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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일본 중고차업계의 이채를 띠는 도전자들3


일본 중고차업계는 선진화돼 있다는 점에서 한국 중고차업계의 나아갈 바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자동차경매장은 이에 따라 매월 자사 사외보인 \'오토옥션리뷰\'에 일본 \'유스트카\'에 실린 칼럼들을 번역, 연재해 국내 중고차업계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오토타임즈는 서울경매장의 협조를 받아 이를 싣는다. 편집자

이와데현 하나마키시는 분지에 위치해 있고, 국도 주변에 위치해 옛날부터 숙박촌이 밀집했던 곳이지만 유명작가인 미야자와 겐이치의 고향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인구 10만명의 지방도시로 모리오카시까지 자동차로 30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대도시에 가깝고, 도후쿠 신간센도 정차하는 등 이와데현에서도 유명한 지방도시 중의 하나이다.

오늘 방문하기로 한 회사는 국도 4호선에 인접해 있었다. 반원형의 쇼룸이 왠지 모르게 인접해 있는 토요타를 압도하는 듯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원래 이 자리는 작년 여름까지 혼다계 딜러의 영업소였다고 하는데, 회사경영이 통합되는 바람에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되어 다카하시 히로미찌씨가 이곳을 구입해 작년 10월에 오픈했다. 다카하시 히로미찌씨는 1989년에 창업한 유한회사 오토재팬의 대표이사이다.

1968년생으로 올해 35세인 그는 JU이와데현에서 2년간 청년부회의 부회장을 올해 여름까지 역임했다. JU이와데의 회장겸 이사장인 다카하시 다모쯔씨로부터 성이 같다는 이유 이외에도 많은 부분이 그의 눈에 띄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히로미찌씨가 창업을 하는데 뒤에서 후원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히로미찌씨를 방문한 날이 마침 그 회사에서 1개월 동안 실시했던 판촉행사의 마지막 날이었다. 작년 10월 오픈한 이후 지금까지 8번째를 맞는 행사로 행사명은 \'제이 월드 페스티벌\'이다.

오토재팬의 축제 이벤트는 다채롭다. 팬더곰 인형을 쓴 직원들이 손님을 맞고 포장마차를 설치해서 무료로 시음하는 부스도 별도로 설치했다. 100엔짜리 차부터 시작해서 천엔, 만엔등의 다양한 차량이 갖춰져 있다. 계약자들 중 일부를 추첨해서 \'한국 불고기 투어선물\'이라는 이벤트를 실시해 높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외모가 출중한 미녀가 장내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다름이 아니라 SUGO 경주의 레이스걸이라고 하는데, 손님으로서 참석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축제의 메인(주인공)이 되었다. 이들은 환상적인 스포츠카 미라쥬 레이싱카 앞에서 맘껏 포즈를 취해 주었다. 경영자 다카하시씨는 젊었을 때부터 레이스에 심취, 도후쿠컵 시리즈 챔피언을 획득할 만큼 뛰어난 레이서였다고 한다.

다카하시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오토바이 경주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퇴학처분을 받고 학교를 그만둔 다카하시씨는 주유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하던 중 어느 날 중고차 판매점 사장으로부터 중고차 판매를 권유받았고 바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농부로 집에 콤바인이나 트렉터를 수리하기 위해서 리프트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거기에 공구도 전부 있었지요. 어렸을 적부터 그것을 지켜보며 자란 저는 그것을 이용해서 흥미롭게 개조하고 부품 하나하나 해체해 보기도 하는 등 자동차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부수고 해부하는데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그것을 다시 짜 맞추는데는 아무래도 무리가 많았지요\"

그런 연유에서 들어간 중고차 판매점에서는 3개월 견습기간 중에도 월간 20대 전후를 판매하여 신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실적을 올리게 되었다. 그 이후 경매장에 가서 매입도 하게 되고, 중고차에 대해서도 차츰 알게 되면서 내면적인 갈등을 겪게 되었다.

