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오프로드 명가 랜드로버의 기함, 사막의 롤스로이스라는 별명을 가진 레인지로버는 크고 강인한 차체와 럭셔리한 실내, 온갖 장비들을 만재하고 최강의 오프로드 실력을 발휘하는 자타공인 최고의 SUV다. 최근엔 온로드에서 괴물 같은 성능을 발휘하는 SUV들이 많아졌지만, 레인지로버 만큼은 오프로더로서 전통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런 레인지로버에 최고의 조합이라 평가되는 8기통 터보 디젤엔진이 탑재된 TDV8 Vogue와 함께했다.
글, 편집 /
김정균 기자
(메가오토)
\'최고\' 라는 수식어가 붙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경력과 실력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경력이 많으면 경험과 노하우는 쌓이겠지만 자기 개발을 게을리 했다간 실력은 제자리걸음 혹은 퇴보하기 십상이고(열에 아홉은 게으르다), 타고난 재능과 자기 개발로 실력이 좋다 해서 경험과 노하우를 쉽게 뛰어 넘기도 힘들다. 경험과 실력 둘 다 갖춘 사람은 결국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만, 둘 다 부족하다면 내공을 먼저 쌓아야겠다.
한 가지 예외로 천재가 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기자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천재 비슷한 사람 말고, 진짜 천재는 아무리 노력하고 즐겨도 이길 수가 없다. 언젠가 메가오토 회원님의 댓글 중에, 사람은 타고나길 잘 타고나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기자도 그 내용에 많이 공감했다. 세상이 공평하길 바라는가? 아니, 세상은 온통 불공평한 것들 투성이다. 그것에 불평하고 투덜대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세상에서 뒤쳐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한민국에선 더더욱. 이 나라는 완전 \'다이나믹 코리아\' 그 자체다. 뭐든지 다이나믹하고 스펙타클해서 조금만 넋 놓고 있다가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게 된다. 아주 가벼운 예로, 일전에 외국의 한적한 동네에서 살다 온 한 친구가 조수석에서 한국의 도로를 처음 경험할 때의 그 표정이란... 난생 처음 타는 무서운 놀이기구에 앉아있는 것 마냥, 잔뜩 겁을 집어먹은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앞차나 옆차와 자꾸만 부딪힐 것 같다며...)
이야기가 딴 데로 새고 있는데, 이렇게 넋 놓고 있다가 치인다는 것이다. 정신 차리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아무튼 차도 마찬가지,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차라 할 수는 없고, 아무리 뛰어난 차라 해도 역사가 짧으면 인정받기 쉽지 않다. 끊임없는 개발로 수준 높은 기술력을 갖추며 오랜 시간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야만 진짜 인정받는 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역사와 실력을 두루 갖춘 녀석이 있다. 역사는 말 할 것도 없다. 전통의 오프로드 명가로 불리는 랜드로버사의 기함이니까. 실력은 논하기에 앞서 먼저 가격표를 한 번 보고 시작하자. 몸값이 꽤나 높은 8기통 터보 디젤의 레인지로버 TDV8은 시승차를 받고 달리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왜 비싼 녀석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당일 오전 정신이 없어 터보 디젤인지 가솔린 슈퍼차저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승차를 받으러 갔었는데, 커다란 덩치를 건네받고 출발한 후에 호사스러운 인테리어를 감상하며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가 타코미터를 확인하기 전까진 디젤인지 구분이 안갈 만큼 소음과 진동이 느껴지질 않았다.
가솔린 못지않다거나 디젤치곤 조용하다는 그런 표현들을 넘어서는 수준인지라 작년 가을 경험했던 BMW 535d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흡음재나 이중 유리 등의 철저한 방음대책은 당연하며, 엔진 자체의 소음이 매우 억제되어 있어 외부에서 들리는 음색 역시도 조용한 편이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엉덩이에 붙은 TDV8 엠블럼을 확인하고는 엔진룸을 열었다. 어이쿠, 쉽게 접하기 힘든 심장이다. 요즘 세상에 8기통 디젤엔진을 만나는 건 드문 일. 이 귀한 심장 덕분에 거대한 덩치가 가뿐하고 매끄럽게 달릴 수 있으며 가솔린 슈퍼차저의 유일한 단점? 이었던 몹쓸 연비도 훨씬 기특하게 나와 준다. ‘레인지로버는 연비가 꽝이다’ 라는 지금까지의 고정관념 정도는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다.
