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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멀티 플레이어의 진가 - 닛산 알티마 3.5

작년 한국시장에 정식으로 진출한 닛산이 무라노와 로그에 이어 대표적 중형세단이자 베스트셀링 모델인 알티마(Altima)를 선보였다. 현행 알티마는 4세대 모델로서 3.5와 2.5 두 가지 라인업이며, 비슷한 성격과 가격으로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혼다 어코드가 직접적인 경쟁상대다. 주력인 3.5리터 모델의 시승을 통해 알티마의 실력과 성공 가능성을 알아봤다.

글, 편집 / 김정균 기자 (메가오토)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느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 후 다시 술자리에 참석해 신나게 술잔을 기울인 다음 거하게 취한 상태로 대리기사를 부른다. 다음날 아침, 시끄러운 핸드폰 알람소리에 가늘게 눈을 뜨는 순간 깨질 것 같은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전날 어떻게 집까지 돌아왔는지, 술값은 얼마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고, 오늘이 휴일이면 좋겠다는 얄팍한 상상을 아주 잠깐 해본 후에, 마치 납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낑낑대며 일으켜 세운 다음 좀비처럼 느리게 냉장고로 걸어가 생수를 들이키고 아픈 머리를 움켜쥐며 출근 준비를 한다.

시원한 해장국 생각에 침을 꿀꺽 삼켜보지만, 전날 밤 특유의 입놀림으로 밖에 있는 남편의 귀를 간지럽게 했던 와이프는 언젠가부터 국 끓이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 말 꺼내기도 싫어진다. 현관으로 다가서는 발걸음은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찬 듯 무겁고, 거의 슬로우 모션으로 문을 여닫고 나가 오만상을 찌푸린다. 오늘따라 날씨는 왜 이렇게 화창한지, 햇빛이 눈부시다.

지나가는 이웃의 인사에 애써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곤 주차장으로 향한다. 이젠 좀비보단 조금 빨라졌지만 여전히 투명 모래주머니가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투명 모래주머니는 뱃속에도 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조금씩 커지는 것 같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어젯밤 주인을 조수석에 태우고 낯선 사람에게 조종당하며 결국 삐딱하게 주차라인을 밟은 채로 하룻밤을 기다린 애마가 서있다.

이제야 표정은 조금 풀리고 풀렸던 눈은 제대로 떠지면서 애마의 품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버튼 시동장치를 누르고 가속페달을 살포시 밟아주니 주인과 달리 경쾌한 몸놀림으로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녀석. 이후 막히는 구간을 지나 조금 뚫린 도로에서 오른발에 힘을 주면 시야에 들어와 있는 차들이 순식간에 뒤로 지나간다. 하루 중 그나마 이 순간만큼은 진짜 미소를 짓는다. 피곤한 몸뚱이를 옮겨주는 용도로는 역시 편안한 중형 세단이 최고. 가족과 함께할 넉넉한 공간은 기본, 게다가 어느 정도 스피드를 즐기는 오너를 만족시켜 줄만한 출력을 갖추고 있다면 금상첨화. 알티마는 그런 녀석이다.


알티마가 출시되기 전부터 SM5와 닮았다는 말이 많았다. 그렇게나 닮았나? 사진으로 봐선 확실히 모르겠고, 실물을 봐야 알겠는데, 그러던 와중에 신차발표회 취재하며 알티마를 처음 접하고 난 후의 소감은, \'뭐가 닮았어\' 였다. 페이스리프트 전이라면 모를까, 뉴 임프레션 이후로 과하게 얼굴을 성형한 지금의 SM5와는 루프라인이 닮은 정도, 나머지 부분에선 비슷한 느낌을 받기 힘들다. 아예 다른 메이커가 만든 모델끼리도 서로 닮은꼴이 많은 최근의 추세를 보면 더더욱.

전체적인 모습은 단아하다고 해야 하나, 어코드가 서구적이라면 알티마는 동양적인 이미지다. (SM5와 7은 사이버틱?) 균형이 잘 잡힌 몸매에 과하지 않은 적당한 치장을 했으며, 개성 있는 부분이라면 스포티한 클리어 타입의 리어램프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시승차의 색상은 알티마에 제격인 듯 흔하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멋을 풍겨내고 있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깔끔한 곡선이지만, 부분적으론 강인한 디자인들이 가미되어 있다.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과 앞 펜더부터 리어램프까지 이어지는 직선적인 측면 캐릭터 라인, 듀얼 머플러 등이 부드러운 이미지에 스포티함을 추가시켜준다. 패밀리세단보단 스포츠세단에 가까운 알티마의 성능을 감안하면 더 과감한 터치가 들어가도 좋을 것 같은데, 다양한 소비자층을 타겟으로 하는 주력 모델인 만큼 넘지 말아야할 선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겠다.


