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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깨고 싶지 않은 꿈, 벤틀리 컨티넨탈 GT 스피드


메이저급 메이커에는 판매량에 상관없이 이미지 메이커 역할을 하는 모델들이 포진되기 마련이다. 벤츠, BMW, 아우디, 렉서스, 닛산 등 각각 고성능 쿠페형 모델들을 내세우는데 그보다 한 수 윗급의 모델들은 어떨까? 물론 성능이야 큰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분명히 다르다. 각각의 메이커별로 코너에서 앞서는 모델이 있는가 하면 고속영역에서 앞서는 모델들도 있다. 선택은 드라이버의 취향에 맞게 주머니만 열면 된다.

럭셔리를 지향하는 벤틀리라는 브랜드가 있다. 그 중 컨티넨탈이라는 모델이 있는데, 플라잉스퍼, GT, GTC 로 나뉘며 모델별로 고성능 버전인 ‘스피드’ 라는 모델들이 있다. 기자의 기억력이 맞다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세단으로 뽑힌 차가 벤틀리의 플라잉스퍼다.

2월 마지막 주 화요일 아침에 깜빡 잠이 들어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벤틀리 컨티넨탈 GT 스피드 라는 모델을 시승하게 되었다. 꿈속에서 들뜬 마음으로 벤틀리 매장을 찾아가 키를 건네 받고 후광을 내뿜는 녀석의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며 감상에 젖는다.


헤드램프는 좌우 두 개씩 구성되며 큼지막한 그릴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앞 펜더부터 시작되는 캐릭터 라인은 도어를 지나면서 사라지지만 뒷 펜더에서 나오는 라인을 강조한다. 리어램프는 타원형으로 되어있으며 시그널 램프는 빛을 발하지 않을 시에는 붉은색으로 통일감을 준다. 범퍼에 얼굴을 내민 머플러가 녀석의 성질을 암시하고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기자 역시 벤틀리 모델을 처음 접하는지라 보닛을 여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운전석에서 보닛 스위치를 당긴 후 락 스위치를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았는데 보닛에 벤틀리 엠블럼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본 후 그제서야 열수 있었다. 엠블럼이 락 스위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루프를 따라 리어 윈도우에 다다르면 전폭과 거의 비슷한 폭을 가진 LED 보조제동등이 눈에 띄는데 점등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상당한 포스를 느끼게 해준다. 조금 더 아래쪽으로는 리어스포일러가 앙증맞은 크기로 장착이 되어있는데 변속기 레버 아래쪽 스위치로 수동 조절이 가능하며 고속에서는 알아서 올라와 제 역할을 하고, 속도가 떨어지면 본래 위치로 돌아가 대기한다.

트렁크를 열라면 보닛을 열 때와 비슷하게 벤틀리 엠블럼의 ‘B’ 를 꾹 누르면 전동식으로 스르르 열린다. 트렁크 내부는 생각보다 좁지 않았는데 전폭이 넓은 탓도 한몫 한다. 트렁크 내부 칸막이를 들춰내니 정렬적인 빨간 템퍼러리 스페어 타이어가 자리하고 있다. 제발 금일 시승엔 빨간 스페어 타이어를 사용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트렁크를 닫을 때에도 버튼을 누르면 스르르 닫힌다. 후방에는 행여 스크레치라도 날까 센서와 카메라가 항시 대기하고 있다.


본격적인 시승에 앞서 시트에 앉아 실내를 들여다 보기로 했다. 도어를 열고 시트에 앉으니 쿠페 답게 바닥에 가라앉는 느낌이다. 도어를 닫을 때 덜 닫혀도 다시 열고 닫는 일은 없다. 벤츠나 BMW의 오토매틱 도어와 같이 스스로 잡아당겨 안락하게 맞이해주기 때문이다. 쿠페는 철저히 운전자를 위한 모델이지만 GT 스피드는 다르다. 2열에도 넓은 공간과 창문까지 열고 닫을 수 있어 큰 불편함은 느끼기 힘들다. 물론 세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인테리어는 짐작하겠지만 가죽과 우드의 조합이다. 이 많은 부분을 가죽으로 덮었으니 도대체 몇마리의 가축이 희생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절묘하게 조합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디지털 감성은 센터에 마련되어있는 화면이 대변하고 있으며, 아날로그의 감성은 시계와 송풍구의 바람을 막고 여는 스위치(?)이다. 처음엔 스위치의 용도를 몰라 돌렸다 눌렀다를 반복하다 용도를 겨우 찾았는데 스위치를 잡아 뽑으면 송풍구에서 바람이 나오며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는 바람을 막아버린다.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스위치 하나로 품격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계기판은 분당 회전수를 나타내는 타코미터와 속도계가 양쪽에 배치가 되어있는데 속도계는 340km/h까지 나타내고 있다. 중앙 하단부에는 수온계와 연료게이지가 자리하며, 중앙 상단에는 트립컴퓨터가 차량 정보를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GT 스피드는 스타트 버튼을 채용하고 있지만 스티어링휠 왼쪽으로는 포르쉐와 같이 키를 직접 돌려 시동을 걸 수도 있는데, 이는 컨티넨탈 모든 모델에서 동일하다. 이제 잠자는 녀석을 깨워볼 차례다. 브레이크를 밟고 긴장되는 손가락으로 시동 버튼을 눌러본다. 12기통의 시동을 걸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난타공연’이 시작되는데 아스팔트 바닥 전체를 공연장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웅장한 사운드가 압권이다.

