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클 권<현대해상 ADR팀 매니저>
2003년 11월21일~23일 3일간은 지난 1987년 모터스포츠에 꿈을 실은 지 17년 중 가장 힘들면서도 보람된 날이었다. 이승진 선수와 매니저인 필자는 제5회 코리아 F3 슈퍼프리에 참여해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는 믿음이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대해상 ADR F3팀 소속으로 F3 코리아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의 실버스톤 트랙과 웨일즈 팸브리 서킷에서 강행군의 연습을 했다. 국내에서는 인디고레이싱의 배려로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실력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F3 선수들과 겨뤄 부족하나마 최선의 준비를 해 온 이승진 선수는 지난 4년간 창원에서 열린 F1800 경기에 참여한 경험과 2002년도 KMRC F1800 시리즈 챔피언으로서 능력을 보여줄 준비를 했다.
11월21일 연습주행이 시작됐다. 조금씩 \'달라라 무겐 F302\' 머신에 적응하면서 몸을 풀던 이승진 선수는 머신이 영국에서 테스트할 때와 같은 성능이 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피트인을 해서 팀의 미캐닉들과 상의한 결과, 전기관련 스위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4단에서 5단으로의 변속에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러나 연습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연습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머신을 정비하느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창원 서킷의 레이아웃을 익히는 게 옳다고 판단한 이승진 선수는 머신 트러블에도 불구하고 짧은 연습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연습에 매진했다. 거의 모든 선두권의 선수들이 1분12초 안의 랩타임을 기록할 때 1분17초 이상의 기록 밖에 내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 팀원 모두가 안타까워 했다.
이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많은 팬들 또한 이승진 선수의 상상치 못한 느린 랩타임에 걱정과 야유가 섞여 나왔다. 이 중요한 순간에 머신 트러블은 정말 이승진 선수에게는 최악의 일이었다.
연습주행 내내 머신 트러블과 싸우던 이승진 선수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2002년 영국 F3 챔피언 ADR팀의 엔지니어들과 무겐 엔진의 공급업체인 닐브라운엔지니어링의 엔진튜너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리라 믿고 예선에서 좋은 랩타임을 기록하기 위해 팀의 데이터 엔지니어들과 데이터 로그인 시스템의 자료를 장시간 분석하며 예선을 준비했다.
22일 아침은 유난히도 날씨가 맑아 어제의 머신 트러블로 무거웠던 선수와 팀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줬다. 오전에 홀수번호 차의 예선이 시작되자 이승진 선수는 정상적인 머신의 성능을 찾아 단숨에 1분14초대에 접근, 한국 최고 선수의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14초2까지 내려간 랩타임은 머신의 언더스티어 문제가 발생해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다.
전날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해 자신만의 세팅을 찾지 못한 결과였을까. 예선전 내내 언더스티어링 문제와 싸우다 결국 한국의 또 다른 새내기 기대주 황진우 선수보다 조금 앞선 1분14초 초반의 예선기록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두 명의 한국선수 앞에 모든 선수들은 1분12초 안의 예선기록을 냈고, 새로운 영국의 루이스 해밀턴 선수는 1분9초대의 기록으로 창원 서킷의 랩타임 신기록을 세웠다.
폴시터 해밀턴 선수와 4초 이상의 차이는 충격적이었으나 완벽히 준비된 외국선수들과 특히 맥라렌 F1팀의 후원을 받고 있는 차세대 F1 스타와의 실력비교는 애초부터 말이 안됐다. 그래도 예전의 한국 대표선수들이 2.5~3초 정도 뒤진 기록보다도 느린 4초 이상의 기록차이는 한국모터스포츠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에게 실망스러운 성적일 수 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결함이 있는 머신으로 경기를 마치기 위해 이승진 선수는 최선을 다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경기결과로 볼 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지만 이 것이 한국 모터스포츠의 현실이다. 제대로 된 투자없이 \'혹시나\' 하는 억지기대에서 나타날 냉담한 시선은 사양하고 싶다.
마침내 23일 오전 9시. 27대의 F3 머신의 멋진 배기음으로 아침 웜업(Warm-up) 주행이 시작됐다. 이승진 선수는 어제의 언더스티어와 연습주행 때 머신 트러블을 극복하고 모닝 웜업 주행 때 피트인을 계속적으로 하며 스타트를 여러 번 연습했다. 다행히 이승진 선수의 머신은 별다른 문제가 없는 듯 팀원들과 본인은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경남도가 정성껏 준비한 오프닝 행사 뒤 시작된 첫 경기 전 이승진 선수와 ADR팀 메이트인 데니 왓츠 선수는 서로를 격려하고 행운을 빌며 각자 자신의 머신 조종석에 들어갔다. 드라이버뿐 아니라 모든 팀원들도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누구 하나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드라이버들은 스타팅 그리드를 향해 달려 나갔다.
경기는 스타트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면서 27대의 F3 머신이 천둥같은 배기음을 뿜어내며 시작됐다. 선두권에서는 미국의 안티누치가 폴시터 루이스 해밀턴을 제치고 경기를 쉽게 풀어나갔다. 이승진 선수는 스타트 때 클러치에 문제가 생긴 듯 포지션을 여러 명에게 빼앗기며 경기를 시작했다. 앞서 가던 선수들이 황진우 선수를 추월하다 사고가 나서 황진우는 안타깝게도 리타이어했으나 이승진은 또 다시 생긴 머신의 이상을 극복하고 오전 경기를 무사히 마쳤다.
오후의 본선 경기에서도 계속되는 동력부분의 문제를 안고 무조건 완주를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결과 21위라는 기록으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 직선코스에서도 머신이 최대한의 성능을 발휘할 수 없어 달리는 모습을 지켜 보는 많은 국내 모터스포츠팬들과 팀원들은 안타깝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 하필이면 이승진 선수의 머신에만 계속 트러블이 생길까. 달리는 랩마다 속이 상해서 어쩔줄 몰랐으나 이승진 선수의 침착하고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트러블이 있는 머신이지만 결국 체커기를 받았다. 이승진 선수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지난 5년동안 출전한 6명의 국가대표 선수 중 조경업 선수 외에 두 번째로 사고없이 완주해낸 이승진 선수는 자신의 기록에 만족할 수는 없지만 내년에도 F3의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고 믿는다.
결과적으로 비록 이번 경기가 완주를 목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지만, 이 것이 분명 우리가 거쳐가야 할 과정이라 생각하고 국제적인 레이스에 참여해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점에서 우리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 모터스포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선수 개인의 뛰어난 자질만이 요구되는 게 아니라는 걸,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투자 그리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2009년 유치하려는 F1 코리아 그랑프리를 위해 국내 모터스포츠의 국가적인 지원이 절실히 필요함을 모두에게 다시금 상기시켜주고 싶다.
3일간의 F3 경기일정은 또 하나의 기록으로써 한국 모터스포츠의 역사에 남겠지만 이번 경기에 기업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경기에 참여한 이승진과 필자는 너무나 많은 걸 배우고 새로운 도전목표를 찾아 의미가 남달랐다.
제5회 국제 F3 코리아 슈퍼프리에 국가대표팀으로 참여할 수 있게 도와준 현대해상, 경상남도, 현대레이싱, 덴소코리아, 지멘스 VDO, 금호타이어, KARA 그리고 멋진 팀웍과 우정을 나눈 ADR F3팀과 \'한.영 모터스포츠 프로젝트 2003\'에 기여한 영국대사관과 SMS코리아에 큰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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