실내에 들어서도 깔끔하고 간결한 구성이 느껴진다. 일단 공간은 겉모습 대비 더 넓게 느껴지고, 분위기는 닛산과 인피니티 모델들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이 맴돌고 있어 낯설지 않다. 알티마도 어코드와 비슷하게 화려한 장비들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족한 것도 없다. 그리고 시승차엔 없었지만 이후 거의 순정 느낌의 DMB 내비게이션을 장착해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아졌다. 조립품질과 마무리 등은 흠잡을게 없고, 오디오나 공조장치 등의 장비도 기본기가 탄탄하다.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이라면 알티마에 마련된 카세트 데크가 반갑게 느껴지시겠다.

차 좋아하는 분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 중에 이런 것들이 있다. 국산차 얘기가 나오면 - 옵션 장난한다, 장비만 많으면 뭐해 기본기가 탄탄해야지, 겉만 그럴 듯 하고 속은 가관, 원가 절감하느라 하청업체 죽이고 매년 파업하는데 제대로 만들겠나, 부품회사를 소유한 메이커의 차는 수명이 짧다, 성의 없는 AS때문에 화난다, 내수시장을 우습게보나, 다신 국산차 사나봐라 깡통 옵션이라도 튼튼한 수입차로 간다 등등.

그런데 반대로 비슷한 가격에 국산차와 겹칠만한 수입차 얘기가 나오면 - 기본기만 좋으면 뭐해 장비가 별론데, 고장 안 나는 차 없어 관리하기 나름이지, 성능 좋아봤자 후륜구동도 아니면서, AS불편하다며, 한국시장을 우습게보나, 이 돈이면 옵션 빵빵한 국산차 사고 만다 등등. 그리고 마지막에 꼭 이런 얘기가 있다. 살 것도 아니면서 말만 많아요.

기자가 볼 땐 마지막 얘기만 빼면 다 일리가 있다. 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차에 대해 말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고, 구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중 문제다. 어떤 분야건 다 마찬가지, 그 말 많은 사람들 덕분에 말 없는 사람들이 공짜로 유용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메이커 쪽에서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 세상이 이정도로 발달된 나라에 사는 이상,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현명한 자세가 아니겠나. 피자도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세상이고(실시간으로 조리중인지 배달중인지 나오는 것을 보고 혼자 감동했다), 자동차에 관련된 모든 것들도 앞으론 결국 다 온라인에서 처리될 것이다.


대중적인 중형차나 패밀리세단 등으로 불리는 모델들의 시승기에선 사실 성능 쪽으로 언급할 부분이 적지만 알티마의 경우는 다르다. 배기량과 출력이 높으면 단순히 빠른 것을 떠나 힘에 여유가 있어 편안한 주행이 가능한데, 대부분의 중형급 이상 세단들은 그것에 초점이 맞춰진 세팅을 추구하지만 알티마의 경우 그런 성격이면서도 스포티한 주행을 즐길 수 있다. 닛산의 모델들이 대부분 그렇고, 인피니티는 더한 것을 보면, 포르쉐를 약올리고 있는 괴물 GTR을 만들어낸 메이커라는 것이 다시금 인식되곤 한다.

배기량 3,498cc로 최고출력 271마력/6000rpm, 최대토크 35.7kgm/4400rpm를 발휘하는 VQ엔진에 6단 수동변속 모드를 지원하는 CVT가 매칭되고 공인연비는 9.7km/l로 우수한 수준. 경쟁모델인 어코드 3.5와 비교해 보면, 약간 적은 마력과 약간 높은 토크가 좀 더 낮은 회전수부터 발휘되면서 공인연비는 거의 똑같다. 현행 어코드가 출시되었을 때 가변 실린더 제어 기술인 VCM으로 연비를 개선했다는 점이 부각되며 칭찬을 받았는데, 알티마는 그런 것 없이도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3.5모델의 경우 엔진, 미션 등 파워트레인 부분은 무라노와 같은 매칭이나 장르가 다른 알티마에선 출력이 좀 더 높고 무게는 더 가볍다. 따라서 어지간한 스포츠세단들도 가속 성능에선 알티마를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닛산의 VQ엔진과 무단변속기(CVT)는 완성도 면에서 검증된 훌륭한 매칭을 보여주고 있으며 수동모드를 지원해 패들시프트의 부재를 아쉽게 한다. 그냥 없어서가 아니라 드라이빙의 재미가 있기 때문에 아쉽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인피니티 M35에서도 느꼈던 것이다.

