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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드라이빙의 본질 그 자체, 로터스 엘리스


작고 가벼운 차체, 타이트한 6단 수동변속기, 미드쉽 경량 로드스터.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이들에겐 최고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자동차 시장에서는 더 이상 수동변속기 모델은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미드쉽 엔진의 로드스터는 더더욱 흔치 않은 차량이다. 따라서 이번에 만난 로터스 엘리스는 비교적 다양한 차종을 접할 수 있는 기자에게도 흥분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편집 / 김정균 팀장 (메가오토 컨텐츠팀)


로터스의 차들은 전통적으로 작고 가벼운 차체 덕분에 2리터 안팎의 엔진으로도 수준 높은 동력성능을 자랑한다. 엘리스 역시 1.6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최고출력 140마력, 최대토크 16.7kg.m의 성능은 평범함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무게가 876kg에 불과한 차체와 만나면 얘기는 달라진다. 가벼운 차체에 들어앉은 엔진과 수동 6단 변속기가 어울려 엘리스를 단 6.5초 만에 100km/h까지 가속시키기 때문. 일반적인 1.6리터 차량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순발력이다.


운전석에 오르려고 도어를 열었는데 예상을 했는데도 조금은 당황스럽다. 눈으로 보고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제로 탑승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비좁은 공간이 과연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기 때문. 엘리스를 시승하려면 일단 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멋진 스포츠카에서 폼 나게 타고내리는 상상은 저 멀리 던져버리자. 엘리스는 그런 과시용 차량들과 다르게 시작부터 전투적으로 몰아간다.


실내에 들어서면 최소한의 장비만 준비된 점이 눈에 띈다. 모든 장치를 수동으로 조작해야 한다. 과연 사용할 일이 있을까 싶은 오디오 시스템과 다이얼식 수동 에어컨이 실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장비. 물론 자신의 속살을 감추는 플라스틱 커버도 존재하지 않는다. 차체 바닥은 프레임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사이드 브레이크 또한 그 속내를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다.


출발하기 위해 운전 자세를 다잡는다. 기계식 스티어링 휠은 텔레스코픽은 물론이고 틸트조차 되지 않는다. 또한 앞뒤로만 조정되는 버킷시트는 ‘드라이빙에 알맞은 최적의 자세를 만들어 놨으니 너의 몸을 맞춰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엘리스에겐 전동 조절 사이드미러도 사치품이다. 실내에서 사이드 미러를 조절하는 자그마한 레버도 없어 윈도우를 내려 미러 자체를 돌려 움직여야 한다. 과거 91년식 대우 티코에서나 봤을법한 방식이다. 이쯤 되니 파워 윈도우 스위치가 감사하기도. 이렇게 쓸데없는 불평을 늘어놓고 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지고 심장은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시동키를 온 위치에 돌리고 왼쪽에 자리 잡은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등 뒤에 위치한 엔진이 우렁찬 배기음과 함께 힘차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기어를 1단에 넣고 클러치를 연결하는데 의외로 클러치 유격이 존재하고 반응 또한 민감하지 않다. 짧고 타이트한 감각을 예상했던지라 조금은 의외였는데 로터스측에 문의해본 결과 상급 모델인 엘리스 SC는 시승차인 기본형과 달리 클러치 시스템 차제가 다르기 때문에 감각 또한 민감하다고 한다.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서 마음껏 엔진 회전수를 높여본다. 초반 둔감했던 반응과 달리 3,000rpm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짜릿하게 회전하는 엔진은 황홀함 그 자체다.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던 배기음 또한 배기량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우렁차게 포효하고, 어느새 계기판에는 변속을 알리는 경고등이 점멸한다. 이 과정이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는지라 부지런히 변속을 해야지만 쭉쭉 뻗는 통쾌한 가속력을 느낄 수 있다.

변속 레버와 스티어링 휠 사이의 간격은 약 한 뼘 정도. 때문에 가속을 하면서 기어를 변속하고 다시 스티어링 휠을 잡는 동작이 재빠르게 이루어진다. 대배기량 차들의 여유 있는 가속력과 달리 엔진을 쥐어 짜내면서 달리는 감각은 말초신경이 자극될 정도로 짜릿하다. 워낙 짧게 설정된 기어비 덕분에 6단 2,000rpm을 유지할 때도 속도는 90km/h가 채 되지 않는다.


엘리스의 장점은 직선도로가 아닌 와인딩을 달려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물론 가장 최적화된 장소는 서킷이겠지만. 미드쉽 구조로 완벽에 가까운 무개배분, 반응 좋은 엔진, 스포티한 수동변속기 그리고 프레임 바디가 만들어내는 운동성능은 최고수준이다. 물론 빌스테인 쇽업쇼버와 아이박 스프링이 조합된 서스펜션도 흠 잡을 것 없이 완벽하다.

3단으로 풀 가속을 하다가 바로 앞 헤어핀 코너에서 풀 브레이킹을 하는 동시에 2단으로 쉬프트 다운을 진행한다. 스티어링 휠을 진행방향으로 꺾어 주는 동시에 다시 엑셀레이터 페달을 전개하면 묵직한 횡가속력이 몸을 압박하지만 차체는 지평선이 기우는 것을 보기 힘들 정도로 안정적이다. 또한 스티어링 휠 조작에 따른 앞머리의 움직임이 굉장히 직설적이기 때문에 스티어링 휠을 조금씩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면서 엑셀워크를 조절하면 멋진 퍼포먼스도 연출할 수 있다.


완전히 수동으로 탈착해야 하는 소프트 톱을 열고 주행을 하면 말 그대로 레이싱카의 감각이 한층 더 확실하게 다가온다. 또한 기분 좋을 정도의 바람만 실내로 침입한다. 속도를 점점 올려도 바람이 들이닥치는 수준은 극히 제한적이다.


초반부터 민감하게 반응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엘리스의 브레이킹 능력은 만족스러운 수준. 지속적인 브레이킹을 시도해도 처음과 끝의 반응이 일관적이며, 브레이크 패드의 과열이 예상되는 수준에서도 제동력은 큰 차이가 없다. 타공 디스크와 작은 사이즈의 브레이크 캘리퍼는 엘리스의 차체를 확실하게 제압한다.


어느덧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몸을 이끌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엘리스를 살펴본다. 물 흐르듯 유연한 바디라인과 잔 근육들은 작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표출하기에 충분하고, 빵빵하게 부풀려진 후면은 귀엽기까지 하다. 확실히 단순한 세단이나 SUV들이 대부분인 도로 위에서 엘리스는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킨다.


시승 말미엔 그야말로 몸이 녹초가 됐지만 기분만큼은 너무나 개운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슈퍼카를 능가하는 원초적인 감성으로 가득 찬 녀석. 로터스 엘리스는 자동차에 있어서 탄탄한 기본기와 드라이빙의 즐거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고마운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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