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들어 중고차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들이 시행되거나 마련되고 있다. 이는 중고차시장이 신차시장에 종속적이라는 그간의 인식에서 벗어나 21세기 유통의 중심에 우뚝 서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 시행에는 각 이해단체들의 이권이 첨예하게 맞물려 있는 데다 행정편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 정작 소비자보호라는 원래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19일부터 전격 단행된 중고차 성능점검기록부 의무교부 시행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살펴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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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실추
4월19일부터 발효된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중고차 매매상사들은 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검사소, 1,2급 정비공장, 일정한 시설을 갖춘 매매조합의 성능검사소에서 중고차의 성능을 점검한 뒤 소비자에게 성능점검기록부를 발급해야 한다. 이 중 매매조합과 1,2급 정비공장은 성능점검과 관련된 이해당사자다. 매매상사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매매조합은 회원들의 입김에 항상 노출돼 있다. 따라서 조합의 성능검사소는 소비자보다 회원들의 입맛에 맞는 성능점검서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1,2급 정비공장도 마찬가지다. 이들 정비업체는 큰 고객인 매매상사와 결탁하고 상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이같은 조합과 정비공장의 유착 움직임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지역 매매상사들이 대당 3,000원 정도의 점검비만 내고 한 정비공장에 차를 몰아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비업계는 성능점검을 제대로 하려면 30분 이상 소요된다고 예상한다. 현재 10분 정도 걸리는 승용자동차검사에 1만5,000원을 받는 것으로 미뤄보면 3만원 이상 필요하다고 정비업계는 덧붙였다. 건교부도 이 법을 시행하면서 3만원 정도 들 것으로 내다봤었다. 결국 매매상사와 정비공장이 밀약을 맺고 체계적인 점검보다는 점검서 발급에만 신경쓸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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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성능점검
바뀐 성능점검기록부는 이전의 검사항목보다 많아지고 세분화되는 등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기록부에 허술한 부분이 많아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성능점검업체는 중고차를 점검한 뒤 구조변경여부를 쓰고 수리 및 조정이나 교환, 양호 중에서 해당항목에 V표를 기록토록 돼 있다. 그러나 차종별로 점검기준이 다른데 이처럼 일률적으로 돼 있는 간단한 점검사항만으로 객관적 평가를 내리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장치에 들어가는 수많은 부품 중 몇개가 불량일 경우 장치상태를 해석하는 데도 검사자의 주관적 기준이 들어갈 수 있다. 한 검사자가 양호라고 내릴 수 있는 장치평가에 다른 검사자는 교환이나 수리필요라는 판단을 할 수 있어서다. 때문에 허위로 점검한 뒤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소재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이는 중고차값에 점검비용이 직^간접으로 포함되는 상황에서 소비자 부담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건교부는 이에 대해 성능점검기록부가 성능을 전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 허위 점검은 정비전문가들을 동원해 밝힐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허위 여부는 법이 판별할 문제라고 한 발 비켜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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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시기 문제
법 공포와 시행을 같이 실시하면서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매매업계가 법이 적용되는 첫날인 지난 4월19일 당일에야 관련 공문을 접수하는 등 법 시행에 대한 사전 고지가 충분치 못했다. 매매상사들은 바뀐 성능점검기록부를 미처 마련치 못해 이전 기록부를 대신 발급했다. 또 성능점검시설을 갖추지 못한 매매조합들은 서둘러 인근 정비공장과 제휴를 맺느라 부산을 떨었다.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성능점검이 시행 첫날부터 삐걱거렸다.
매매업계는 유예기간없이 법이 전격 시행된 것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성능점검으로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이익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지난해 매매업체를 통해 거래된 사업자거래대수는 98만여대. 성능점검 비용을 3만원으로 산정하면 1년간 300억원에 육박한다. 대부분의 매매조합들은 성능점검시설이 없어 그 이익의 상당수는 정비업계에 돌아간다. 건교부는 이같은 문제제기에 입법예고 단계부터 관련업계와 여러차례 협의했으므로 갑자기 실시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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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법 고지 소홀
건교부는 정비공장이나 매매조합의 성능검사소 등 점검업체의 허위점검 사실이 적발되면 자동차관리법 제57조와 80조에 나온 '부정한 행위\'로 보고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실을 매매업계에 정확히 알려주지 않아 건교부에 직접 질의한 몇몇 업체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매매업체들의 대표기관인 자동차매매조합연합회조차 정확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연합회측은 심지어 허위점검 시 처벌은 정비업체에만 해당되고 건교부에서 이에 대한 공문을 받은 적이 없다며 매매조합의 성능검사소와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건교부의 고지 소홀과 연합회의 사실확인 미숙이 결합돼 빚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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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검사소의 전문성 미흡
성능검사는 자동차검사소에서 시행되는 게 공정성 시비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해당사자인 매매업 및 정비업과 상관없는 데다 교통안전공단 소속이므로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검사소는 성능점검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대부분의 검사원들은 검사관련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 자격증은 성능점검을 담당할 수 있는 정비자격증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단본부는 현재 검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성능검사교육을 준비중이지만 언제 교육이 실시돼 제대로 된 성능평가가 이뤄질 지는 알 수 없다. 건교부가 법 시행 전 검사소와 협의하고 관련대책을 마련했다면 이 혼란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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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모든 걸 원점으로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은 공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매매조합사업의 성능검사소와 1·2급 정비공장, 자동차검사소로 이원화돼 있는 성능점검 주체를 자동차검사소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검사소 검사원들의 자질을 꾸준히 향상시키고 중고차 성능점검 처리에 무리가 없도록 검사소 수와 인원을 늘리는 것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게 비용이 많이 든다면 차선책으로 엄격한 선정과정을 거쳐 점검업체를 지정한 뒤 정부의 지도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성능점검이 실질적인 소비자보호장치가 될 수 있도록 점검기준도 좀 더 명확히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또 관련업계의 유착을 철저히 감시하는 한편 허위점검 시 처벌도 강하게 적용해야 한다.
<최기성 기자 gistar@hanch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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