\"매입가격과 판매가격의 차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제가 받고 있는 급료와 차이가 큰 것에 대해 많은 갈등이 생기게 되었지요\"

그 당시 기본급이 12만엔에서 13만엔이었고, 판매점에서는 견습기간 이었으므로 아르바이트생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그는 15만엔에서 16만엔 정도는 월급을 꼬박 받았다. 그런데 말이 15만엔, 16만엔이지 이것저것 공제하고 나면 약 10만엔 정도에 불과했다. 영업실적은 좋았는데 본인에게 돌아오는 것에 대해 대단히 실망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다카하시씨는 사장에게 급료의 3배를 올려달라고 했다.

\"승락은 했지만, 반년이 넘도록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요. 생각 끝에 그만두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다른 곳에서 월급 30만엔에 오지 않겠느냐는 제의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독립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됐다고 하는데 인생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맞는 말일까.

그에게는 형님이 두분 있었다. 그 중에 5살 차이의 첫째형 마사시씨는 그 당시 다른 중고차 판매점에 근무하고 있었다. 다카하시씨는 형에게 자기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점포를 차리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하였고 큰형은 무난히 그 제의를 수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중고차 판매점에서 일하던 둘째형도 여기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다카하시씨는 20세 불과했다. 중고차 시장에서 경험을 쌓은 지도 2년 남짓에 불과한 막내 동생이 제안해 삼형제가 의기투합은 했지만 부모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학력도 형편이 없었고 사람과의 유대관계가 중요한 이쪽 일에 대해서도 아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제가 일을 벌인다니 부모님의 반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시작하다보니 부모님에게서 자금 원조를 받아내는 건 생각도 못했습니다\"

월급쟁이에서 해방되자 잠재되었던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한 다카하시씨.

\"300평 정도의 싼 땅을 빌렸고, 차는 약 25대 정도 진열했습니다. 자본금은 세 명이 500만엔 모았고, 거기에 제가 타고 다니던 차 세르시오까지 팔아 자본금에 포함을 시켰습니다. 세르시오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차량이어서 프리미엄이 많이 붙었는데 그때 110만엔 받고 팔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토재팬이라는 중고차 판매점이 1989년 10월에 하나마키시에서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이 취재를 통해서 많은 판매상을 취재했지만, 창업 초창기에 오는 차량매입의 어려운 점을 오토재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세명 모두 경매장에서는 얼굴이 잘 알려져 있어 경매장 입회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또한 딜러에게 매입하는 것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어려웠던 점은 역시 자금문제였습니다. 은행에서 융자는 받을 수 없었고, 개업에 반대하셨던 부모님들도 개업 후에는 역으로 돈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어 보시곤 했지만, 그다지 빌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점포가 신용을 얻기까지 대략 3년이 걸렸습니다. 1993년에 제 2전시장을 낸 후부터 은행들도 점점 인정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유한회사로 바꾼 것은 1994년. 그 3년 전에는 정비 및 판금공장 \'카-레이지\'(차고 주차장)을 발족시키게 되었다. 1999년에는 독자적인 매입전문점을 오픈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으며, 올해 \'카컴퍼니 구락부\'에 가맹하게 된 것을 계기로 두 회사를 통합, 토탈 프로듀스 \'드림 엔젤카컴퍼니 구락부\'를 탄생시켰다.

그 후 본사를 이전하게 된 시기는 작년 10월. 회사조직을 갖추기 시작할 무렵 직함도 없는 명함을 사용하곤 했다는데, 지금은 직위도 확실히 구분되어 다카하시씨의 형 마사시씨 전무이사, 기구치히데하시씨 부장직에 취임했다. 대표이사는 물론 다카하시씨이다. 덧붙여 말하면 마사시 전무는 정비사 자격을 가지고 있어 공장에서의 점검수리에도 어느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여기에 다카하시씨도 지지 않고 경매장에 갈 때 차량 운송차를 직접 끌고 가기도 한다. 양복은 물론 입고 가지 않는다. 더욱이 카-캐리어 조작기술은 전문가를 무색하게 할 정도다.