디젤 모델은 역시 풍성한 토크감이 매력.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디스커버리에 장착되어 최고출력 190마력/4000rpm, 최대토크 44.9kgm/1900rpm을 발휘하는 V6 2.7 엔진도 힘에서 부족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V8 3.6 터보의 TDV8은 최고출력 272마력/4000rpm, 최대토크 65.3kgm/2000rpm의 넘치는 파워를 보유하고 있다.
제조사에서는 배기량 대비 작고 가벼운 엔진임을 내세우며, 기존 V6 디젤엔진 대비 54% 강력한 힘, 64% 향상된 토크를 제공하고 엔진소음은 75% 낮추었다고 한다. V6 디젤의 디스커버리도 디젤치곤 무척 조용하지만, 레인지로버 TDV8 정도면 힘과 정숙성 모두에서 한 차원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고 보면 된다.
변속기는 현행 레인지로버의 기반이 되었던 BMW X5 등에도 장착되는 ZF제 스텝트로닉 6단 자동으로서, 마찬가지로 S모드와 스포츠모드를 겸비하고 있다. 변속감은 시종일관 아주 매끄러움 그 자체이며 온로드에선 마치 대형세단 같은 부드러움도 느끼게 해준다. 사실 이번 TDV8 Vogue는 레인지로버라는 것을 떠나 엔진과 변속기, 하체 등 파워트레인의 조합이 너무나 만족스럽다.
가뜩이나 높은 차체에 더 높은 시트 포지션까지 겹쳐 녀석의 덩치에 올라타 앉으면 다른 SUV들과 비교해도 시야가 높아, 마치 트럭이나 버스에 탑승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커다란 덩치가 처음엔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오지만, 이 부담스러움은 달리면 달릴수록 사라져 간다.
직접적으로 비교하자면, 아래급인 디스커버리보다 분명 실제 수치는 더 큰데 달리면서 느껴지는 체감적인 차체의 부피는 레인지로버가 더 작다. 이유인즉슨, 넘치는 파워를 기본으로 만족감 높은 에어서스펜션과 편안한 핸들링 감각 등이 맞물려 거대한 덩치가 아주 손쉽게 반응해주기 때문이다. 오죽 했으면 시승을 마치고 돌아와 디스커버리와 제원을 비교하며 혹시 레인지로버가 더 작은 것 아닌지 노파심에 확인까지 했을까. 다만 현행 X5나 X6처럼 소프트한 쪽으로 세팅된 하체는 조금만 더 단단하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안겨줬다. 에어서스펜션의 높이 조절뿐만 아니라 감쇄력까지 확실하게 바꿔줄 수 있다면 온로드에서의 만족감이 더 높아질 것 같다.
신나는 온로드 주행을 마치고 이제 오프로드로 들어설 차례. 초입부터 세단이라면 들어서기 겁나는 울퉁불퉁한 길을 에어서스펜션의 오묘한 느낌으로 아무런 잡소리 없이 능글능글하게 잘도 지나간다. 이 비싼 녀석으로 오프로드를 실컷 달릴 수 있는 간튜닝? 혹은 그만큼의 재력만 뒷받침 되어 준다면야 거친 곳에서 레인지로버는 그야말로 최고다.
이젠 엔트리급인 프리랜더에도 장착되어 랜드로버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은 눈길-초지-자갈, 진흙-패인길, 모래, 바위, 온로드 등 각각 5가지 모드로 나눠져 있으며, 각 상황에 맞는 주행을 스스로 행해준다. 조작 다이얼의 그림을 보고 돌리면 모니터에 함께 표시되며, 에어서스펜션이 알아서 조절되고 구동력 배분이 이상적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모든 모드에 맞는 환경을 한 번의 시승으로 다 찾아다니며 시험할 수는 없다. 다만 최대한 경사지고 굴곡진 오프로드를 골라 달리며 느껴지는 감각은 뭐랄까, 그냥 잘 달린다는 표현 보다는 아주 고급스럽게 지나간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한쪽 바퀴가 완전히 들려 있는 상황에서 나머지 바퀴들이 각각 다른 회전으로 돌아가며 자세를 잡고 패인 곳을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을 밖에서 지켜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신기하기까지 하다.
