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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이채를 띠는 도전자들2


<산쿄자동차주식회사 대표이사 니시오카 도모가즈>
니시오카상은 1948년생으로 현재 55세다. 22세 때 판금업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33년이 된다. \'밋코자동차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서 판금도장을 포함한 자동차 정비 전반을 주사업으로 마쓰다, 스즈키의 신차판매, 카-컴비니구락부, 셀프세차장, 인터넷을 활용한 중고차입찰회 등의 자동차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다 계열회사로 중고부품 사이클사업을 하는 \'주식회사 제이야 루-비\'도 포함된다.

1986년에는 소비자를 위한 중고차 판매에도 손을 대기도 했는데 큰 성과는 보지 못하고 3년만에 문을 닫고, 그 이후 중고차는 업자 판매만 하고 있다. 그 연장선 상에서 입찰회라는 이름의 네트옥션이 태어나게 됐다.

오사카 JR다이쇼오역은 프로야구팀 긴데쓰 버팔로즈의 본거지로 오사카 돔에서 가장 가까운 역으로 알려져 있다. 니시오카상의 사업소 대부분이 이 근처다. 물론 임대한 땅은 거의 없고 모두 자사 소유다. 니시오카 상의 경영이념은 거래상대자에 대한 마음씀씀이와 배려 등에 있어 일반 경영자와는 다른 시점으로 손님을 대한다.

“장사라는 건 자기가 돈을 벌기에 앞서 손님을 얼마만큼 돈을 벌게 해주고, 만족시켜주고, 감동시킬 것인 지에 대한 마음이 항상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팔 때와 살 때에 있어 어떻게 하면 즐겁고 만족할까를 항상 생각한다. 물론 장사이기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할 건 아니지만 최대한 상대 손님에게 양보하고 서비스한다는 생각과 마음을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장사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발상으로 회사의 업적이 점점 올라간다면 더욱더 신나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필자를 감동시킨 게 니시오카상의 경영자세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방면으로 생각하고, 끙끙 앓으면서 궁리도 해보고, 아무리 급해도 방황하거나 소신을 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을 할 때 모든 생각이 절정에 이르렀다 해도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는 않는 법입니다. 결단은 번뜩이는 칼날같이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특히 고민하거나 걱정한 건 없었습니다. 물론 때때로 생각한 내용들을 사원에게 얘기하거나 집에 돌아가서 집사람의 의견 등을 듣기도 하지요. 그런 과정을 거쳐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등을 결정하고, 일을 진행해 나가는 건 있지만 특별히 골똘히 고민하거나 걱정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경영자들을 만났지만, 니시오카상같은 타입의 사장은 처음이다.

*22세에 사실상 독립이라는 고교시절의 꿈을 이루다.
자연 속에 펄쳐진 산에 둘러싸여 과수원을 경영하던 양친슬하에 9명의 형제자매 중 막내로 태어난 니시오카상. 주변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한몸에 받는 유소년기를 보냈는데, 고교시절에는 이미 장래 자신의 일을 생각하고 개척해 언젠가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건 하루 속히 일에 전념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자동차의 시대다.
\"오사카에서 상경해 정비와 판매업무에 관심을 가지고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취직한 곳은 다이하쓰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상상했던 그런 회사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곳에서 2년간 열심히 일에 전념했습니다”

생산라인의 단순한 공정에서 탈피한 게 20세 때의 일이다. 메이커에 출입하는 하청업자들과 친분을 갖게 되고, 그 때 어느 판금공장에 놀러 갔던 게 계기가 됐다.

“이런 일이라면 대단히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다이하쓰를 그만두고 그 공장으로 바로 들어가게 됐는데, 1년 후 어뚱하게도 제가 직접 판금공장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그 때는 \'물론 이거다\'라고 의식하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1년 정도 실전경험이 쌓여지면서, 기술을 요하는 판금공장 등을 시작하는데 포인트를 뒀다. 어떤 기간의 시간과 척도를 두지않고 일에 대한 의욕과 밀도높은 업무에 치중을 두는 것일 것이다. 니시오카상이 독립하는 데에는 선배인 협력자가 옆에 있었고, 자금은 그 선배가 내서 공동경영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일해도 돈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경리쪽등 그 선배가 모든 것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에 시작과 자본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경영에 있어서는 제로였다. 거기에 니시오카상은 경영내용을 전혀 알수가 없었다.

