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워진 카이맨S에 이어 박스터S도 만나보았다. 전통의 클래식하고 날렵한 차체는 변화의 폭이 적지만 세련미를 더했으며, 보다 향상된 수평대향 박서엔진과 듀얼클러치 미션 PDK를 탑재함으로서 훌륭한 파워트레인을 바탕으로 한 높은 완성도가 돋보인다. 포르쉐의 라인업에선 엔트리급이지만, 경쟁자들을 압도할 만큼 여러 모로 수준이 높은 녀석, 달리는 자태가 아주 매혹적인 박스터S를 느껴보자.
글, 편집 /
김정균 기자
(메가오토)
파란색 악어 카이맨S 때문에 또다시 포르쉐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론, 바이러스를 떨쳐내려 발버둥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환청이 들리듯 귓가에 메아리치는 수평대향 박서엔진의 사운드와 하드하고 예리한 주행감성이 자꾸만 떠올라, 마치 담배가 없어 금단 현상에 시달리듯 수전증까지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반갑게 만난 박스터S는 완전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는데, 한 가지 문제는 실제 날씨도 가뭄이 계속 되다가 하필 그 날 단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왜 하필, 다른 모델도 아니고 박스터S의 시승 날에 비가 내리냔 말이다. 녀석을 만나 기쁨의 미소를 지었던 순간도 잠시,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활짝 열었던 붉은빛 소프트탑을 아쉽게 닫고 나선 이내 울상을 짓고 말았다. 포르쉐 분당 센터를 출발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졌기 때문. 그간의 스트레스도 풀 겸, 탑을 오픈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달릴 생각에 들떠 있었건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지만 비가와도, 아니 비가 와서 더 돋보이는 녀석의 성능과 외모는 어딜 가나 주변 차량과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나보다. 젖은 노면에서도 특유의 하드함을 잃지 않는 흐뭇한 성능과 함께, 포르쉐만의 외모에 포르쉐로선 드문 색상으로 실내외를 치장했으니 이건 마치 미끈한 몸매의 스포츠스타가 튀는 패션 감각으로 멋을 부린 것 같다. 그래, 비가 오면 어때. 가만 서있는 자태만 바라봐도 다시 흐뭇해지는 것을.
새로워진 박스터의 외관은 카이맨과 마찬가지로, 아니 포르쉐의 모든 모델이 그러하듯 변화의 폭이 크진 않지만, 부분적인 디테일에서 세련미를 더하고 완성도를 높였다. 더 커진 공기흡입구와 까레라GT를 닮은 헤드램프는 더 이상 911의 동그란 눈망울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예쁘장하게 변모했으며, 리어램프도 LED가 들어가며 이전에 비해 얄쌍한 라인을 보여준다.
전면부는 날카롭고 똘망똘망한 이미지를 풍겨내면서 낮고 길게 뻗은 오버행과 조화를 이룬다. 바이제논 헤드램프는 어두운 밤 코너에서 스티어링휠의 조향에 따라 눈을 좌우로 굴리며 시야를 확보해주기 때문에 박스터와 같은 모델에겐 아주 쏠쏠한 장비인 반면, 아쉬운 것은 공기 흡입구에 위치한 방향지시등 아래의 주간 전조등이 국내에선 법규 때문인지 적용되지 않아 미등의 역할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측면에서 바라보면 도무지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처럼 낮고 미끈하게 빠져있다. 체구는 작지만 전체적으로 오묘하게 이어지는 라인이 박스터의 개성을 부각시켜 주면서, 시승차에 적용된 19인치 휠과 맞물려 스포티하고 타이트한 맛도 느껴진다. 옆에서 본 소프트탑의 라인은 차체 가운데가 봉긋 솟아오른 모양이라 귀엽기도 하고 클래식한 분위기도 난다.
후면부는 뭔가 섹시하다. 다른 차량에 탑승해 앞서가는 박스터를 따라가며 바라보면 적당한 볼륨감으로 늘씬하게 뻗은 뒤태에 호감이 생기게 되고, 이 섹시한 엉덩이를 우아하게 흔들며 요리조리 차선 변경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다. 머플러는 카이맨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위치하면서 박스터가 네모 모양의 싱글, 박스터S는 동그라미 두개의 듀얼로 적용된다. 숨어있다가 고속에서 올라오거나 버튼으로 작동이 가능한 리어스포일러는 카이맨과 달리 가운데가 뚫려있지 않고 막혀있는데, 아마도 카이맨과 박스터의 루프라인 형상 차이에 따른 공기 흐름을 감안해 각각에 맞는 효율적인 다운포스를 유도하려 차이를 둔 것 같다.