편안하고 파워 넘치는 온로드 주행, 그리고 역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수밖에 없는 오프로드 주행까지 마치고 나서 꽤나 더럽혀진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니, 처음의 깨끗했던 모습보다 오히려 더 존재감 있고 당당해 보인다. 유선형의 세단 같은 SUV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각진 몸매로도 귀티가 좔좔 흐르는 외모를 자랑하고 있는 레인지로버는 아래의 디스커버리나 파생모델인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비교해도 분명 한 급 높은 포스를 뿜어내고 있다.
아무튼, 수준 높은 파워트레인에 가려지는 레인지로버 본연의 모습을 골똘히 음미해보진 못했지만, 이 고풍스러운 풍채 안에 또 다른 매력이 숨어 있다. 호화 요트를 벤치마킹 했다는 실내 인테리어인데, 계기판과 윈도우 조작 스위치, 이렇게 두 가지만 제외하면 나머진 모두 흐뭇하기만 하다. 클래식해 보이면서도 어지간한 최신 장비들은 모두 탑재하고 있으며, 특히나 넓고 화려한 센터페시아를 바라보면 다른 차종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뒷좌석에선 앞 시트의 헤드레스트 부분에 박혀있는 각각의 모니터로 TV 시청은 물론 외부기기를 입력해 즐거운 장거리 여행을 책임져 줄 수 있는데, 하만/카돈 LOGIC7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의 풍성한 사운드가 덤으로 주어진다.
단지 앞서 언급했던 계기판은 도무지 실내 다른 부분과 매칭이 안 될 정도로 너무 수수한 모습이며 아래 급 모델들과의 차별성도 없어 혼자 왕따인 것 같고, 야간 주행 시 조명 또한 다소 어둡기 때문에 약간 거슬린다. 그리고 팔을 쭉 뻗어도 멀리 있는 당신, 윈도우 스위치만큼은 전통의 모습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그런데 이 멀리 있는 스위치가 특이해서 좋다는 동승자도 있었는지라, 역시 정답은 없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언급해야 할 부분은 도어를 열면 자동으로 내려오고 닫으면 올라가는 사이드스텝. 이 장비야말로 레인지로버의 뽀대?를 완성시켜주는 최고의 완소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이틀 동안 이 장비에 적응되며 시승을 마치고는, 다른 SUV에 올라탈 때 자꾸만 발을 헛딛으며 좌절했던 해프닝도 있었다.
에필로그
기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인정하는 SUV가 있다면 바로 레인지로버와 FX, 이렇게 두 녀석이다. 서로 완전히 상반된 성격으로 포스를 내뿜는 두 녀석은 매력이 넘쳐흐르는 것이 사실, 세부모델을 꼽자면 FX50과 이번에 만난 레인지로버 TDV8 Vogue를 주저 없이 추천하고 싶어졌다. 기자가 개인적인 생각으로 너무 특정 차종을 두둔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이 두 녀석은 어쩔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덩치 큰 SUV라 하면, 작고 낮고 빠른 녀석들을 좋아하는 기자의 취향과 완전히 동떨어진 장르임을 감안할 때 스스로도 완전 의외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건 레인지로버의 리모컨 키. 그냥 투박하게 생겼는데 5층 정도 높이에서 떨어트려도 멀쩡하단다. 그래서 마음 단단히 먹고 시험하려 했다가 혹시 망가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그냥 관두고 말았는데, 이 작은 장비에서도 레인지로버의 성격이 나오는 것 같다. 이 키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부유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오너일 가능성이 높지만, 한편으론 거친 오프로드에 뛰어들어 스릴을 만끽하는 모험심 강한 돈키호테의 성향도 갖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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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오토]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TDV8 Vogue 프리미엄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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