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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지옥,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다


그린 헬, 노르트슐라이페, 뉘르부르크링. 자동차 환자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낯익은 단어들이다. 독일 중서부 뉘르부르크에 위치한 이 서킷은 1920년대에 설립됐다. 북쪽의 노르트슐라이페, 남쪽의 GP 슈트레케를 통틀어 뉘르부르크링이라고 부른다. 가장 유명한 노르트슐라이페 코스는 20.832km의 장거리 중고속 서킷으로, 고저차가 심하고 폭이 좁으며 수많은 코너로 이뤄져 과거부터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위험한 곳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이 서킷에 열광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글, 사진 / 박환용 기자 (메가오토 컨텐츠팀)


뉘르부르크링은 경주만 하는 단순한 서킷이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의 신차 테스트 장소로도 애용되고 있다. 이 서킷 한 바퀴는 일반도로 2,000km에 해당하는 주행 조건을 갖추고 있어 신차의 테스트와 개발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도 뉘르부르크 주변에 연구센터를 갖추고 신차 테스트를 본격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테스트가 없는 평일과 주말에는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되어 드라이빙 아카데미, 트랙 투어, 트랙 데이 같은 행사들이 진행된다. 때마침 독일 출장이 잡혔고, 꿈에 그리던 뉘르부르크링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로 약 2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이곳은 레이싱 게임으로 수없이 돌았던 서킷. 영상과 사진으로만 접했던 이곳에 발을 딛고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니 감동이 벅차올랐다. 서킷을 방문한 당일은 평일이어서 오후 5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두 시간만 짧게 개방하는 날.


보통 대부분 서킷은 본인의 차량으로 드라이빙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행객이나 차가 없는 사람들은 렌터카를 이용해 서킷 주행이 가능하다. 주의할 점은 서킷 주변에 있는 서킷 전용 렌터카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 서킷이 아닌 다른 곳에서 빌린 일반 렌터카를 끌고 서킷에 들어갔다간 유럽에서 영영 렌터카를 이용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유는 서킷에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 따라서 일반 렌터카 회사들은 CCTV를 이용해 수시로 자사 렌트카의 서킷 출입을 체크하고 있다. 국내 일부 매체에서 일반 렌터카로 주행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정보다. 일반 렌터카를 타고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는 일은 없도록 하자.


서킷 이용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본인이 직접 운전하거나 링 택시를 이용해 동승체험을 하는 것. 링 택시는 뉘르부르크링 서킷 경험이 풍부한 프로 드라이버가 직접 운전하는 차량으로 BMW 링 택시가 가장 유명하다. BMW M5에 3명까지 동승이 가능하며 한 바퀴에 225유로(한화 약 30만원)의 비용이 든다. 평균 속도는 180km~200km/h를 넘나들며 동승자의 반응에 따라 드리프트 서비스도 제공된다.

뉘르부르크 마을 주변에는 RSR 뉘르부르크, 렌트 4 링, 렌트 레이스카 등의 서킷 전문 렌트카 샵이 준비되어 있고, 뉘르부르크링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도 서킷용 렌터카와 링 택시를 소개하고 있다. 이 차들은 세미 슬릭 타이어, 일체형 서스펜션, 레이싱 브레이크 패드, 버킷 시트, 롤 케이지 등을 장착해 서킷용으로 튜닝되어 있다.


꿈에 그리던 서킷에 왔으니 본격적으로 체험 준비에 나섰다. RSR 뉘르부르크를 방문해 차량 리스트와 금액을 확인했다. 렌터카를 빌리는데 필요한 조건은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하며, 국제운전면허증과 한국에서 발행된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된다. 소형차부터 스포츠카까지 다양한 차종이 준비되어 있는데 금액 또한 천차만별이다. 본인 차량으로 서킷을 이용할 경우 랩 수에 맞는 티켓을 구매해 주행할 수 있지만, 렌터카의 경우에는 차량 렌트비와 랩 수에 따른 티켓 비용, 차량 유지보수비용까지 포함된 가격을 지급해야 한다. 또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은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있으며, 억울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 사실 노르트슐라이페는 서킷이라 부르고 있지만 행정상으론 일반도로이며 일방통행 도로로 지정되어 있다.


