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형 재규어 XJ 4.2 LWB는 익스테리어를 스포티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으로 다듬어 슈퍼모델을 연상시키는 늘씬한 자태를 뽐낸다. 30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4.2리터 V8 가솔린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는 기품에 걸맞는 동력성능을 제공하며, 알루미늄 차체와 전자제어 에어서스펜션은 뛰어난 승차감과 우수한 핸들링을 양립시켰다. 뒷좌석은 리무진이 부럽지 않은 공간을 자랑하지만 실내 사양은 치밀하지 못한 것이 흠이다.
글 / 민병권 (
메가오토 컨텐츠팀 기자)
사진 /
고병배 (
메가오토 컨텐츠팀 기자)
자동차 정비업에 몸담고 계신 ‘그분’께서는 재규어의 보닛 안쪽을 들여다보며 말씀하셨더랬다.
“에이, 이거 철판을 그냥 접어서 만들어놨네. 독일차들은 이런 곳도 꼼꼼하게 잘 처리하더만. ”
무슨 말씀을 하실지 궁금해서 옆에서 좀 거들었다.
“그렇죠? 실내도 독일차처럼 빈틈없이 잘 만든 느낌이 없어요~”
그 말에 실내까지 둘러보신 그분 왈, “이야, 그래도 이거 잘나가나 보네. 계기판에 280까지 있잖아?”
“예? 아… 하하, 나가긴 아주 잘 나가던데요.”
이윽고 차의 배기구를 노려보시던 그분은 “이거 1억 넘지?” 하셨고,
“옛? 아아뇨, 8천 정도에요.” 했더니 “오, 정말? 아, 그러고 보니 차가 그렇게 크지는 않구나. 일본 L삐리리만 한가 보네.” 하신다.
기다렸던 포인트! “그럼 L삐리리랑 이차 중에 어느 게 나아 보이세요?” 그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러신다. “에이 재규어랑 L삐리리랑 비교가 되나? 재규어는 전통이 있는데.”
이것은 지난번 재규어 S타입 시승 때 오간 대화내용이다. 그러니 그분이 말씀하신 ‘철판’은 사실 ‘알루미늄판’이고, 비교대상으로 언급하신 L삐리리는 아마 준대형급의 **300~350 일 것이다.
이처럼, 비록 실수요층은 아닐지라도 일반 소비자들과 자동차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면 각 메이커들의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어떻게 인식되어 있는지를 깨닫고 새삼 놀라곤 한다. (특정 메이커를 폄하하거나 반대로 띄워주려는 의도로 오해하는 독자는 없으리라 믿는다.)
재규어 XJ는 그 ‘전통 있는 재규어’ 중에서도 가장 재규어다운 모델이며, 또한 우리나라 절대다수의 이들에게 ‘전형적인 재규어’의 이미지를 심어준 모델일 것이다. 1968년에 처음 데뷔한 이래 기함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는 XJ는 크게 보아 지금이 3대째 모델. 2003년에 등장한 3세대 모델 (‘X350’으로 구분)은 우주항공분야에서나 쓰던 급의 에폭시 본드와 3천 2백 개의 리벳으로 결합시킨 알루미늄 모노코크 바디/섀시를 채용해 화제를 모았고, 그에 걸맞는 우수한 핸들링과 부드러운 승차감, 강력한 파워를 겸비해 좋은 평을 얻었다. 다만, 구형 모델들의 라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디자인은 진보진영으로부터 실망 섞인 평을 들은 것도 사실이다.
현재 XJ에 들어가는 엔진으로는 2.7 디젤과 3.0 가솔린, 4.2 V8 가솔린이 있고, 최상급 모델에서는 4.2리터 V8 슈퍼차지 엔진을 쓴다. 즉, 독일메이커들이 이미지를 위해 내세우고 있는 V12 엔진은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재규어는 이 자리를 10년째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다. 어쨌든 400마력짜리 슈퍼차지 엔진을 쓰는 최상급 모델로는 고성능 버전인 XJR과 기함 중의 기함인‘다임러 슈퍼 에잇’이 있으며, 그 아래로 소버린과 이그제큐티브, 스포츠 프리미엄이라는 트림이 존재한다.
