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 자동차 산업의 가장 큰 화두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이지만, 아직은 내연기관 시대인 만큼 현 시점의 대세는 ‘다운사이징’이다. ‘소형화’라는 말 그대로 작은 엔진에 터보차저 등의 과급기를 적용해 출력과 연료 효율은 향상시키고 유해 배출가스는 줄이는 것.

하지만 이번 시승기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자동차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반대로 역행하는 존재다. BMW의 기함 7시리즈 라인업에서 최상위에 위치하는 모델, 6.6리터 12기통 엔진을 품은 커다란 슈퍼 세단, M760Li xDrive가 그 주인공이다.

겉모습은 다른 7시리즈 모델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부분적으로 고성능을 암시하는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다. 공격적인 형상의 전면 범퍼와 공기흡입구, 치밀한 20인치 휠과 파란색 브레이크 캘리퍼, 범퍼 일체형 듀얼 머플러 팁, 통일감 있게 적용된 곳곳의 무광 크롬 소재 등이 눈에 띈다.

고급스럽고 스포티하며 화려함도 갖추고 있는 M760Li 모델의 외관에서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부분은 C필러에 새겨진 작은 레터링이다. V형 12기통 엔진을 의미하는 ‘V12’ 엠블럼. 8기통 엔진도 희귀해진 시대에 무려 12기통 엔진을 장착했다는 이 작은 표식 하나만으로도 이 차의 존재감은 한껏 드높아진다.

보닛을 열면 엔진룸을 가득 채운 6.6리터 V12 엔진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한다. 대배기량임에도 불구하고 터보차저까지 덧붙여 최고출력 609마력, 최대토크 81.6kg.m라는 높은 수치를 달성했다.

2톤이 넘는 차체는 단 3.7초 만에 시속 100km까지 도달한다. 물론 8단 자동변속기의 순발력과 상시사륜구동 시스템 xDrive의 안정적인 접지력이 더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숫자다. 최고속도는 기본적으로 250km/h에서 제한되지만 이를 해제시킬 경우 300km/h를 돌파할 수도 있다.

엄청난 힘과 가속 성능에 비해 몸으로 체감되는 속도는 실제보다 덜하다. 안정적인 차체 거동과 뛰어난 방음대책, 의외로 얌전한 엔진음과 배기음 등이 영향을 미친 결과다. 호쾌한 배기음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고급 대형 세단다운 기품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수긍이 가는 세팅이다.

BMW의 상시사륜구동 시스템 xDrive는 이따금 후륜구동 특유의 날카로운 조향감각을 희석시켜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M760Li xDrive 모델은 속도에 따라 뒷바퀴의 각도까지 조절하는 네 바퀴 조향기술을 탑재해 후륜구동 못지않은 날카로운 코너링을 가능케 한다.

거친 노면이나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 전해지는 불쾌함을 탑승자에게 전혀 전달하지 않는 서스펜션은 상당히 영리하다. 폭발적으로 내달리는 차체를 때론 부드럽게, 때론 탄탄하게 잘 받쳐준다. 그렇게 달리다보면 커다란 차체가 의식되지 않으면서 서킷을 달리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워낙 강력한 가속 성능 탓에 상대적으로 아쉬운 제동력이 현실감각을 되찾아준다.

슈퍼카 부럽지 않은 주행성능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반전매력은 슈퍼카도 부러워할 실내 인테리어에 있다. 폭넓게 사용된 브라운톤 가죽은 시각적으로도 훌륭하지만 질감과 촉감은 물론 후각까지 만족시키는 최상급. 그 외에도 BMW의 기함다운 고급스러운 소재들과 완벽한 조립품질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즐거움이 가득한 운전석 대신 2열 상석에 앉으면 다시는 운전대를 잡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여유롭고 편안하다. 승차감이 마냥 부드럽고 푹신하진 않지만, 오히려 적당히 단단한 착석감이 장시간 탑승에도 피로감을 줄여준다. 아울러 야간에는 다양한 조명이 은은하게 흘러나와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M760Li xDrive 모델을 처음 마주했을 땐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집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확고한 방향성과 독보적인 존재감, 예상보다 뛰어난 실력을 경험한 이후에는 오히려 스스로의 선입견이 아집으로 느껴졌다.

‘M7’으로 불려도 전혀 이상할 것 없지만 ‘7’이라는 숫자는 ‘M’과 어울리지 않기에 ‘M760’이라 이름 붙여진 이 차는 얼마 못가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춘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비운의 주인공일지 모른다. 단, 그날이 온다 해도 훗날 BMW 역사에서 이 차가 갖는 독보적인 가치와 존재감은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