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라는 광고가 인상적인 2009년형 그랜저를 시승했다. 출시 후 매년 약간의 변화만을 거쳐 왔으나, 2009년을 맞아 현대가 개발한 6단 자동변속기를 최초로 장착한 모델로서 등장했다. 어느덧 4세대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을 만큼 국산차로선 꽤나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그랜저의 최신형 모델, 그중에서도 판매의 주력인 Q270과 함께했다.
글 /
김정균 기자
(메가오토)
80년대에 시작된 그랜저의 역사는 과장 좀 보태 우리네 현대사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사의 역사이기도 하고 현대자동차의 역사이기도 하다. 연세가 있으신 분이라면 네모난 디자인으로 지금은 일명 \'각그랜저\'라 불리는, 80년대에 태어난 1세대 모델을 기억하실 것이다. 지금도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TV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시대를 대변하는 자동차의 역할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아주 드물지만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도 마주칠 수 있다.
1세대 그랜저가 풍지풍파 많았던 그 시대에 딱딱하고 권위적인 이미지의 최상위 모델로 인식되었다면, 2세대 뉴그랜저는 그보다 좀 더 부드럽게 다가왔다. 3세대인 그랜저XG 부터는 현대의 기함 자리를 에쿠스에게 내준 채 보다 대중적인 고급 세단으로 등장했으며, 그 후속으로 나온 4세대 그랜저TG는 아예 쏘나타의 업그레이드버전 성격이 더 짙어졌다. 이젠 위로 제네시스까지 출시되면서 그랜저라는 이름은 과거 현대의 기함 자리에서 이제는 대중적인 고급 중형 세단의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 쏘나타와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패밀리 세단이라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 어디서든 가장 많이 보이는 모델은 현대의 주력인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로 구성되는 세단 삼총사다. 기자 개인적으로 현행 4세대 그랜저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수의 LED로 구성된 커다란 리어램프. 이런 디자인을 고급스럽다고 느끼는 연령대를 위해 만들어졌겠지만, 야간주행시 앞에 있는 그랜저의 리어램프 덕분에 눈이 피곤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제 구형이 된 1세대 에쿠스도 마찬가지. 그 어떤 세계적인 럭셔리카에도 이처럼 과도한 LED 리어램프가 사용되진 않는다.
사설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2009년형 그랜저의 핵심은 현대-기아가 공동으로 개발한 파워텍 6단 자동변속기다. 수입차야 이미 오래 전에 7단, 8단이 등장했고 이젠 듀얼클러치까지 대중화 되었지만 4단과 5단만을 고집하던 현대가 스스로 6단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며, 최근엔 엔진에서 나름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기에 몸집이 큰 메이커로서 미션까지 잘 만들어 낸다면 앞으로 파워트레인 부분에 있어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겠다.
눈부신 리어램프만 제외하면 한국인의 취향에 너무나 잘 들어맞는 그랜저의 디자인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칭찬받을 수 있다. 중후하면서도 고급스런 이미지, 그리고 쏘나타보다 한 급 높다는 인상을 확실하게 풍기고 있는데 출시 후 세월이 꽤나 흘렀기 때문에 제네시스를 비롯한 요즘 출시되는 신차들에 비하면 세련된 맛은 다소 부족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세단으로서의 이미지와 존재감은 여전히 확고하다.
앞모습은 라디에이터 그릴의 디테일이 초기형에 비해 약간 수정되었다. 쏘나타의 그냥 네모로 보이는 눈매와 비교하면 훨씬 곱상해 보이는 헤드램프, 얇은 크롬 몰딩이 들어간 범퍼, 무난한 본닛 주름, 전륜구동 답지만 과하게 튀어나오지 않은 오버행 등이 눈에 익을 대로 익어 친숙한 얼굴을 하고 있다.
측면에선 뒤 펜더 위에 곡선으로 부풀려진 라인이 그랜저의 가장 큰 특징인데, 가만 돌이켜보면 3세대인 XG도 직선적이긴 하지만 이와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다. 이렇게 뒤를 강조하는 라인은 최근까지 가져와 신형 에쿠스나 차세대 컨셉카에서는 보다 뚜렷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휠은 현대자동차에 의하면 \'제네시스나 렉서스 등의 고급차에 사용되는 하이퍼 실버도장 17인치 휠\' 이라고 한다. 최근의 현대-기아는 1.6 준중형에까지 다소 과도한 17인치를 장착하는 마당에, 그랜저에선 차라리 18인치로 끼워넣는게 눈이라도 즐겁지 않을까 싶다.
뒤쪽엔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커다란 리어램프가 위치해 있긴 하지만, 디자인은 전체적인 모습과 어울려 보인다. 끝이 살짝 치켜 올라간 트렁크리드는 BMW가 유행시킨 요소와 닮아있다. 듀얼 머플러는 200마력 이하의 출력을 감안했을 때 기능적인 효율성 보다는 장식용의 성격이 더 짙다고 할 수 있는데, 330급에만 듀얼로 장착하고 그 이하는 싱글로 하는 편이 전체적로 중후한 그랜저의 디자인과 더 어울릴 것 같다.