“1년정도 지나서 일을 그만두고 싶어졌고, 그 뜻을 전했더니 당신이 일을 그만두면 이일이 계속 진행될 수 없으니 내가 손을 떼겠으니 당신이 일을 대신하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결국 제가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 150만엔의 차입금이 있었는데. 그것도 같이 끌어 안고 갔습니다. 그 돈은 1년도 되지 않아 모두 변제할 수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제스스로 모든 것을 해보고 직접 돈도 벌게 되었습니다.”
판금공장이라고는 해도 공장에 3대가 들어가면 꽉차는 정도의 규모입니다. 니시오카상에게는 진정한 독립을 상징하게 때문에 [밋코우 자동차 공업소]의 이름은 그 상태로 계속사용했다. 1970년, 장소는 나니와쿠 우에쿠사쪼로 당시 나이는 22세. 작지만 어렸을적 꿈을 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휴일없이 일했습니다. 밤늦게 일해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습니다. 그런일이 반복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작업복에서 넥타이 복장으로 바꿔 영업활동에 적극적 참여..

다이세구 찌지마의 본사가 있는 곳은 니시오카상에게 있어서 기념할만한 곳으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구입한 구입지이다. 1974년의 일로 그 전년에는 같은 고향처녀인 여성과 결혼도 했다.
현재 전무로 일하고 있는 사업파트너가 지금의 부인이다,. 75년에는 법인 등기를 마쳤고 회사명도 공업소에서 밋코자동차 주식회사로 바꿨다.





판금만이 아니라 자동차정비도 하게되었으며, 78년에는 기즈가와시에 판금정비공장을 개설. 2년후 4층으로 리모델링 하는등 많은 자금을 투입함과 동시에 니시오카상자신도 작업복을 벗고ㅡ, 영업용넥타이 복장으로 변신했다.
“판금복장정비만으로도 이익은 충분이 나왔지요. 그런데 어느날 공장에 자주 출입하는 거래처 사람으로부터 이런 애기를 들었습니다. 돈은 벌기는 할지 모르지만, 현장일만으로는 뻔한 사업일뿐이다, 회사경영으로 영업력을 키워야 2천만엔, 3천만엔 벌수가 있다라고, 시건방진놈 아니야라고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 차량의 전도장에 관한 공정이 완료되어 있어서 도장비에 대한 금액을 표시한 찌라시를 만들었고, 하루일과를 다 끝낸후엔 집사람과 함께 어린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자동차 판매점등을 돌면서 찌라시를 전달했습니다.”
니시오카상이 지금도 잊을수 없는 그 강렬한 기억은 모자동차를 방문했을때의 일로 기억한다. 현관에 들어섰을때 말 할 수 없는 위압감을 받아, 들어가기를 주저하면서 “나와는 격이 달라”라고 생각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두번 정도는 경험했을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이때 어물어물하거나 꽁무니를 빼는 경우는 없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영업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처음 약 1년간은 젊은 친구들에게 맡겨두기만 하기가 그래서 몇 번 정도는 작업복을 입었다고 한다. 자신이 하지않으면 왠지 불안한마음이 앞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필자도 충분히 생각 할수 있기때문이다.
“차즘 공장도 진정되어 자신의 손이 가지않고도 사원스스로 할 수 있도록 되었습니다.”
독립으로 최초 10년이 니시오카상에게 있어서 기초확립의 시대였다. 또 뭐라고 해도 그때는 20대의 한창인 나이때였다. 그시기가 지나 니시오카상이 다방면에 사업을 확장한 것이 1980년대이후로, 30세를 넘길 때 부터였다.

중고차 판매를 3년하고 폐사,, 마쯔다, 스즈끼등의 신차판매에 착수.

