 선수협의회는 당초의 주장대로 ‘내구 레이스와 투 드라이버 시스템’을 받아들일 새 프로모터를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때부터 더욱 급격히 대립양상을 보인 양측은 새로운 프로모터 KGTC의 등장으로 새 국면을 맞았다. 선수협의회와 KGTC가 ‘코리아 그랜드투어링카 챔피언십’을 열기로 합의하고, 이에 따른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개최된 조인식에는 윤철수 선수협의회장을 비롯한 임원진, 레이싱팀 관계자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신생 프로모터 KGTC 허일도 대표이사가 공식석상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비쳤다. 허 대표는 금봉건설의 사장이기도 하다.
조인식을 마친 뒤 윤철수 회장은 “그 동안 KMRC가 국내 모터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건 사실이지만 기존의 단거리 스프린트 레이스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며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경주와 흥행을 위해 새로운 도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선수협의회의 요구와 이해를 충족시킬 수 있는 KGTC와 손잡고 새 시리즈를 출범시키게 됐다”고 덧붙였다. 허일도 대표도 “현재 무료로 운영되는 모터스포츠 이벤트를 2009년까지 수익사업으로 양성하고, 국내 모터스포츠 세계화에도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KMRC와 선수협의회의 결별과정 그리고 이 날 조인식과 기자회견을 지켜 본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은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일단 복수투자자에 의해 설립된 KGTC의 출범에는 이의가 없다”며 “2009년까지 총 35억원, 이 가운데 올해에만 15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 역시 모터스포츠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국내 모터스포츠관장권(ASN)을 갖고 있는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에 프로모터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회 공식명칭에 ‘챔피언십’을 사용한 건 올바른 순서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챔피언십은 KARA의 승인을 받은 프로모터가 대회의 공인을 받을 경우 쓸 수 있는 명칭이다.
내구레이스 추진은 바람직하지만 서킷, 레이싱팀 규모 등 국내 모터스포츠계의 기본적인 인프라를 고려할 경우 너무 이르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우선 국내에는 내구레이스를 소화할 서킷이 드물다. 정확히 말해 피트설비를 제대로 갖춘 태백준용 서킷을 빼면 타이어와 드라이버를 교체하면서 안전을 보장하는 서킷을 찾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선수협의회 관계자는 “스피드웨이의 피트(18개)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GT1/2에 8개, 투어링A에 10개 피트를 우선 배정하고 기타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발표하겠다”고 설명했다. 물론 매 경기 18대 이하의 경주차가 출전한다면 스피드웨이의 피트 규모로도 투 드라이버 시스템을 적용한 레이스를 진행할 수 있다. 다만 18대 이상이 나올 경우 예비예선을 통해 결승 진출자를 뽑을 수밖에 없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출전 드라이버가 공정한 레이스를 펼칠 수 없다.
선수협의회와 KGTC측이 내세운 내구레이스라는 용어 자체도 맞지 않다. 즉 스피드웨이(롱코스 기준 2.125km) 70랩을 주행하는 이벤트는 1시간20분 이내에 승부가 판가름 나기에 ‘스프린트 레이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총 거리 300km를 2시간 정도에 달리는 세계 모터스포츠의 최고봉 F1 그랑프리를 내구레이스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도 이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갖게 한다. 내구레이스는 적어도 4시간 이상 달려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여기에다 선수협의회가 내세우는 ‘저비용 고효율’은 내구 레이스의 본질과도 동떨어져 있다. 내구레이스는 경주차와 타이어메이커의 극한 기술력 대결장, 레이싱팀의 운영 노하우와 드라이버들의 실력을 겨루는 카테고리다.
이를 모르지 않는 선수협의회측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타이어를 교체하지 않고(GT 예외) 중간급유없이 드라이버만 교체하는 148.75km 레이스를 내구레이스라고 부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는 현재까지 드러난 코리아그랜드투어링카챔피언십이 신생 프로모터가 운영한다는 것과, 드라이버 교체를 제외하면 BAT GT 챔피언십과의 차별화를 찾기 어렵다는 데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새 시리즈에 대한 ‘합리적 명분’이 약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부에서는 그 동안의 BAT GT 챔피언십 시리즈가 진행 상의 허점과 불합리한 판정이 잦았다고 지적한다. 또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개인출전자가 많은 점을 예로 들면서 기존의 투 히트(GT)와 투 레이스(투어링A) 제도의 개편을 피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가 반(反) KMRC의 실질적인 동기가 될 수는 없다. 다수의 참여자들이 같은 생각이라면 결별카드를 선택하기 이전에 원만한 타협점을 찾거나 주최측의 반성을 요구하는 노력이 선행됐어야 한다.
국내에 자동차경주가 소개된 지 이제 20년. 햇수로는 이미 성년을 맞았으나 국내 모터스포츠계의 저변은 나이만큼 성숙하게 자라지 못했다. 국내외 자동차메이커를 비롯해 기업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경주차 규정을 세계적인 기준에 맞추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 자칫 내분으로 비칠 수 있는 우리 모터스포츠의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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