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제조사와 정유사가 디젤엔진의 시동꺼짐 및 떨림현상의 원인을 놓고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실제 커먼레일 디젤엔진뿐 아니라 일반 디젤엔진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게다가 한 곳의 주유소에서 주유한 여러 대의 차에 같은 문제점이 동시에 나타나 그 책임 여부를 두고 소비자와 자동차제조사, 정유사 간 공방이 팽팽해지고 있다.
경기도 오산에 사는 임형택(26.자영업) 씨는 지난 9월10일 추석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다 오산시 누읍동에 위치한 현대오일뱅크 상표의 O주유소에서 자신의 카니발2 커먼레일 디젤엔진차에 기름을 가득 넣었다. 충남 당진이 고향인 임 씨는 그러나 즐거운 귀향길이 악몽으로 변했다.
주유 후 길을 떠난 임 씨는 고향에 도착한 다음날 성묘를 가다 낭패를 당했다. 갑자기 엔진이 멈추며 차가 길 위에 서버린 것. 몇 번의 재시동을 시도했으나 시동은 걸리지 않았고, 결국 보험회사의 견인차를 불러 기아자동차 당진 정비센터에 차를 입고시켰다.
연휴기간이라 어쩔 수 없이 며칠을 기다린 후 임 씨의 차를 검사한 기아자동차측은 "기름에 물이 섞여 있다"며 임 씨에게 불량연료 사용으로 엔진에 이상이 생겼다고 판정, 통보했다.
임 씨는 이 사실에 분개, 렌트까지 해가며 오산의 O주유소를 찾았다. 임 씨는 불량기름 판매와 관련,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주유소측은 "하루에 수백 대의 경유차에 기름을 넣는데 어떻게 임 씨 차만 문제가 생길 수 있느냐"고 되물으며 자신들의 기름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임 씨는 분명 물이 섞인 기름으로 자신의 차가 고장났다는 자동차제작사의 말을 토대로 보상을 요구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경찰서를 찾았다. 그러나 경찰측은 주유소 불량연료 판매는 시청으로 신고해야 한다며 임 씨의 신고를 받지 않았고, 결국 임 씨는 오산시청 지역경제과에 신고접수를 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났다. 임 씨가 신고를 위해 시청을 찾았을 때 담당자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행방을 묻는 질문에 다른 공무원이 O주유소에 불량 경유판매 신고가 들어와 그리로 갔다고 전했다. 곧바로 O주유소로 다시 간 임 씨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날 기름을 넣고, 같은 날 차가 멈춘 또 다른 카니발2 커먼레일 디젤엔진차의 소유주를 만났다.
또 16일 시청 게시판에 올려 놓은 글을 보고 현대 테라칸 커먼레일 디젤엔진 소유주가 같은 날 기름을 넣고 다음날 문제가 생겨 임 씨에게 연락해 왔다. 커먼레일 디젤엔진이 아닌 쌍용 무쏘의 소유자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주유한 후 이튿날 엔진 울컥거림 현상이 심해 주유소를 의심하던 중 게시판의 글을 보고 임 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 처럼 O주유소에서 9월10일 경유를 넣고, 다음날 엔진에 이상이 발생한 차만 모두 카니발2(커먼레일) 2대, 현대 테라칸(커먼레일) 1대, 트라제XG(커먼레일) 1대, 무쏘(인터쿨러) 1대, 카니발2 (일반엔진) 1대 등 모두 6대였다. 이 중 엔진은 가동하나 경유에 이물질(물과 이물질) 등으로 수리가 필요한 차가 3대, 아예 엔진이 멈춘 차가 3대였다.
임 씨를 비롯한 6명은 즉각 주유소측에 보상을 요구하며, 이 곳에 기름을 공급한 현대오일뱅크측에도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정유사의 입장은 단호했다. 정유사측은 문제가 된 무쏘에서 기름을 추출, 자체 분석한 결과 모든 성분이 규격 이내인 데다 현대오일뱅크가 제조한 기름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7~9월중 해당 주유소에 경유를 공급한 바 없어 주유소측이 다른 불량 경유를 사입, 판매한 만큼 주유소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씨 등은 그러나 "그렇다면 왜 현대오일뱅크 상표를 걸어 놓게 했고, 현대오일뱅크 상표를 보고 기름을 구입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느냐"며 강력히 반발했다. 결국 정유사가 자신들의 상표를 내걸고 판매하도록 허가해준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현대오일뱅크 소비영업과 박종윤 과장은 "문제가 된 연료를 분석한 결과 이상이 없고, 다만 수분이 다소 과다한 것으로 결론났다"며 "모든 성분이 기준치 이내에 있는 만큼 공급 기름을 불량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커먼레일 디젤엔진의 수분발생현상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는데 엔진 자체의 결함으로 볼 수도 있지 않느냐"며 "그 것도 아니라면 주유소의 관리불량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전국 수백 곳에 달하는 주유소를 정유사가 모두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정유사와 주유소, 자동차제작사 등 모두 책임지는 곳이 없어 현재 피해자들은 평균 190만원에 이르는 엔진 수리비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게다가 대부분의 피해차들이 1년이 채 되지 않은 새 차임을 감안할 때 피해자들의 억울함은 더욱 크다.
피해자들은 "불량연료가 아니면 엔진 결함인데 이 또한 자동차제작사가 인정하지 않고, 정유사는 주유소측에 책임을 전가하고, 주유소는 소비자 부주의 탓으로 돌리는 게 관행이 되고 있는 만큼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동차10년타기운동본부 강동윤 실장은 "커먼레일 디젤엔진 내 수분발생으로 인한 결함 여부를 조사중이지만 정유사와 자동차제작사 간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 계속되고, 연료의 성분을 분석하는 석유품질검사소측의 분석결과도 의심이 간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정부가 발벗고 나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 않을 경우 가해자없는 피해자만 속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가정보를 입력해주세요!
서비스(이벤트, 소유차량 인증 등) 이용을 위해, 카이즈유 ID가입이 필요합니다.
카이즈유 ID가 있으신가요?
카이즈유 ID를 로그인 해 주세요.
SNS계정과 연결되어, 간편하게 로그인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