실내의 모습은 카이맨과 거의 동일하다. 다른 부분이라면 룸미러 뒤쪽에 소프트탑을 열고 닫기 위한 수동 손잡이가 보인다는 것. press 라고 적혀있는 부분을 누르면 손잡이가 내려오고, 손잡이를 뒤로 젖힌 다음 파킹브레이크 옆의 작동 버튼을 눌러 자동으로 오픈시킨다. 탑을 닫을 땐 반대로 마지막에 손잡이를 원위치로 밀어 넣으면 된다.
어째서 전자동이 아니라 시작과 끝이 수동 방식일까에 대한 의문은 실제 이 손잡이를 조작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꽤나 뻑뻑하기 때문에 제대로 힘을 줘야 하는데, 마치 손잡이가 부서지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지만 탑을 열고 닫는 시작과 끝에서 A필러와 소프트탑이 맞닿는 부분의 완전한 밀착성을 손으로 체감할 수 있다.
국내 모 메이커의 계륵 같은 존재인 모 로드스터는 소프트탑이 완전 수동 방식이라 핀잔을 들었지만, 박스터 정도의 간단한 조작은 전자동 대비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동 시간 자체가 하드탑 대비 빠르고 잡소리도 없으며 무게배분에 유리하다는 것 등이 소프트탑의 장점. 비가 내려 대부분의 주행은 탑을 닫은 상태에서 이루어졌는데, 쿠페인 카이맨 정도는 아니라도 밀폐성이 꽤나 우수하며, 실내에서 닫힌 지붕의 이곳저곳을 눌러보면 단단하게 맞물려있어 튼튼함이 느껴진다.
포르쉐의 전통인 좌측에 위치한 키홀은 여전하고, 낮은 시트 포지션, 3링 형태의 계기판, 앞뒤로 누르는 변속버튼이 달린 스티어링휠, 동그란 송풍구 등은 카이맨과 동일하다. 조립품질은 여전히 단단하고 흠잡을 곳 없으며, 엔진이 가운데 위치한 미드쉽이기 때문에 본닛과 트렁크를 열면 쏠쏠한 수납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가 계속 내려 젖은 노면이지만 포르쉐 엠블럼을 달고 있는 녀석으로 마냥 얌전히 달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싶어 가속페달을 서서히 깊게 밟아 나갔다. 그러자 여지없이 그르렁대는 수평대향 엔진의 울음소리와 배기음이 등 뒤에서 전해지며 빗소리와 더불어 기분이 묘하게 좋아지는데, 이 포르쉐 사운드야말로 금단현상을 단번에 치료해 주는 묘약이다. 전체적인 음색은 카이맨S 대비 아주 약간 더 높게 들려온다.
새로운 박스터의 심장은 처음부터 다시 설계된 수평대향 6기통 박서엔진으로서, 2.9리터의 박스터와 3.4리터의 박스터S 모두 이전에 비해 마력과 토크가 향상되었으며, 박스터S는 카이맨S나 신형 911들과 마찬가지로 직분사 방식인 DFI가 적용되어 최고출력 310마력/6400rpm, 최대토크 36.7kg.m/4400~5500rpm의 출력을 발휘하면서 연료 효율도 더 좋아졌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역시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인 PDK. 새로운 포르쉐 모델들에게 날개를 달았다고 평가될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뽑아내 주는데, 수동 기반으로 자동변속기처럼 사용할 수 있는 듀얼클러치는 기계적으로 일반적인 자동변속기보다 동력 손실이 훨씬 적고 변속 타이밍은 엄청나게 빨라졌기 때문에 뛰어난 성능과 연료 효율성 등등 모든 부분에서 수동변속기를 능가해 버렸다.