실내의 모습엔 변화가 없다. 다만 2009년형 그랜저에선 그동안 없었던 장비들이 부분적으로 새롭게 들어가 있는데, 최근의 현대, 기아차에서 많이 장착되고 있는 버튼시동장치, 에코드라이빙 시스템, 룸미러 포함 하이패스 단말기 등이 그것이다. 다만 시승차의 트림이 Q270 디럭스이며 네비게이션, 후방카메라와 하이패스 옵션만 추가된 구성이기 때문에 버튼시동장치는 빠져있었다.
일단 실내에 들어서면 현대차의 가장 큰 장기인 넓은 실내공간이 돋보인다. 그 외에 모든 부분은 무난함 그 자체. 시트의 착좌감은 다소 푹신한 느낌이며, 시승차의 트림에 의해 슈퍼비전 클러스터가 아닌 일반 계기판이 눈에 들어온다. 스티어링휠도 현대차에서 가장 많이 쓰인 무난한 디자인이지만 약간 오돌도돌한 가죽처리로 인해 손에 잡히는 감촉은 우수한 편이다.
수많은 차종을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장비의 만족도에 대한 평균치\' 라는 것이 몸에 배어 있게 되는데, 특히나 실내 부분에선 좋고 나쁨이 바로바로 느껴지게 된다. 그랜저의 실내에서 확연하게 느껴지는 장점은 딱 손에 잡히기 좋은 위치와 길이의 기어변속레버. 단점은 센터페시아와 대쉬보드의 플라스틱 질감이다. 우드그레인 장식은 위쪽에 라인으로 처리, 도어트림까지 연결되며 도어손잡이에도 사용되는데, 특이하게 해보려다 어중간해져버린 느낌이라고 할까. 국산차에서 우드그레인의 사용은 높은 연령층에게 고급스러워 보이기 위함인데, 사용해 놓고도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덜한 것은 아쉽다.
현대차가 다른 국내메이커나 수입차에게 절대로 지지 않는 것이 바로 뒷좌석의 넓은 공간. 아니, 실내 전체 공간도 그렇다. 체형은 서양인보다 작은 동양인임에도 차체 크기와 공간에 집착이 대단한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에 안성맞춤형이라 할 수 있겠다. 동급 비슷한 크기의 차체에서 현대차보다 실내공간이 더 넓은 수입차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자동차 선진국이라는 독일, 일본차들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과연 넓게 만들어낼 기술력이 없어서일까.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자면 끝이 없겠고, 이것 하나만 감안해 두자. 무엇이든 얻는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도 있다는 것을.
그랜저는 예로부터 쏘나타와 더불어 전형적인 국산차 내지는 현대차의 주행감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모델이다. 그렇다면 그 주행감각이란 것이 도대체 어떻길래 수많은 전문가나 매니아들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항상 입버릇처럼 꼬투리를 잡는 것일까. 예를 들면 물침대 같은 승차감, 코너에서 휘청거리는 불안한 느낌 등등. 이러한 표현들을 써가며 국산차의 승차감에 대해 지적하는 이들은 단단함으로 대변되는 대부분의 독일차나 단단함을 추구하는 일부 일본차들을 칭송한다. 도대체 왜?
아마도 다양한 차종들을 경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독일 프리미엄 3사로 대표되는 세련된 단단함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직접 소유한 오너들도 마찬가지. 문제는 다양한 차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거나 잠깐의 시승이 대부분인 소비자들과는 갭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정답은 없다고 본다. 특히나 한국에선 더더욱 그렇다. 세련되고 단단한 하체가 좋다 한들, 국내 메이커가 당장 그렇게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 오랜 역사를 가진 자동차 선진국의 기술력을 하루아침에 따라잡으라 하는 것은 마치 축구 대표팀에게 계속 월드컵 4강정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2002년엔 홈이었고 어드밴티지가 작용했다. 마찬가지, 국내 자동차 메이커도 홈에서는 어드밴티지로 인해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싸우면 힘들지 않겠나.
또한, 연령층이 높은 소비자로 갈수록 물렁하고 출렁이는 것을 일컬어 \'승차감이 좋다\' 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니 적어도 내수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델들은 그러한 한국인의 취향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고 그동안 잘 맞춰져 왔다.
아우토반으로 유명한 독일차는 막강한 출력과 단단한 하체로 뛰어난 고속 안정성을 지녔으며(그래서 코너링도 우수한 것, 코너가 먼저는 아님), 궂은 날씨와 싸워야하는 스웨덴차는 차체 부식 등 극한에서의 내구성에서 뛰어나다. 또한 굽이진 도로가 많은 프랑스차는 핸들링이 우수하며, 땅 넓고 연비 걱정 없던 미국차는 덩치 큰 대배기량이 주를 이뤘다. 오타쿠적 성향이 짙고 몇 대째 가업을 잇는 장인정신 등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본은 그러한 요소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상품성 뛰어난 차들을 만들어낸다.