이번 시승차는 2008년형으로 페이스 리프트된 X350인데, 그 중에서도 엔진은 4.2 가솔린,차체는 롱 휠베이스(이하 LWB), 트림은 ‘소버린(Sovereign)’에 속한다. 첫인상은, 일단 길고 늘씬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조명이 모두 꺼진 어두운 밤, 옥외주차장에 세워진 이 XJ를 향해 걸어가던 기자는 달빛을 반사시키며 드러난 그 아름답고 섹시한 뒷측면의 모습에 심장이 벌렁벌렁했었다. 정측면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어도 특별히 LWB 버전이라서 길어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라인이지만, 경쟁모델들과 수치를 비교해보면 비슷한 길이, 비슷한 높이임에도 유독 지붕이 낮고 차체가 늘씬해 보이는 것이 XJ LWB의 특징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은 나중에 일반모델들과 맞닥뜨리게 되면 오히려 어색함을 느끼게 되는 정도이다.
2008년형에 와서는 기존에 범퍼와 라디에이터 그릴 테두리에 있었던 크롬 장식을 없애는 대신 그릴 안쪽에 크롬 도금된 메쉬를 삽입했으며, 앞뒤 범퍼형상과 사이드씰, 램프류의 디테일을 변경하고 있다. 특정모델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측면 에어벤트를 새로 적용하고 사이드미러에는 깜빡이를 내장시키는 등 조금 더 스포티하고 현대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도 엿보인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나중에 시승차를 자주색 06년식 다임러 모델과 나란히 세우자 단박에 드러났다. 기자의 경우에는 기존 모델의 클래식함에 마음이 더 끌렸지만 취향에 따라서는 08년식의 깔끔한 바디라인을 더 선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슈퍼모델’이라 부를만한 늘씬한 차체를 쫓아왔다가 그 얼굴까지 확인하게 된 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수도 있다. 하단의 공기흡입구를 강조한 새 마스크는 정면에 붙인 엠블럼 속의 재규어 얼굴- 으르렁거리는 모습이라고 해서 ‘growler’라고 부르는- 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강렬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코 부분이 안으로 들어가고 이마와 턱이 나온듯한 불편한 인상인데다가 범퍼하단까지 울룩불룩하게 만들어놔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과격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나마 아래쪽 흡기구의 메쉬그릴과 안개등 부분에 덧붙여진 크롬 장식의 럭셔리한 이미지가 이러한 야생성을 적당히 희석시켜주고 있는 느낌이다.
성형된 얼굴의 인상과는 별도로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이어진 보닛의 굴곡은 여전히 아름답다. 보닛 끝에 가려진 와이퍼는 플랫 타입이 아닌 재래식으로, 워셔노즐이 함께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보닛에 구멍을 하나라도 덜 뚫기 위해 고안된 구조로, 보닛을 알루미늄으로 바꾼 S타입 역시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운전석에 앉으니 전체적으로 몹시 친숙한 느낌. 최근에 탔던 S타입과 비슷해서다. 손목의 비트는 힘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시동키도 여전하다. 대시보드 중앙의 아날로그 시계나 왼편의 발렛 버튼은 S타입에는 없던 것인데, 발렛버튼을 이용하면 글로브박스와 트렁크만 잠근 상태에서 발렛담당 직원에게 차를 넘겨줄 수 있다. 물론 이때 넘겨주는 발렛 전용의 녹색 시동키에는 이를 해제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 전체적인 감성 품질은 라이벌들에게 밀리는 느낌으로, 예를 들어 버튼을 누르면 스르르 내려오는 글로브 박스는 닫을 때의 느낌이 시원치 않다.