M35를 언급한 이유는, 시승에 임하면서 자꾸만 그녀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덩치도 엇비슷한데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뻗어나가는 능력은 알티마가 반 템포 늦을 뿐 체감상으론 비슷헀고, 구동방식에 따른 차이를 제외하면 여러 모로 한집안 가족다운 느낌이다. 단지 승차감을 비롯해 알티마 쪽이 모든 면에서 한 단계씩 더 소프트하고 부드럽다.


알티마 시승은 대부도, 제부도 등이 있는 서해안 쪽으로 코스를 잡았다. 초반 예상을 벗어난 것은 동그란 인터체인지를 돌아나가는 알티마의 거동이었는데, 바다로 간다는 들뜬 마음에 오른발을 주체 못하고 코너 전 진입속도를 너무 높여버려 미소 짓던 얼굴이 순간 굳어졌지만,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올려선 안 될 노릇인지라 그대로 밀어붙였더니 타이어 끌리는 소리만 조금 들릴 뿐, 꽤나 진중하게 돌아나가는 것이었다.

하체 세팅과 스티어링 감각 등은 닛산-인피티니 계열 중에서 분명 소프트 지향이다. 엔진이 하체를 이기고 있는 것. 국산차와 비교하면 소나타 < 그랜저 < SM5 < 알티마 정도로 알티마가 가장 단단하긴 하지만 그 차이가 확연하지 않고 미세한 편이다. 17인치 휠에 215/50R17 타이어도 출력을 감안하면 내내 아쉬운 부분. 하지만 트레드가 넉넉한 상황에 마른 노면이라면 쏠쏠한 코너링 실력을 보여준다. 물론 후륜구동과 같은 재미는 없지만 물렁한 세단에 익숙해져 있다면 알티마도 충분히 재미있다.

직진 가속이나 차선 하나 변경하는 추월가속 정도는 복잡하게 따질 필요 없이 그냥 잘나간다. 소프트 지향이라 고속에선 마음 푹 놓고 있을 수 없지만 실용 영역에서의 가속은 아주 매끄럽고 힘차게 뻗어주기 때문에 마음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 CVT의 특성상 변속충격이 전혀 없고 알피엠이 고정된 채 속도계의 바늘은 200km/h까지 쉽게 올라간다. 서해안 시승을 마치고 다음날은 복잡한 도심을 달렸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남산 1호 터널에 접어들어 혼잡통행료를 지불하고 나서 앞선 차들을 계속 추월하면서도 160km/h까지 치고 올라가 터널을 빠져나오며 풀브레이킹 해야만 했다. 브레이킹 성능은 출력 대비 무난, 감각은 역시 소프트한 편이다.

결론적으로 알티마는 패밀리세단의 여유롭고 편안한 주행과 스포츠세단의 신나는 성능을 두루 겸비한 멀티 플레이어의 진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에필로그
그동안 혼자만 신났던 어코드를 잡으러 한국으로 날아온, 아니 배타고온 알티마는 출시 당시만 해도 과연 어코드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했다. 물론 미국시장에서 캠리나 어코드와 당당히 겨루고 있는 만큼 실력 자체는 검증되어 있지만, 한국인의 취향에 맞아 떨어질 것이냐는 것과 국내모델과 겹치지 않겠냐는 등의 불안요소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티마의 출시 후 어코드는 가격이 올라버렸다. 조금도 아니고 조금 많이. 사실 환율이 정말 난리라 일본 메이커들이 힘들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2008년 내내 매달 수입차 판매순위 1위를 수없이 차지했던 어코드는 2009년 들어 가격이 조정된 후론 10위권 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덕분에 비슷한 가격으로 어코드와 알티마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고, 알티마는 가격적인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한국인의 취향에 맞아 떨어지냐는 문제는 시승 결과 오케이. 다소 미국적인 현행 어코드보다는 동양적이면서 스포티한 맛이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국내모델과의 비교는 글쎄, 아직까진 한국시장에서 국산차와 수입차가 직접적으로 경쟁한다고 보긴 힘들다. 시승기 중간 쯤 언급한 차 좋아하는 분들의 이야기처럼 각자의 생각대로 판단할 문제다.

정말 문제는 짠하고 등장할 토요타의 캠리다. 벌써부터 궁금한 건, 미국시장에서 맹위를 떨치는 일본 3대 메이커의 대표 주력 모델 3종의 대결이 이제 작은 한국시장에서도 벌어질 시대가 왔고, 그 결과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것이다. 구경하는 입장에선 연예도 삼각관계가 재미있듯, 막장 드라마로 치닫지만 않는다면 실로 흥미진진한 대결이 될 것이다.
{del}
[메가오토] 닛산 알티마 프리미엄 갤러리
[메가오토] 닛산 알티마 프레스 갤러리
[메가오토] 닛산 알티마 신차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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