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시릿한 바람과 향긋한 봄내음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3월의 어느 날, 잠시나마 복잡한 도심을 뚫고나와 오롯이 달리는 것에만 집중해본다. 찰나의 일탈마저 질투하듯 심술궂게 하늘을 가려버린 희뿌연 모래먼지가 야속하지만, 올곧게 뻗은 희미한 아스팔트의 끝을 빠르게 스쳐내자 온 몸으로 파고드는 풍부한 감성이 노곤했던 심신을 흐뭇하게 달래준다.

글,사진,편집 / 김정균 팀장 (메가오토 컨텐츠팀)


이날의 데이트 상대는 폭스바겐 투아렉. 부분변경 모델과의 예정된 만남이었기에 차분한 마음으로 담담하게 대면했다. 이전보다 세련되지긴 했어도 모범생 같은 단정하고 반듯한 이미지는 여전한지라 딱히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구석은 없다. 그래도 탄탄하고 비율 좋은 덩치가 은근한 카리스마를 자아내며 웅장한 자태로 서있는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10년을 한결같이 바라봐도 질리지 않을법한 절제된 디자인은 다분히 폭스바겐스럽다.


넉넉한 공간을 새삼스레 체감하며 큼직하고 안락한 가죽시트에 몸을 맡기면 한없는 풍요로움이 밀려와 비루한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듯하다. 블랙 하이그로시와 무광 크롬 소재가 적재적소에 가미된 실내 분위기에서도 특유의 절제미가 돋보인다. 화려한 고급감은 다소 부족할지언정 거슬리는 부분을 집어내기도 어렵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곳곳의 감촉과 조작감은 이전보다 개선되어 감성적인 만족감을 배가시키고, 레고 블록처럼 정교하게 맞아떨어진 조립품질은 가히 프리미엄 브랜드의 수준을 넘어서는 정교함을 과시한다.


각종 편의, 안전장비는 열거하기 귀찮을 정도로 다채롭게 갖추고 있다. 가장 인상 깊은 아이템은 SUV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다인오디오 컨피던스 시스템. 최적으로 배치된 12개의 스피커, 전용 중앙 채널, 첨단 앰프 기술로 구현된 이 시스템은 섬세한 저음과 부드러운 중음, 깔끔한 고음역대가 어우러진 입체적인 소리로 음악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공간에 최상의 사운드를 촘촘히 퍼트린다.

달리는 콘서트홀이란 식상한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투아렉의 철두철미한 정숙성이 더해졌기 때문. 엔진음, 노면소음, 풍절음 모두 실내로 들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음악 감상은 여기까지. 시종일관 고요한 적막감에 익숙해지다 못해 달관하게 될 즈음, 비로소 속도계의 바늘이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달리면서 느껴지는 성격은 외모보다 한층 더 듬직하고 성숙하다. 순간순간 치고나가는 재미가 없어 따분해질 찰나, 쥐도 새도 모르게 훌쩍 높아진 속도를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투아렉의 심장은 3.0리터 V6 디젤 직분사 터보차저 엔진. 수치상으로 충분해 보이는 힘이 8단 팁트로닉 자동변속기를 통해 조율된다. 실제론 오른발의 반응에 따라 가뿐하게 뻗어나가는 안정적인 거동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초반 가속은 마음속으로 되뇌는 숫자를 언제나 앞서가고, 속도가 높아져도 끈질기게 유지되는 힘이 한계치에 다다를 때까지 매끄럽게 전달된다. 상당히 빠르지만 결코 경박스럽지 않은 진중한 반응. 이것은 달리는 투아렉의 품격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수준 높은 가치다.


최대 300mm까지 차고 조절이 가능한 에어 서스펜션을 품은 하체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도로 위의 거슬리는 것들을 상당히 걸러내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밟고 지나가는지에 대한 정보 전달에 소홀하지 않은 기특한 면모를 지녔다. 코너를 돌아나가는 관성의 끝에 노면을 끈덕지게 움켜잡아내는 네 바퀴의 안정감도 수준급. 단순히 힘만 내세우는 SUV들에게 자아성찰이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다시금 복잡한 도심으로 되돌아가야 할 시간. 반나절의 일탈을 머리가 아닌 가슴에 품은 채, 이번엔 2열 상석에 몸을 기대본다. 운전석에선 감히 음미하지 못했던 차창 밖의 풍경이 사뭇 낯설다. 긴장이 풀리자 간사하게도 졸음이 밀려든다. 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지만 무거운 눈꺼풀을 참아낼 의지는 없다.

어느 정도 지났을까, 얕은 단잠에서 깨어보니 어느덧 도심 한복판에 들어서 있는 투아렉. 이내 소리 없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드넓은 파노라마 선루프를 서서히 채워가는 빗방울을 올려다보며, 일상이 일상일 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되새겨본다.

새로워진 투아렉에게 반전은 없었다. 투아렉은 일상의 반전을 이끌어내는 그런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