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의 스포츠쿠페인 카이맨은 박스터와 911의 사이를 채워줄 틈새모델로 태어났다. 911의 리어엔진(RR) 방식보다 밸런스가 뛰어난 박스터의 미드쉽엔진(MR) 방식을 기초로 만들어졌으며, 박스터 대비 우수한 차체 강성과 약간 더 높은 출력을 바탕으로 911에 버금가는 성능을 갖춤으로서 신세대 포르쉐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카이맨이 박스터와 더불어 새롭게 변모했는데, 특히 이번에 만난 카이맨S는 911의 직분사 방식과 PDK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한층 업그레이드된 완성도를 자랑한다.
글, 편집 /
김정균 기자
(메가오토)
대략 두 달 전이었다. 신형 타르가4S의 시승을 통해 강력한 포르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던 그날이. 그 후 한동안 열병을 앓으며 무난한 성격의 시승차를 만날 때면 괜히 뚱한 표정으로 시승에 임하기도 했는데, 특히 모 대형 세단의 시승 땐 급차선 변경 테스트 도중 높은 속도가 아니었음에도 불안한 하체 때문에 예상보다 크게 휘청거려 깜짝 놀라 식은땀을 흘렸던 흔치 않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여하튼 그러한 과정 덕분에? 이제 슬슬 바이러스가 치료되나 싶던 찰나, 또다시 포르쉐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기? 가 찾아왔다. 신형 박스터와 카이맨이 동시에 출시된 후 목이 빠져라 기다린 끝에 드디어 시승 순서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하루, 시간으로 따지면 반나절 정도만 허락되었기에 독자 여러분께 선보일 시승기와 사진을 위해 그날의 점심은 굶어야만 했다. 쫄쫄 굶은 상태에서 짜릿한 성능을 체험하다보니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해졌는데, 포르쉐 바이러스까지 감염되어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어쨌든 신형 라인업에서 먼저 만난 녀석은 시원한 아쿠아블루 색상의 카이맨S였다. 낮게 깔린 자태가 녀석의 이름대로(Cayman:악어) 악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형인 911은 개구리 같다는 의견도 있으니 어찌 보면 개구리보단 악어가 더 멋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개구리든 악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언제 봐도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전통의 클래식함과 첨단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포르쉐의 혈통인 것을.
새로운 카이맨의 외관은 변화된 점이 간단하다. 포르쉐의 슈퍼카인 까레라GT와 닮은꼴로 다듬어진 헤드램프, LED가 적용되고 날카롭게 다듬어진 리어램프 등으로 기존모델에 비해 앞, 뒷모습에서 세련미를 더했다. 사이드미러가 커져 시인성이 좋아진 것도 변화된 점. 하지만 얼핏 봐서는 구분이 안갈 정도로 기존 디자인에서 약간의 변화만을 거친 것은 포르쉐답다. 포르쉐 디자인 팀은 숨은그림찾기의 달인들로 구성되지 않았을까. 프런트에서 리어까지 흐르는 차체의 라인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 만큼 절묘하게 잘 빠져있어 보면 볼수록 감성을 자극한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어도 즐겁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먹어야겠다.
그밖에 외관의 특징으로는 엔진이 가운데 위치한 덕분에 이런 차체로도 앞, 뒤 모두에 적재공간이 있어 꽤나 요긴하다는 것, 후미엔 속도나 작동버튼에 따라 오르내리는 얄쌍한 리어스포일러가 장착된 것, 머플러는 중앙에 위치하며 카이맨은 싱글, 카이맨S는 듀얼로 적용된다는 것 등이 있다. 시승차의 휠은 18인치, 타이어는 앞 235/40R18, 뒤 265/40R18 사이즈가 장착되었으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매칭이다. 퍼포먼스를 중요시한다면 그 이상의 사이즈와 취향에 맞는 디자인, 도색 등을 옵션으로 선택하면 되겠다.
낮게 깔린 차체와 시트 포지션 덕분에 승하차시 몸에 힘이 들어가 조금 불편하지만, 이런 장르의 모델에선 단점으로 지적될 수 없다. DSLR 카메라 리뷰에 렌즈 교환이 불편해서 단점이라고 하진 않듯이. 탑승 후 자세를 잡고 나면 시트에 몸이 잘 밀착되면서 특유의 A필러 디자인 덕분에 시야가 우수한 것은 여전하다. 운전석에서 쭉 둘러본 모습은 박스터와 똑같고 911과도 거의 흡사하며, 다른 부분을 찾아보라면 3링 형태의 계기판과 동그란 송풍구 정도가 보인다.
전체적으론 공간이 약간 더 작은 911의 실내처럼 느껴진다. 조립 품질은 포르쉐를 접할 때마다 감탄하는 것이지만, 각 부분이 조립된 게 아니라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단단하게 맞물려 있으며, 다양한 색상과 재질을 각 부분마다 취향에 맞게 선택 가능하다. 시승차의 경우 밝은 베이지 색상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원한다면 새로운 카이맨에 추가된 악어가죽 포함 인테리어도 선택할 수 있다. 악어라는 이름의 차에서 악어가죽을 느낄 수 있다니 좀 멋진 듯.