2008년형 XJ는 앞시트의 형상을 바꿔 지지력과 뒷좌석 레그룸을 키우는 등 작은 변화가 있었다. 끝 단이 파이핑 처리된 가죽시트의 첫 느낌은 다소 미끈거린다는 것. 시트는 냉온풍을 모두 불어줄 수 있으며 온풍을 켜면 스티어링휠까지 덩달아 따뜻해져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스티어링 컬럼과 페달깊이가 모두 전동으로 조절되어 포지션을 잡기가 편하지만 텔레스코픽의 길이는 살짝 부족한 듯. 동반석도 전동 럼버서포트(에어식)와 전동 쿠션 길이조절 기능을 제공하며 헤드레스트 높이 조절 역시 전동식이다.
이러한 호사에도 불구하고 핸드폰 따위의 소품을 대충 꽂아둘 수 있는 수납공간이 없는 것은 불만이다. 암레스트 안쪽의 얄팍한 수납공간에는 티켓과 볼펜 한 자루, DMB 리모콘 정도가 겨우 들어갈 뿐이고, 컵홀더를 쓰자면 변속기 조작을 포기해야 한다. 야간에 도어손잡이 부분에 조명이 켜지지 않는 것도 이 차급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LWB 버전인 만큼 뒷좌석의 레그룸은 리무진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허리가 더 길어 보이는 국산 리무진 차량들도 실제로는 XJ보다 휠베이스가 짧다.) 지난 해 국내에 선보인 다임러 버전과는 달리 좌우 독립형 뒷시트는 아니지만 묵직하기 짝이 없는 센터 암레스트를 내려놓으면 비슷한 분위기를 낼 수도 있다. 디딤돌을 연상시킬 정도인 이 암레스트에는 컵홀더 외에도 각종 AV의 조작부와 입출력 단자, 헤드폰 단자 등이 내장되어 있어 앞좌석 헤드레스트에 달린 모니터를 통한 삼매경에 빠져들 수 있다. 오디오는 320와트 출력의 스피커 12개짜리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동반석 헤드레스트를 뽑거나 접어둘 수는 없어 화면을 보고 있지 않을 때는 시야가 갑갑할 수 있다. 이때는 뒷시트 바깥쪽에 위치한 시트모양의 조절 손잡이를 이용해 동반석을 앞으로 밀거나 등받이를 접어 버리면 된다. 그러고 보니 동반석 외에는 모두 메모리 시트이고 뒷좌석도 등받이 각도가 조절된다. 하지만 쿠션 부분이 앞으로 전진하면서 등받이가 눕혀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등받이만 더 세울 수 있는 수준이고 쿠션의 길이 조절기능도 없어 차라리 동반석에 앉고 싶은 유혹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통풍시트도 1열에만 제공된다. 뒷좌석 센터콘솔에는 위 아래로 송풍구와 좌우독립 자동 온도조절장치, 라이터, 전원소켓이 달려 있다. 뒷유리 햇빛 가리개는 전동식, 옆유리는 손으로 걸어줘야 한다.
울림으로 인해 별 것 아닌 소리도 크게 느껴지는 지하주차장에 들어가더라도 4.2리터 V8의 회전소리는 고요하게만 느껴진다. 2중 접합된 측면방음유리를 내리고 들어보아도 엔진은 저 깊은 곳 어디에 숨겨져 있는 듯 작은 소리만을 들려줄 뿐이다. 그렇다고 마냥 조용하고 부드럽기만 한 엔진은 아니다. 300마력 급의 최고출력은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주목 받을 정도가 못되지만 스틸 차체대비 40%의 감량효과를 누린다고 하는 알루미늄 차체를 움직여 날랜 캣워크를 선보이기에는 차고 넘치는 힘이다.
계기판의 레드존은 6,200rpm부터, 속도계 눈금은 10km/h부터 시작되며, 풀 가속시 변속 포인트는 6,000rpm 부근이다. 70, 115, 180km/h에서 시프트 업이 진행되고 지체 없이 200km/h를 넘어선다. 늘씬한 차체만큼이나 쭉쭉 잘도 뻗어나간다. 제원상 0-100km/h 가속은 6.6초, 최고속도는 250km/h로, 역시나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동력 성능을 지녔다. (센터페시아의 ‘ASL’버튼을 이용하면 최고속도를 원하는 수준- 최저 30km/h-으로 제한시킬 수도 있다.)