우선 서스펜션 세팅을 노멀모드로 맞춰 운행을 해보았다. 노멀모드라곤 하지만 워낙 단단한 하체여서 잠들 걱정은 없을 걸로 보이며 그렇다고 예민해질 정도는 아니다. GT스피드라는 차량을 몰고 불평을 할 순 없는 일 아니겠는가? 세팅을 스포츠로 놓고 운행을 해보니 큰 차이점을 느끼긴 어렵지만 요철 부근 등을 지날 시에 좀 더 직설적으로 운전자에게 노면상태를 보고한다.

60km/h로 정속주행을 하다 S모드로 옮긴 후 풀로 스로틀을 열어보니 상체가 시트에 푹 파묻히다 못해 시트를 뚫을 것 같은 가속력이 느껴지면서 엄청난 사운드의 난타 공연이 본격화 된다. 12기통의 북치는 소리는 더 밟아보라고 유혹하지만 기자의 스킬로는 이녀석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자신이 없다.

기자가 이녀석을 데리고 할 수 있는 거라곤 가속, 감속, 도로사정이 허락하는 최고 속도 등이 전부일거란 생각이다. 쉽게 말해 이녀석을 감당해 낼 간튜닝(?)이 안되어 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행여 슬립이라도 일으켜 아름다운 GT스피드 옆구리에 스크레치라도 내는 날에는 후환이 너무 두렵다. 시승 전 차량 가격을 보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12기통 6리터 엔진은 6단 변속기와 맞물리는데 최대 출력은 610마력으로 컨티넨탈 GT 보다 50마력이 높으며 6,000rpm에서 나온다. 최대토크는 76.6kg.m/1,600rpm으로 상당히 낮은 영역대에서 나온다. 그렇다 보니 2.5톤에 가까운 무게를 거리낌없이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스티어링휠을 단단히 잡고 패들을 이용하여 가속과 감속을 하며 변속을 부지런히 해보았다. 먼저 스티어링휠은 칼럼에 장착이 되어 조향하게 되더라도 움직이진 않지만 일반 패들보다 크기가 큰 까닭에 불편함은 전혀 없으며 조작감 또한 상당히 좋다. GT스피드의 성격이 와인딩 코스를 공략하는 차량은 아닌지라 굳이 스티어링휠에 패들을 부착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제원상의 제로백(0 -> 100km/h)은 4.5초로 신형 911시리즈의 S마크가 붙은 녀석들과 같으며 세단형인 플라잉스퍼 스피드보다는 0.3초 빠르다. 최고속도는 326km/h로 이 역시 세단형 모델보다 4km/h 높다.


시판되는 고성능 모델들은 보통 250km/h 에서 더 이상의 속도를 허락하지 않지만 일부 브랜드는 오너의 간튜닝 상태를 확인하려는 듯 속도를 허락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포르쉐이며 기자 역시 911모델로 간튜닝을 시험해본 적이 있다.

우천으로 인해 도로사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직선주로에서만 최고속을 느껴보기로 마음먹고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보았는데 계기판을 보지 않는 이상 속도를 가늠할 수가 없다. 저속에서 속도계의 움직임은 타코미터가 상승하듯 가파르게 상승하며 디지털 속도계는 1단위가 아닌 10단위로 정신 없이 올라간다.

150km/h 정도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이미 230km를 넘어서고 있는 속도계를 보며 고속주행에서 상당히 안정감을 받았는데 체감속도가 200km/h라고 느꼈을 땐 이미 270km/h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로여건상 더 이상의 고속 테스트는 힘들었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안정감에 녀석을 다시 보게 된다.

무거운 차체에 브레이킹은 어떨까. 노면이 젖은 도로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끝까지 밟아보니 ABS 작동과 함께 운전자가 원하는 곳으로 머리를 돌리며, 큰 차체에 비해 무난하게 세워버린다. 노면 상태가 좋았다면 완만한 코너에서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지만 직선에서 시험한 결과이다.


밴틀리에서는 차기 모델의 데뷔를 2010년이나 2011년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베이스가 되고 있는 폭스바겐의 페이톤에서 서스펜션, 브레이크 등을 A8과 공유한다고 한다. 기존 W12기통 6리터 엔진은 유지하지만 출력을 다소 높아질 걸로 보이며, 현재 시판되는 모델보다 30~40마력 정도 높아질 것으로 해외에서는 보도되고 있다. 차후 출시되는 컨티넨탈을 시승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시승이 된다고 하면 그때는 꼭 실내화를 가지고 갈 생각이다. 시승 날 비가 내려 물 묻은 신발로 매트를 밟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마음 아팠기 때문이다.

단 몇 시간의 꿈이었지만 꿈속에서 만난 벤틀리 GT스피드는 시승 내내 주위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포스를 내뿜는 외형을 지녔으며, 실내는 럭셔리가 뭔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 또 이런 꿈을 꾸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번에 이런 꿈을 꾸게 된다면 그때는 깨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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