결국 이러한 예로 알 수 있는 것은 각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그 나라의 환경이나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차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야 팔리니까. 여기서 한 가지 추가된다면 차량에 적용되는 법규의 영향도 있겠다. 한국차의 경우 환경보다는 취향과 법규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출렁이는 승차감의 큰 차체 대비 힘이 부족한 차량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아무튼 이러한 것들에 맞춰져 온 국산차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기 이전에 소비자들의 취향과 국내 현실을 먼저 감안해야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자, 이쯤 되면 2009년형 그랜저의 시승기에, 더군다나 6단 변속기의 적용으로 인해 달라진 점이 궁금하셨던 분들은 도대체 본론이 언제 나오나 답답해하실 수도 있겠다. 왜 이러고 있냐 하면, 사실 모두들 예상하시는 것과 별다를 게 없어 자세히 파고들어갈 여지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주행특성은 이전의 그랜저와 같다. 다만 6단변속기의 채용으로 인해 성능과 연비가 좀 더 효율적으로 개선되었다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변속기의 감각이 괜찮다는 것 정도가 다르다. 6단으로 변하면서 트러블이 발생한다거나 기술적인 허점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기존의 5단보다 부드러운 변속감이 만족스럽다. 수동모드에선 6000rpm 근처까지 제맘대로 변속되지 않아 그랜저의 성격을 감안했을 땐 꽤나 적극적인 사용이 가능하다. 결국 기어단수가 한 단 많아짐으로 인해 얻게 되는 장점들을 무난하게 얻었으며, 그 이상의 특별한 것은 없다. 훌륭한 점은 꽤나 무난한 실력을 보여준다는 것, 걱정이라면 높은 출력에 대응할지에 대한 의문과 내구성에 대한 불안감을 앞으로 떨쳐내야 한다는 것이다. \'무교환 자동변속기 오일\'에 대해선 실제 오너들이 판단해줘야겠다. 기자가 오너라면 그래도 교환해주겠지만..
계기판에 보이는 에코 드라이빙 표시는 예민하고 소심한 A형에겐(기자도 A형) 매우 효과적인 장비가 아닐 수 없다. 달리고는 싶은데 빨갛게 변해버리면 어찌나 속상한지. 빨리 녹색으로 되돌려놓고 싶은 충동을 참기 힘들어진다. 적색과 녹색의 중간단계인 흰색은 아이들링이나 약간만 힘주는 주행시에 들어오며 130km/h를 넘어가면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도 녹색은 볼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적색 경보등을 보지 않으려 애를 쓰며 달려도 주유게이지의 바늘은 자꾸만 더 떨어진다는 것. 역시나 공인연비보다 많이 떨어지는 실연비는 국산 중형급 이상에서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가 아닌가 싶다. 기어단수 한 단 늘어나는 것으로 모두 다 해결될 리는 없으니 말이다.
하체의 감각은 앞서 길게 언급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과 일맥상통하는 전통적인 그랜저의 그것이다. 다만 과거 1세대 그랜저와 최신형 그랜저의 차이점이라면, 과거엔 소프트한 승차감 자체에 충실했지만 지금은 직선에서 약간 노면정보를 전달하는 듯 해 솔깃해지다가도 코너에선 여지없이 특유의 실력을 발휘해버린다는 것. 따라서 그 반대가 되면 괜찮겠다 싶은 바램도 드는데, 최근 현대차의 특징인 이부분에 대해선 신형 에쿠스의 시승기때 보다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에필로그
2009년형 그랜저에 처음 장착된 자체개발 6단 자동변속기는 앞으로 현대-기아차의 다양한 모델들에 사용될 것이다. 결론을 내어 보자면 그 완성도가 꽤나 훌륭하다. 기존의 4단, 5단에 비해 효율적인 것은 물론, 전체적으로 무난한 감각을 지니고 있으며 내구성에 대한 의구심 또한 버려도 상관없겠다. 지금껏 현대차의 자동변속기에 익숙해져 있던 오너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다만 그랜저에서는, 특히나 시승차의 2.7리터 엔진과는 제대로 된 효율과 실력을 발휘하기에 아쉬운 매칭이라는 느낌이 든다. 판매의 주력이 270이라고는 하지만, 새로운 6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2009년형부터는 330의 매력이 더 높아지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결국 그랜저의 성격상 신형 6단변속기에 대해 살짝 간만 볼 수 있는 수준이다. 아울러 앞으로 출시될 현대-기아의 신모델에 장착되며 차츰 업그레이드될 파워트레인에 대한 기대는 한껏 높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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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오토] 2009 그랜저 프리미엄 갤러리
[메가오토] 2009 그랜저 신차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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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오토] 2009 그랜저 시승기 댓글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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