\"캐리어 3대를 운영하고 있고, 부장도 직접 운송차를 운행하기도 합니다\"

인터뷰가 끝나자 다카하시씨의 안내로 공장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자랑인 카-캐리어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대당 3,000만엔하는 차량 앞에는 통으로 만든 범퍼가 정교하게 세공 되어져 있었다. 보통 이 범퍼 하나 값이 약 500만엔 정도라고 하니 취미도 여기까지 오면 매니아 수준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오토재팬의 사원은 사장을 포함해서 20명, 정비담당을 제외하면 사원들 전부가 어떤 특정업무를 갖고 있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자신의 고객은 자신이 하나에서부터 전부 담당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에 대한 기준량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기준량이 있으면 이것을 달성하지 못한 사람은 좌절해 버리기 쉽상입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대성할 수 없도록 만드는 첩경입니다. 판매에 대해서는 수당제도 운영하고 있지만,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월급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일찍부터 독립을 시작한 다카하시씨의 경영마인드를 읽을 수 있는 말이었다. 또 신입사원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조급한 마음 없이 천천히 진행해 나가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밝은 얼굴로 인사할 수 있을 때, 고개 숙이고 싫은 얼굴로 들어오는 손님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인사는 확실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일을 배우는 것은 인사교육이 몸에 밴 이후도 늦지 않습니다. 회사에 출근하면 청소부터 실시하고, 세차, 전화대응이라고 하는 순서를 잘 기억해 이 단계를 머리 속에 그리며 방문하는 손님에게 적절히 대응하고 있습니다\"

판매점에서의 신입사원 교육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어떠한 위험부담도 없이 이거다 저거다 지시하는 경영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지시만 내리고 당연히 될 것으로 여긴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본인들의 사업을 확장시키고 싶다면, 지금 당장 전력을 키우려고 하는 경영자들에게 다카하시씨의 방식은 우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천천히 교육시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만 보아도 이 젊은 사장의 서두르지 않고, 당황하지 않는다는 인재 육성법이 왠지 참신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준량을 두지 않고 급료제로 만든 것이 지금의 오토재팬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그에게는 여유까지 느껴지니 말이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800평 본사에는 상시 100대 전후의 전시차가 진열되어 있다. VIP카, 왜건계 등 별도의 주차공간을 설정했다. 최근년식이면서 차량상태가 매우 좋은 차량들만을 진열해 둔 것이 본 매장의 특징이다. 제 2전시장은 50대 규모로 가격은 100만엔 미만의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버블 경제가 시작되면서 앞이 좀처럼 보이지 않게 되어 여러 차종을 준비하는 것도 대단히 어려워졌다.

완벽한 차량을 손님에게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므로 그러한 경영방침을 유지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기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고, 소문이나 소개로 다시 오는 손님들이 매우 많다. 클레임이 나오지 않도록 주행거리가 적고 메이커 보증기간 내에 있는 차를 중점적으로 취급한다. 경매장에서는 평가점이 4점 이상되는 것을 매입, 손님에게 차량의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 전부 고지하는 것을 철저하게 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손님이 가끔 오시는데 실차도 보지 않고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클레임이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보지 않고 산 차에 대해 손님들이 생각한 것 보다 더욱 마음에 들어 하고 있습니다\"

2002년도 결산에서는 매출이 19억8,000만엔 이었다. 판매대수는 1,110대로 이중 80% 정도가 소매로 판매되고 있다.

\"작년은 본사 이전 등의 설비투자로 비용이 상당히 지출되어 경영이익은 2,000만엔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였습니다. 지금까지 최고의 실적은 1994년도에 매출 24억엔을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전에는 경매장의 비중이 높았지만, 현재는 대형 전시장도 준비했으므로 소매를 늘리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어 경매장 비율을 되도록 줄이고 소매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타 시도에서 손님도 많다고 하는데 그 이유도 들어 보았다.