렌트한 차량은 폭스바겐 시로코 2.0 TSI DSG 모델. 처음엔 BMW M135i를 선택했으나 서킷에 비가 내리는 상황이었고, 렌터카 업체 직원 역시 첫 주행이라면 고출력 후륜구동 모델보단 안전을 위해 전륜구동 모델을 타길 권했다. 차량 렌트비와 4바퀴를 주행할 수 있는 티켓, 유지보수 비용(연료/타이어), 보험료, 운전자 추가 비용까지 포함된 금액은 549유로(한화 약 73만원). 비용을 지급하니 이날의 신청자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아 간단한 서킷 이용 방법과 코스 설명을 진행한다. 고저차가 크고 불규칙한 노면 상황과 블라인드 코너가 많으니 과속은 금물이라며 잔뜩 겁을 준다. 그동안 게임에서만 달려봤던 뉘르에서의 실제 주행은 과연 어떨지 궁금증이 커지고 흥분과 긴장이 감돌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서킷 진입은 패독에서 피트 레인을 지나 서킷으로 합류하는데, 이곳은 메인 스트레이트 구간의 일부를 차단해 차량이 출입할 수 있게 되어있다. 입구에는 차단봉이 설치되어 단말기에 링 패스 카드를 찍으면 차단봉이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서킷으로 합류하게 된다. 멀리 한국에서 날아온 초보 드라이버 티가 났는지 서킷에 진입하기가 무섭게 시작부터 추월해 지나가는 차들이 많다. 하필 비가 오는 바람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동영상이나 게임 화면으로 보던 익숙한 장면이라 친근한 마음이 들기도.


시로코 2.0 TSI는 2.0리터 직렬 4기통 가솔린 터보차저 엔진으로 최고출력 210마력, 최대토크 28.6kg.m를 발휘하며, 7단 듀얼클러치 자동변속기와 조화를 이룬다. 서킷 출입을 위해 레이싱 브레이크 디스크와 패드를 장착했고, 그립이 우수한 세미 슬릭 타이어를 신고 있었다. 하지만 그립이 우수하다는 것은 마른 노면 상황일 때의 이야기. 젖은 노면에서 세미 슬릭 타이어는 쥐약이었다. 곡선을 그리며 탈출해야 하는 코너에서 가속페달을 밟으니 사선으로 차가 움직이기 시작해 언더스티어가 발생한다. 렌터카 업체 직원이 후륜구동 차량을 권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게임 속 노르트슐라이페는 고저차를 실감하기 어려웠으나, 실제 주행에서는 귀가 멍해질 정도로 고저차가 심하다. 블라인드 코너 역시 깊이의 차이가 크고, 불규칙한 노면 상황이 펼쳐진다. 게임은 그저 게임일 뿐. 물론 다음 코너를 예측하는 용도로는 훌륭하지만, 실제로는 게임과 전혀 다른 긴장의 연속이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욕심은 금물. 사고는 곧 통장과 연결되기에 흥분을 가라앉혔다. 왜 전 세계 자동차 환자들이 이곳에 열광하고 찾아오는지 직접 달려보니 느낄 수 있었다.


녹색 빛으로 물든 산속을 달리고 있자니 왜 이곳이 녹색 지옥으로 불리는지, 그리고 전 세계 자동차 환자들이 왜 이곳에 열광하고 이곳을 찾아오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서킷을 달리는 내내 중고속의 빠른 평균속도와 연속되는 코너를 즐기다보면 그 매력에 흠뻑 취하게 된다. 유럽에 살았더라면 주말마다 뉘르부르크링을 찾아오고 싶을 정도. 정해진 4바퀴의 주행을 모두 마치고 나니 소요된 시간은 약 50분. 한 바퀴 당 15분 정도 걸린 셈이다. 온몸엔 땀이 흐르고, 긴장이 풀리자 무사히 완주했다는 안도감이 밀려든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 것을 느낀다. 프로 드라이버들이 존경스러워지는 순간.


뉘르부르크링에서의 시간은 굉장히 즐거웠다. 진정으로 좋은 경험이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한국에서 드라이버 라이센스를 취득해 서킷 주행을 즐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내 차로 다시 한 번 뉘르부르크링을 달리고 싶다. 그건 아마도 모든 자동차 환자들의 로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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