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하기만 해도 기술력을 인정받을 정도로 악명 높은 지옥의 랠리, 다카르 랠리에서 7회 연속 우승을 포함해 총 12회 우승이라는 대단한 기록을 쌓아올린 미쓰비시의 정통 오프로더 \'파제로(PAJERO)\'가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저마다 세단을 따라하며 크로스오버를 표방하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물게 정통을 지켜나가고 있는 파제로는 역시 기대했던 만큼의 오프로드 실력과 기대 이상의 온로드 주행성, 그리고 풍부한 장비들을 갖추고 랠리의 황태자다운 터프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글 /
김정균 기자
(메가오토)
파제로는 개인적으로 사연이 있는 모델이라 기억 속 깊숙이 박혀있다. 오래 전 기자가 운전면허를 취득했을 때 처음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던 차가 바로 파제로다. 어린 나이의 초보 시절 커다란 덩치를 타고 다니며 그저 운전한다는 것 자체로 마냥 즐거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기자의 첫 경험? 이었던 파제로를 저세상으로 보내야 하는 사건도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단 한 번의 사고 경험을 파제로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호위반하며 돌진하는 버스와 크게 충돌해 결국 폐차시킬 수밖에 없었던 파제로를 바라볼 때의 심정이란... 그런 파제로에게 정말 고마운 것은, 큰 사고였음에도 기자의 몸이 멀쩡했다는 사실. 가벼운 찰과상 하나 없는 온전한 상태로 기자를 지켜준 파제로는 그래서 더욱 잊을 수 없다.
당시 2세대였던 파제로는 그 후에도 끊임없이 다카르 랠리에서 우승의 금자탑을 쌓아올렸고, 기자도 가끔 TV 중계를 통해 사막을 내달리는 파제로의 모습을 보며 응원했었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2009년, 그 동안 4세대까지 진화한 파제로를 만나러 신사동 MMSK 서울 매장에 찾아갔다. 출격 준비를 마치고 기자를 기다리고 있던 검둥이 파제로는 기억 속 그때의 이미지처럼 터프하고 당당한 모습. 녀석을 바라보며 잠시 회상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고 있었다. 이젠 기억속의 파제로가 아닌 한국시장에 정식으로 출시된 현재의 파제로를 투철한 직업정신에 입각해 분석해볼 차례. 그런데 이 녀석, 과거와 달리 온로드 주행실력이 꽤나 출중하다. 그렇담 장기인 오프로드는? 서둘러 한적한 교외로 나가 파제로에게 어울리는 험한 길을 찾아다녔다.
국내 출시된 파제로는 3.2리터 Di-D 커먼레일 디젤엔진을 얹고 있다. 최고출력 200마력(3800rpm), 최대토크 45.0kgm(2000rpm)를 발휘, 낮은 영역부터 두터운 토크감이 뿜어져 나오며 스포츠모드 겸용 INVECS ll 5단 자동변속기와 조합된다. AWC는 주행환경에 따라 2H, 4H, 4HLc, 4LLc 로 각각 전환시켜 달릴 수 있는 SS4-ll 시스템과 맞물리고 프레임과 모노코크의 장점을 결합한 빌트인 레더프레임 구조의 차체를 바탕으로 더블위시본(앞), 멀티링크(뒤) 서스펜션과 함께 네 바퀴 각각의 트랙션을 제어하는 ASTC가 포함되어 있다.
뭐가 이리 복잡하냐 하면, 터프하게 생긴 파제로지만 그 안에는 오랜 역사와 랠리 우승으로 다져진 뛰어난 기술력에 바탕을 둔 수많은 장비들이 서로 맞물리고 현대식으로 해석되어 특유의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과 편안한 온로드 성능 모두를 잘 커버해내며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파제로는 결코 만만한 차가 아니다. 겉모습은 최근 유행하는 크로스오버 성격의 SUV들에 비해 투박해 보이지만, 오랫동안 갈고닦은 파제로의 실력만큼은 세련된 것이다.