옵션으로 제공되는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를 선택하면 런치 컨트롤 기능이 추가된다. D모드에서 스포츠플러스 버튼을 누르고 왼발로 브레이크페달을 밟은 다음,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계기판의 런치컨트롤 활성 표시를 확인한 후에 왼발의 브레이크페달을 떼면 정지 상태에서 가장 빠른 스타트로 총알같이 튀어나갈 수 있는데, 제원상으론 0-100km/h 5.2초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실측 결과는 이보다 더 빠른 4.8~5초 사이를 기록하기도 한다. 포르쉐의 다른 모델에서도 그러한 경우가 많은데, 기대한 것 이상의 실력으로 운전자를 만족시켜 주기 위한 포르쉐의 세심한 전략이라고 보면 된다.
카이맨과 마찬가지로 박스터 또한 실제 가속과 움직임은 시종일관 빠르고 날카롭지만 운전자가 느끼는 감각은 정통 스포츠카다운 하드함이 주가 된다. 스티어링 감각은 무거우면서 예리하고, 과하지 않은 정도까지의 알맞은 세팅이 돋보인다. 시승차의 경우 19인치 휠-타이어로 인해 이전에 시승했던 18인치의 카이맨S보다 오히려 더 묵직하고 단단한 하체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과격하지 않은 일상의 주행까지 두루 고려한다면 18인치 정도로 타협하는 것이 좋겠다.
아무튼 이 묵직한 감각을 바탕으로 빠르게 뻗어나가면 총알 같은 스타트부터 200km/h를 돌파하는 시점까진 전혀 답답함 없이 가속이 진행되면서 안정감도 충분하기 때문에, 젖은 노면에서의 불안감은 이내 사라지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게 된다. 하지만 마른 노면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지라 274km/h의 최고속도와는 거리를 많이 둔 정도에서 자제하기로 하고, 스티어링휠에 달린 변속 버튼을 이용해 PDK의 감각을 즐겨보기로 했다.
훌륭한 엔진과 하드한 하체 등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느껴지는 PDK의 감각은 한마디로 빠르고 재미있다. 1, 2단의 저단에서 변속하며 가속페달을 밟아대면 차체가 앞뒤로 들썩이면서 변속 충격이 일어나는데, 기분 나쁜 울컥거림이 아닌지라 가속페달을 툭툭 치면서 자꾸만 다시 반복하며 즐기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들썩거리다가 눈앞의 도로가 저 멀리까지 열려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순간적으로 풀 스로틀 하면, 몸이 시트에 파묻히며 시원스레 쭉~ 뻗어나가는 그 맛이 가히 일품이다. 마치 무더운 여름 더위에 찌들어 있다가 차가운 맥주를 벌컥 벌컥 단숨에 들이키고 캬~ 하는 감탄사를 내뱉을 때의 희열과도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아.. 쓰고 보니 갑자기 시원한 맥주 한잔이 마구 땡긴다. 박스터처럼 독일산으로.
에필로그
어쩌다 마지막은 시원한 맥주로 마무리가 되었는데, 포르쉐의 엔트리급인 박스터라 해도 뒤에 S가 붙은 이상 일상적인 구간에선 슈퍼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높은 만족감을 선사해 주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체험했던 새로운 카이맨S의 시승기엔 감히 완벽하단 표현을 사용했을 만큼 여러 모로 완성도가 높았는데, 깊게 파고들 것 없이 간단하게 정의하면 카이맨은 뚜껑 닫힌 박스터고 박스터는 뚜껑 열린 카이맨이라 해도 무방하다. 다만 수치적인 출력의 갭은 체감상으로 별 차이 없지만, 카이맨 대비 떨어지는 강성은 다소 느껴지는 편이다. 그러나 부족하다기 보단 카이맨 대비 그렇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고, 뛰어난 밸런스 덕분에 911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녀석들의 실력이 마냥 기특하기만 하다.
새로워진 카이맨S와 박스터S의 시승을 모두 마치고나선, 만약 두 녀석 중 하나를 고른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골똘히 고민해 보았다. 참 난감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정답은 간단할 수 있다. 시원한 오픈 에어링을 즐기고 싶다면 박스터, 약간 더 하드코어한 드라이빙을 즐기고 싶다면 카이맨이다. 굳이 성별을 구분해 보자면 남자는 카이맨, 여자는 박스터, 이렇게도 꽤나 잘 어울릴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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