물론 차급이 차급인 만큼 수치상의 제원보다는 각 상황에서 얼마나 안정적이고 고급스럽게 이러한 성능을 구현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착 가라앉는 느낌이 덜한 듯 하긴 하지만 고속에서의 안정감이나 정숙함은 흠잡을 곳이 없다. XJ는 기본차체의 휠베이스가 3미터를 넘기는데다 LWB는 여기서 12.5cm가 더 길다. 이처럼 긴 휠베이스에도 불구하고 저속에서의 가감속시 느껴지는 피칭은 다소 신경 쓰이는 수준이고, 롤도 억제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랄 수는 없지만 승차감은 몹시 부드러워서 왠만한 과속방지턱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아니, 고양이 담 넘어가듯이 통과한다.
XJ의 고양이들(CATS: Computer Active Technology Suspension)은 운전환경과 운전자 성향에 따라 쇽업소버의 세팅을 2단계로 자동조절 해주며, 승차 인원에 관계없이 수평을 유지해주고 고속주행 시에 차고를 낮춰주는 에어 서스펜션을 장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기술들이 과속방지턱을 과속으로 통과하도록 해주지는 않는다. 무리한 시도는 뒷좌석 부근으로부터의 강한 충격파를 남길 뿐. 인위적으로 댐퍼 세팅이나 차고를 조절할 수 없는 것은 상황에 따라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부드러운 승차감과 예리한 핸들링을 양립시킨 하체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XJ는 노면에 달라붙듯 단단하게 코너를 돌아나가는 독일제 라이벌들과는 사뭇 다른 주행감을 선사한다. 특히 LWB의 경우 구불구불한 길을 다소 과격하게 돌다 보면 차체의 좌우 쏠림이나 꼬리의 휘청임을 쉽게 느낄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타이어의 비명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꼬리의 움직임을 다잡기 위해 DSC가 동분서주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컨티넨탈 컨티프리미엄 컨택2(235/50R18 사이즈)의 비명소리는 들은 기억이 없으니 재규어에게 홀려 있기라도 했던 것일까?
XJ 역시 S타입처럼 ZF제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하고 있는 데, 변속기의 S모드는 이번에도 그 속을 알 수 없는 두리뭉실한 반응만을 보여 결국 두 손을 다 들어버렸다. 100km/h 정속 주행시의 엔진회전수는 1,500rpm. 기어를 3단까지 내려도 3,300rpm에 불과하다. 80km/h에서는 기어가 5단으로 내려가면서 1,600rpm을 유지. 인수시 시승차의 총주행거리는 3,628km였고 1,453km 주행에 6.8km/리터라는 연비 기록이 남아있었다. 223km를 뛴 시승기간 동안의 연비는 7.4km/리터. 공인연비는 8km/리터이다.
재규어 XJ 4.2 LWB 주요제원
크기
전장×전폭×전고 : 5,215×1,860×1,450mm
휠 베이스 : 3,159mm
트레드 (앞/뒤) : 1,556/1,546mm
최저지상고 : - mm
중량 : 1,800kg (공차중량) / 2,125kg (차량총중량)
엔진
형식 : 자연흡기 V8 DOHC 가솔린
배기량 : 4,196cc
최고출력 : 297마력/6,000rpm
최대토크 : 42.8kg.m/4,100 rpm
보어×스트로크 : 86.0×90.3mm
압축비 : 11.0:1
섀시
구동방식 : 뒷바퀴 굴림
서스펜션 (앞/뒤) : 더블위시본 / 더블위시본
브레이크 (앞/뒤) : 디스크/디스크
스티어링 : 랙&피니언
변속기
형식 : 자동 6단
기어비 : 4.170/2.340/1.520/1.140/0.870/0.690/R:3.400
최종감속비 : 2.870
성능
0-100km/h 가속 : 6.6초
최고속도 : 250km/h
최소회전반경 : - m
타이어 : 235/50R18
연료탱크 용량 : 85리터
트렁크 용량 : - 리터
연비 : 8 km/ℓ
차량 가격 : 1,3500,000 만원 (VAT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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