그 진가는 특유의 오프로드 성능을 체험할 수 있는 험난한 코스에서 바로 드러났다. 여기다 싶은 장소를 발견, 2WD에서 4WD로 전환 후 진입하기 시작했지만 오프로드 경험이 별로 없는 기자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눈앞에 보이는 길이 일반적인 세단이라면 엄두도 못 내고 돌아가야 할 정도의 거친 코스였기 때문이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파제로를 믿고 가속페달을 서서히 밟기 시작했다. 그러자 굴곡 안으로 바퀴가 빠지면서도 미끄러짐 없이, 그리고 하체에서 오는 불안감 없이 뒤뚱거리면서도 거침없이 전진해 나간다.
만들어진 길을 달리는 건지, 파제로가 길을 만들어나가는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가 되자 앞서 잔뜩 걱정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젠 아예 놀이기구 타듯 재미를 느끼며 일부러 푹 파인 구덩이만 골라가며 달리게 된다. 심하게 경사진 미끄러운 진흙바닥을 지나가면 운전석에 앉아 느끼는 차체의 기울어짐은 마치 쓰러질 것처럼 무섭기도 하지만, 정작 불안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 안정되고 진중한 거동으로 인해 조금 더, 좀 더 기울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하며 결국 스릴을 즐기게 되었다. 최대 45도까지 버텨낼 수 있지만 직접 시험해볼 장소는 찾기 힘들었다. 사실 그 정도 경사라면 수치적인 등판능력 이전에 운전자가 심리적으로 가능할지를 먼저 시험해 봐야 할 것 같다.
분명 현 시점의 파제로는 오프로드 성능에 있어서도 과거보다 한층 더 세련된 실력을 뽐내고 있다. 산길을 신나게 휘젓고 다니다가 평소 다른 SUV들로 테스트했던 비포장의 넓은 공터가 떠올랐다.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한걸음에 달려가 공터 한가운데서 스티어링휠을 마구 잡아 돌렸더니, 역시나 여타 SUV들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 휘청거리며 미끄러졌던 대부분의 SUV들과는 달리, 파제로는 4WD 모드에선 미끄러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2WD 모드에서 자세제어장치를 끄면 드리프트 비슷하게 즐길 수도 있다. 공터를 떠나기가 아쉬워지며 전날 비가 내려 생긴 커다란 물웅덩이에 뛰어들었다. 고여 있던 물을 촤악 하고 가르며 시원함을 느끼는 순간엔 세단이나 스포츠카로 즐길 수 없는 또 다른 맛이 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제 잘 포장된 아스팔트로 나와 2WD로 전환 후 속도를 높여 달려 나간다. 뒷바퀴 굴림 상태로 약 언더의 스티어링 감각을 느끼며 굽이진 코스를 돌아나갈 때의 선회성도 만족스럽다. 온로드 주행 중에는 디젤엔진 특유의 진동과 소음도 꽤나 억제되어 있어 2009년의 파제로라는 것이 세삼 실감나는 부분. 오프로드와 달리 온로드에선 다이나믹하게 달리는 성격이 아니기에 스티어링휠의 적당한 무게와 페달의 답력 등은 편안한 크루징을 하기에 알맞은 세팅이다. 고속도로나 국도를 느긋하게 달리다가 멋진 절경의 자연 속으로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차, 그것이 파제로인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도심형 SUV들에 비하면 뚜렷한 성격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겠다.
실내는 필요한 대부분의 장비가 모두 갖춰진 모습이며 커다란 차체 덕분에 높고 넓은 공간을 자랑한다. 실내에서 A필러와 B필러 부분에 손잡이가 달려 있는 것과 뒷좌석 에어컨 송풍구가 마치 버스에서 본 것처럼 좌우 지붕 쪽에 위치한 것은 파제로의 성격이자 특징이다. 손잡이는 오프로드에서 윈도우를 내리고 머리를 밖으로 빼내 밑을 확인할 때 잡기 유용하며, 뒤쪽 천정의 에어컨 송풍구들은 무더운 여름 날씨에 강력한 에어컨 성능과 함께 작용해 악조건에서도 시원한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한다.