중고차와 관련되어 이야기할 때 니시오카상은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았다.
소매점을 세우기전에, 가끔 대차되어 나온 차를 업자에게 판적이 있는데, 주 매입자인 브러커들에게 자주 속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중고차라는 업종은 남을 속여야 하는 업종인가라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방면으로 또 많은 궁리를 하게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브러커)은 중고차가 있어야 일이되고 먹고 살수 있다. 그렇다면 그쪽에서 사주는 것이 아니라 이쪽에서 팔아주는 것이 아닌가 싫으면 팔지말아도 무방하지 않은가라고... 일반적인 장사와는 상반되는 것이지만 그렇게 밖에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고차의 세계라는 것이 이런것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저에게 사업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1986년, 니시오카상은 오사카 니시구의 사카가와에 처음으로 작은 중고차 판매점을 열었다. 이미 구입한 땅 60평의 토지에 전시차는 10대정도를 준비했다. 오래된년식, 낡은품질차가 전부였다. “당시 전시장의 개설할때 여기서 돈을 벌자는 뜻은 없었습니다. 돈을 번다는 것보다는 밋코자동차 토탈서비스로서 손님을 늘린다는 것이 주요 목적이였습니다. 사실, 판매에서는 이익이 없었고, 매입중심의 영업이 약간의 이익을 냈을 뿐입니다. 결국3년에 중고차 판매를 중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장소는 새롭게 계약을 맺게 된 마쯔다의 쇼-룸용으로 개조, 개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토 섬 사카가와점명으로 신차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92년에는 이 쇼룸을 확대하고, 신차판매의 강화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중고차 판매에 대기업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섬계열의 간판을 올리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실패했던 경험의 실태를 잘알고 있던 니시오카상은 이번일이 괜찮을까 많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댓수도 조금씩 많아졌고, 채산은 충분히 맞출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사카에서 오토섬을 하고 있는 곳은 우리가게 뿐입니다. 실패하는 점포가 많았던 것은 스탭이 얼마만큼 열심히 성실히 일했는가가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되어집니다. 우리회사는 집사람이 점장으로 일하는 등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2000년, 밋코자동차는 스즈키와 신차판매 대리점계약을 체결했다. 경자동차 전문 [스즈키프라자]의 탄생이였다. 오토섬과 인접하는 장소에 쇼-룸을 오픈했다. 점점 판매도 눈부시게 발전했고, 그결과 이미 작년의 일이지만, 표창을 수여받기도 했다. 니시오카상의 말대로 [스탭의 진지한 업무자세]가 이런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볼수 있을 것이다.

재작년에 [구루마--루-(고유명칭)]를 시동
중고차 소매의 관심을 완전히 끊은 니시오카상이지만, 업자판매부분에서는 아주 뛰어나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자동차신문이나 경제신문 등에서도 소개한 [구루마-루]네트옥션이 그것이다,
계열회사의 [죠이 루-비]는 자동차해체, 중고부품판매의 총합상사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데, 자원이 되는 자동차의 매입은 손해보험회사가 중요한 상대처가 된다.
리사이클 용의 부품취급을 목적으로, 사고차나 배상의 대상이 되는 폐차등을 대신 처리하는 형태로 매입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를 좋아하는 니시오카상은 인터넷의 한창 활발하기 시작할 때 부터 니시오카상은 이것을 잘 활용해서 무언가를 할수 있지 않을까 많은 궁리를 하게 되었다. 그것이 네트옥션, 구루마-루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사고차 라도 잘 수리하면 아직도 한참 달릴 수 있는






차를 매입할수 있다는 것을 토대로 판금설비를 가지고 있는 중고차 판매점이나 공장을 대상으로 인터넷에 의한 입찰회를 하면, 그것이 바로 신규사업으로 전환이 되지않을까, 등등 많은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10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서 테스트 입찰회를 재작년7월에 2회를 했고, 그 다음 8월부터 본격적인 입찰회[구루마-루]를 가동시켰다. 미리 차량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스톡야드도 확보하고 있는데, 네트워크를 경유한 손쉬운 입찰 방식이면서 AA과 같이 수수료도 없어서 입찰희망자가 넘쳐나고 있다. 니시오카상의 목표가 아주 적중했다고 할 수 있다.

