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승기

기대 이상의 실망감 - 현대 벨로스터 터보


국산차 최초로 ‘핫 해치’라 부를 수 있는 모델이 등장했다. 현대차의 준중형 해치백 벨로스터가 1.6 터보 GDi 엔진을 품고 나타난 것이다. 국산차의 장르가 다양해지고 개성 강한 차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벨로스터 터보. 과연 기대만큼의 실력을 보여줄 것인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글, 편집 / 김정균 팀장 (메가오토 컨텐츠팀)


먼저 기존 벨로스터보다 과격해 보이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입을 크게 벌린 육각형 그릴을 시작으로 앞 뒤 범퍼와 사이드스커트는 잔뜩 힘을 줬다. 범퍼에 달린 눈속임이긴 하지만 겉에서 보이는 머플러 부분도 큼직하다. 눈에 확 띄어서 존재감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데, 벨로스터는 태생부터 과도한 디자인이었기 때문에 그보다 더 과해진 모습은 상당히 부담스럽기도 하다.


실내로 들어서면 역시나 복잡한 디테일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겉모습에 비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국내 판매되는 벨로스터 터보는 단일 트림으로 선택의 여지는 자동변속기와 수동변속기일 뿐이고 옵션도 썬루프가 유일하다. 따라서 가격대가 있는 만큼 대부분의 편의장비들이 모두 갖춰져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튜닝을 전제로 최소한의 장비만 갖춰진 기본모델을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벨로스터의 실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버킷타입 시트. 다른 차에 벨로스터의 시트를 옮겨달고 싶을 정도로 적당히 편안하고 단단한 감각이다. 반면에 이해하기 힘든 불편한 부분들도 있다. 모나게 튀어나온 도어 손잡이가 윈도우 조작버튼을 절묘하게 가려서 손을 자연스럽게 뻗으면 자꾸만 부딪히게 되고, 패들시프트는 손에 닿는 부분이 가장 좁은 형태라 180도 돌려서 달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외관과 실내가 어떻든 벨로스터 터보의 핵심은 파워트레인과 주행성능이다. 무게는 기존 벨로스터 대비 늘어났지만 직분사 시스템과 트윈스크롤 터보차저가 적용된 1.6L 터보 GDi 엔진은 204마력의 최고출력과 27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분명 자그마한 순정 국산차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수치임에 분명하다.


기대를 품고 가속페달을 힘껏 짓누르자 예상보다는 초반 약간의 딜레이가 느껴지면서 뻗어나가는 벨로스터 터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속도를 높이는데 분명 가속 자체는 빠르지만 중간 중간 기분 나쁜 느낌이 엄습해온다. 시승차가 6단 자동변속기 모델이기 때문.

변속 반응이 시원찮아서 터보엔진의 능력을 100% 써먹지 못하고 있다. DCT가 달린 벨로스터도 있지만 아직 터보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커다란 아쉬움. 현대차의 기술력은 여전히 과도기인 것 같다. 이 차는 분명 달리는 재미를 위해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 테니 그나마 수동변속기 모델을 권장하고 싶다.


자동변속기가 재미를 해친다 해도 기본적으로 넉넉한 출력을 가졌으니 다음은 핸들링과 하체에 기대를 걸어본다. 현대차에 의하면 일반 벨로스터 대비 브레이크를 강화하고 서스펜션과 관련된 주요 부품들을 성능에 걸맞게 손봤다고 한다. 출력에 비례하는 세팅을 적용했다면 분명 재미있을 것이다.

한껏 들떠서 스티어링 휠을 잡아 돌리는데 하체의 반응이 기존 벨로스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또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리저리 코너를 달려보지만 타이트한 감각보단 헐렁한 느낌이 먼저라서 더 이상의 욕심을 자제하게 된다. 전동식 스티어링의 느낌은 일부러 이렇게 만들기도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굉장히 어설픈 감각이다. 기본으로 달린 타이어도 출력을 받쳐주기엔 접지력이 아쉽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한국형 핫 해치의 탄탄한 코너링 실력은 결국 체험할 수 없었다.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고속화도로에 접어든다. 최고속도 언저리까지는 무난하게 치고 올라가지만 다시금 부족한 고속 안전성에 위축되고 만다. 급브레이킹을 반복해서 시도하면 차체의 거동이 불안해지고 다시 가속을 하면 엔진소리마저 거슬리게 들려온다.

결국 벨로스터 터보는 핫 해치로서의 엔진 출력만 가졌을 뿐 나머지 세팅들은 아쉽게도 수준 미달이다. 이는 대부분의 국산차들에게 해당되는 부분이지만 벨로스터 터보는 평범한 세단이나 SUV들과는 다른 성격이어야 하기 때문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더 클 수밖에 없다.


에필로그
이번에 더욱 안타까웠던 부분은 하필 벨로스터 터보를 시승할 즈음에 독일과 일본 국적의 핫 해치 여러 대를 번갈아가며 탔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거부했지만 몸으로는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격 대비 성능을 감안하면 벨로스터 터보는 당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현대차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아니던가. 지금으로선 벨로스터 터보의 가격이 두 배 더 비싸진다 해도 시로코의 탄탄한 하체나 미니의 날카로운 핸들링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모터스포츠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현대차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차가 바로 벨로스터 터보다. 물론 제네시스 쿠페도 마찬가지다. 현대차는 스포츠성이 강한 자동차를 만들기엔 전반적인 기술력이나 노하우가 굉장히 부족해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디자인과 편의장비, 표면적인 수치들은 세계적인 차들과 엇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에 감춰진 섀시 기술력이나 주행감성 등은 여전히 내세울 수준이 못된다.

자동차의 본질은 드라이빙의 즐거움에 있다. 잘 달리고 잘 돌고 잘 서는 기본기 충실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화려한 첨단 장비로 치장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우선과제라는 것을 현대차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애써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현대차가 쌓아올리고 있는 피라미드는 기초가 부실한 역삼각형이다.




Copyright © CARISYOU. All Rights Reserved.

토크/댓글|0

0 / 300 자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