스티어링휠의 디자인은 친숙한 느낌이고 크루즈컨트롤 조작버튼이 눈에 띈다. 화이트와 블루 링의 조명이 조합된 계기판은 파제로의 내, 외관 디자인에 비하면 매우 스포티해 보이며, 양쪽 원 가운데로는 파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구동방식 표시상태가 네 바퀴 모양의 조명을 통해 정보를 전달해준다. 센터페시아는 무난한 모습, 상단에는 과거 아날로그 형태로 표시되었던 나침반과 고도계 등의 오프로드를 위한 각종 정보들이 디지털 창으로 깔끔하게 표시된다. 오디오 부분에선 이제 미쓰비시 모델들을 통해 익숙해진 락포드 오디오 시스템의 엠블럼이 여지없이 새겨져 있다. 후면의 우퍼를 통해 중저음의 베이스가 강하게 때리는 것이 특징인 이 오디오 시스템은 미쓰비시의 다른 모델들보다 파제로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음질을 들려준다. 과거 이런 종류의 모델에선 희귀했던 장비인 전자동 에어컨은 이제 당연한 듯 장착되어 있다.
마치 거인의 손에 사이즈를 맞춘 것 같은 커다란 기어변속레버와 구동방식 전환레버는 파제로의 또 다른 특징. 이는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의 디자인이다. 다만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스포츠모드를 사용해 기어변속레버를 위아래로 조작하며 달리는 맛이 쏠쏠하다. 보통은 손바닥으로 조작하게 마련이지만 파제로의 큼직한 기어변속레버는 자꾸만 주먹으로 툭툭 치게 된다. 디자인에 영향 받은 심리적 요인이라고 해두자. 뒷좌석 공간 역시 널찍하며 포지션이 1열보다 확실하게 위로 올라가 있기 때문에 시야가 답답하지 않다. 시트 베리에이션은 다양해서 많은 조합이 나오며 리어시트를 모두 앞으로 재껴버리면 둘이서 자리 깔고 누워도 될 만큼 커다란 적재공간이 마련된다.
이제 한적한 곳에 세우고 밖으로 나와 파제로의 겉모습을 찬찬히 둘러볼 차례. 녀석의 외모를 표현하자면 강인함, 터프함, 당당함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커다란 덩치는 어지간해서 꿀릴 차가 없으며 직선적인 라인들이 랠리 챔피언이자 오프로더로서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커다란 크롬 라디에이터 그릴과 그대로 연결되는 헤드램프는 사각의 한군데를 자른 것 같은 디자인으로 과거에 비해 변화의 폭이 큰 모습. 방향지시등이 내장된 사이드미러와 클리어타입의 리어램프, 파노라마 선루프 등 디테일적인 부분에서도 그렇지만, 차체의 전체적인 디자인 또한 라인을 굴곡지게 사용함으로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파제로의 모습을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터프한 이미지 자체는 변함없으며 높고 곧게 선 루프라인과 리어해치 겉으로 달린 스페어타이어 등은 여전히 전통의 모습을 지켜가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모델일수록 과거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디자인이 두드러지는데, 패션도 옛날에 유행했던 복고패션이 다시 유행하듯, 자동차의 디자인도 언제까지나 유선형의 우주선처럼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모습이 다시 두드러지기도 한다. 파제로의 경우엔 전통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적절한 조율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시승을 할 땐 언제나 노면상태가 좋고 뻥 뚫린 직선도로, 혹은 굽이진 와인딩코스의 잘 포장된 도로만을 누비게 마련이지만, SUV의 본모습을 점차 잃어가는 크로스오버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아주 드물게 파제로와 같은 정통 오프로더를 만날 때면 복잡한 도시와 아스팔트를 떠나 제대로 된 자연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흙을 밟고 다녔던 이번 시승은, 마치 엄청난 고성능의 스포츠카를 시승한 것처럼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파제로와 함께하면서 머릿속엔 자꾸만 레인지로버나 디스커버리 등이 떠올랐다. 이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정통 오프로더라는 공통된 매력을 감안하면 파제로는 충분히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다. 몸값이 너무 높은 레인지로버라면 이번 시승처럼 오프로드를 실컷 즐길 수가 없었을 테니까. 아무튼, 결론적으론 우거진 산속에 들어가 이렇게 한 번 소리쳐 봐도 좋을 듯 싶다. 남자라면 파제로~!!!
{del}
[메가오토] 미쓰비시 파제로 프리미엄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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