“판금공장등에서는 일이 점점 감소하고 있어서 필사적으로 입찰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회원은 현재 140개사정도로 약 반수가 판금공장입니다. 그밖에 중고부품점, 수출업자, 부품해체업, 중고차 판매점들도 있습니다. 입회조건은 아무나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엄격하게 정해놓고 있습니다. 과거 1년이상, 가게를 운영한 경험이 있어야 하고, 결산서, 납세증명서의 제시등이 그것입니다. 때문에 일반 브러커들은 입회할수 없습니다. 또 현장 입찰에서 클레임은 일체 받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입찰평균단가는 20만엔전후로 하고 있습니다. 월 2회 개최로 250대에서 300대정도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차량상태가 양호한 것만 환영받는 오토옥션과 결정적으로 다른점은 깨끗한 차량은 입찰회원에게는 메리트가 없다는 것이다. 기스가 많은 상처투성이의 차량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익의 주메인이 바로 구루마-루가 되어버렸습니다, 작년도의 년매상은 13억5000만엔으로 5년전과 비교하면 두배 증가했습니다, 구루마-루나 신차판매 관계로 10억엔, 정비부문 및 그 밖의 부문에서 3.5억엔 정도의 비율로 , 2002년 법인세를 9500만엔 납부했습니다.”

매상에 대한 이 정도의 납세금액은이라면 경이적인 숫자가 아닐까? 년매상 50억엔를 넘는 대기업의 중고차 판매점에서도 이 정도의 납세액을 내는 기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적어도 필자가 지금껏 들어온 범위내에서는....

구루마-루의 나고야, 찌바회장설립을 계획.
힛트기획이 나오면 거기에 추종할만한 것이 나타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 니시오카상을 인터뷰한 2일후, 월간자동차 신문 긴끼(지명) 지방판에 저가차량중심의 네트입찰회 활성화로 밋코자동차에 이어 계속되는 회사의 등장을 알리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입찰회 주최자가 증가하면, 거기에 경쟁원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앞으로 구루마-루의 새로운 구상으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구루마-루의 게획으로서는 현재의 네트워크를 그 상태로 활용하고, 우선은 나고야와 찌바에 회장을 전개시킬 예정입니다. 별도의 회사를 운영할까, 지점을 운영할까 아직은 검토중입





니다만, 이미 준비과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손해보험회사와는 전국 네트워크체제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게 되면 반드시 잘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문제는 운영을 책임질 인력을 어느 부분까지 관리 할 수 있을까가 제일 중요한 문제로 생각됩니다.”

니시오카상 스스로 자기가 해나가는 일에 대해서 타사의 참가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길만을 간다는 입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는데 이는 바로 니시오카상의 이런말들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할수 있다.
“밋코의 장래전망은 구루마-루뿐만이 아니라 일반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정비, 차검, 신차판매도 확실하게 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밋코본래의 상혼을 확실하게 하기위해서 지금까지 약간의 소홀함이 없지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도 합니다. 지금현재 회사전체가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만,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 할까를 조용히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2005년에는 자동차 업계전체가 크게 변화하리라고 분석하는 니시오카상.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재상태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저는 무슨 문제가 발생할 때 나중에 라는 사고방식은 갖지않고 있습니다. 1분1초라도 빨리 해결하려는 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일에 후회를 한다면, 그 다음에서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대응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어떤 사물에 대한 문제의식을 진솔하게 느끼고 거기에 맞는 구조방식을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떳떳하고 다른사람에게도 떳떳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을 항상 명심하며, 자신의 실수를 둘러대어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아니면 사원들을 꾸짓는 일은 없습니다.”

20대에서 배우기 시작한 시가 지금은 선생님의 자격으로 많은 제자들도 두게 되어는데, 요즘은 아주 오랜만에 한번씩 시간을 갖는 정도라고 한다. 40대에 들어서 배운 골프가 바쁜 니시오카상에게는 지금의 유일한 휴식시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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