\"선전비 예산은 라디오와 도후쿠 세 개의 현을 상대로 하고 있습니다. 정보지를 주로 이용하고, 축제를 개최하거나 전단지 등을 돌려 연간 3,000만엔 정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잡지는 월간입니다만 흑백, 칼라 관계없이 14~16페이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차량 한대 한대 사진을 크게 찍고, 독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반드시 삽입한다. 광고의 분위기 쇄신을 위한 여러 가지 제안서도 만들고, 편집 배정등에 대한 차별화의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에 의해 잡지광고로 발생하는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아키다, 아오모리 등으로부터 수많은 문의가 쇄도하고 있고, 먼 지역에서 오토재팬을 보기 위해 일부러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

창업해서 15년 동안의 업적을 뒤돌아보면, 우선 순풍에 돛단 듯 잘 진행해 온 것 같지만 이는 다카하시씨를 대표로 하는 삼 형제가 협동단결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인 30대의 젊음으로 지금까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오토재팬이 앞으로 얼마나 훌륭한 족적을 남길 수 있을지 흥미진진하다.

\"이제 하나마키시에서는 충분히 이루었으므로 다른 거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그곳은 모리오카가 될 겁니다. 하나마키시와는 다른 격전장이 될 것이므로 고전할 것이라고 각오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모리오카에 진출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반드시 꼭 실현시킬 것입니다\"

필자는 다카하시씨에게 10년 후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질문을 했다.

\"지금과 전혀 변화가 없이 사내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하나에서 열까지 의견을 내는 현역으로 일할 것입니다. 오토재팬은 딜러와 같은 조직체계를 만들어 전국 지점망 창립을 계속 진행할 것입니다\"

여러 생각 끝에 나온 말이 아니라 바로 입에서 튀어나오 듯이 얘기하는 다카하시씨. 경영능력에는 학력 유무나 나이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다카하시씨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카레이서 다카하시씨에 대해 궁금함이 들었다.

\"1990년인가 1991년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의 시기였습니다.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JU미야지로의 청년부회장 오오바씨의 권유로 레이서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오오바씨는 이미 레이서로 우승경험도 있는 배태랑 선수였다.

\"저도 레이스에 대해서는 관심도 있고 좋아했기 때문에 금방 승낙했습니다. 처음에는 신입 등용문의 시합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년 후에는 제일 높은 수준에까지 도달하게 되었지요. 그 다음해에는 보다 더욱 전투력 있는 레이스에 출전, 8번 도전해 한 번 실패하고 7번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한 번 실패한 것이 지금도 굉장히 억울하고 속상할 정도입니다\"

오오바씨와 한조로 \'히로보(고유명사) 레이싱팀\'을 결성해서 레이스에 도전, 챔피언이 되기도 했다. 또 레이스에 젊은 혈기를 3년 정도 투자하고, 1993년에 깨끗하게 정리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일간이나 사원들을 데리고 레이스에 참가했으니까 본업이 대단히 타격을 받았지요. 개인적인 일이었고 비용부담도 대단히 높았습니다\"

다카하시씨의 실력은 도후쿠(동북지방)에서 그 끝을 맺었지만 계속했다면 아마 포뮬러에 참가할 만큼의 실력에 도달했을 것이다. 미련은 마음 한구석에 많이 남았지만, 이곳에서 몇 차례의 우승하는 영광도 누렸기 때문에 그때의 좋은 경험은 돈주고 살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 될 것이다.

레이스에서 경험한 것은 경영자인 다카하시씨에게 대단한 재산이다. 레이스에서 배운 경험을 응용해서 기업경영으로 더욱 큰 꽃을 피웠으면 한다. 이것이 외야석에서 보내는 필자의 작은 응원의 박수다. (번역 신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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