미드쉽인 카이맨은 리어엔진의 911과 달리 리어해치를 열면 트렁크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반대로 실내 공간에선 2+2형태의 911보다 편의성이 떨어진다. 시트 바로 뒤쪽에 엔진이 배치되기 때문에 남는 공간이 거의 없으며 시트를 뒤로 눕힐 수도 없다. 물론 자세를 잡는데 불편함 없을 정도의 시트 조절 공간만은 확보하고 있어 어지간히 키가 큰 사람도 문제는 없지만. 프런트의 본닛을 열면 큰 가방 하나 들어갈 정도의 꽤 깊은 공간이 있으며 결국 이 부분이 주된 트렁크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한 가지 불편한 점은 본닛을 힘껏 잡아내려도 한방에 끝까지 닫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닛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서일까, 내린 후에 엠블럼 부분을 손바닥으로 꾹 눌러줘야 제대로 닫히기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고 손자국도 남는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개선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제 새로운 카이맨의 성능을 테스트할 순서. 첫 번째 장소는 자연스레 와인딩 코스로 정해졌다. 코너링 좋다고 소문이 자자한 카이맨이니 와인딩 코스를 빼먹는다면 앙꼬 없는 찐빵 같은 시승이 아니겠는가. 일단 스포츠모드로 전환, 변속기레버는 수동모드로 옮긴 후 가속페달을 밟아주니 바로 뒤에서 울부짖는 포르쉐사운드가 기분 좋게 들려오며 돌진해 나간다.
짜릿한 성능 이전에 운전자의 감성을 제대로 자극하는 포르쉐사운드. 카이맨에선 911 대비 엔진음-배기음 모두 음량은 더 작지만 수평대향 엔진 특유의 음색은 여전하며,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느낌이 묘하고 색다르다. 스포츠, 스포츠플러스 모드로 가속페달을 마구 밟아 알피엠이 치솟으며 함께 솟구치는 배기음은 911대비 저음, 박스터보다는 아주 약간 더 저음이다. 노멀모드에서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찬찬히 주행하면 911보다 조용하고 부담이 없다. 물론 911과 비교해 그렇다는 것이고, 300마력 전후의 얌전한? 쿠페들과 비교하면 카이맨의 노멀모드가 더 하드하다.
스티어링휠에 달린 변속버튼은 누르면 기어단수가 올라가고 당기면 내려가는 방식인데, 잠깐의 적응시간만 거치면 금세 익숙해진다. 어차피 가장 흔한 방식인 좌(-)우(+)를 잡아당겨 까닥거리는 패들시프트가 아니라면 나머지 방식은 적응하기에 달렸다. BMW의 올리면(-), 내리면(+)인 기어변속레버보다는 포르쉐의 변속버튼이 적응하기 쉽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건 아니고, 와인딩 코스를 공략하면서 가장 와 닿는 느낌은 무게중심이 가운데 있다는 것과 하체를 비롯한 모든 감각이 단단하고 날카롭다는 것.
신형으로 넘어오면서 911과 마찬가지로 직분사(DFI) 방식이 적용된 카이맨S의 배기량 3436cc 수평대향 엔진은 320마력/7200rpm, 37.7kgm/4750rpm의 출력을 뿜어내기에 어차피 차체 대비 전혀 부족함 없어 코너 탈출 시 원하는 만큼 치고나갈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백미는 7단 듀얼클러치인 PDK 미션. 기어단수를 오르내리면 딱 눈 깜박하는 시간에 변속되기 때문에(눈을 한번 깜박여 보시길), 그리고 확실하게 반응해주기 때문에 연속된 코너에서도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올릴 필요가 거의 없다.
최근의 듀얼클러치 미션들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점은, \'수동변속기의 부재가 아쉬워진다\' \'수동변속기가 그립다\' 등의 표현이 더 이상 의미 없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제 수동변속기는 없어서 아쉬운 장비가 아니라 취향에 따른 선택일 뿐이다. 앞으로는 \'듀얼클러치의 부재가 아쉬워진다.\' 가 맞는 표현이겠다.
아무튼, 와인딩 코스에 접어들어 처음엔 녀석의 한계치보다 너무나 느린 주행을 했다. 코너를 돌아나가는 안정된 거동을 몸이 아닌 머리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이후 환한 대낮이지만 대항차를 위해 바이제논 헤드램프를 점등시키고 스포츠플러스 모드로 전환,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자 포르쉐사운드가 주변에 메아리치며 튀어나가는 반응이 무섭게 이어진다. 눈에 불을 켜고 점차 한계치를 높여가며 빠르게 돌아나가려는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녀석은 예의상 리어를 살짝 흔들어줄 뿐 무게중심은 가운데서 벗어나지 않은 채 뉴트럴과 약 오버를 넘나들며 여전히 별로 불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기자의 머릿속엔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이 떠올랐다. 그 코너링 머신이 떠올랐다는 것 자체로 카이맨S의 코너링 성능은 인정. 결국 와인딩 코스에서 주어진 짧은 시간동안 녀석의 한계는커녕 부족한 시간 때문에 자꾸만 시계를 힐끔거리다 고속도로를 향해 달렸다.
런치컨트롤 사용 시(사용법은 메가오토 911 타르가 4S 시승기 참조) 0-100km/h는 4.9초. 그동안 911만의 영역이었던 5초의 벽을 드디어 침범해버린 초반 가속부터 200km/h까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평소에 어지간한 고출력 차량을 타는 오너라도 이야~ 하고 감탄하게 되는 수준인지라 체감상으론 터보를 제외한 911라인업이 부럽지 않다. 911과의 차이는 200km/h를 넘어가면서 느껴지기 시작하지만, 이 역시 911과 비교해서 그렇지 어지간해선 최고속도 275km/h를 다 뽑아낼 구간도 찾기 힘들다. 수많은 시승을 하면서도 와인딩 코스와 고속도로 모두에서 빛을 발하는 녀석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데, 새로운 카이맨S는 어떤 코스에서도 반짝 반짝 눈이 부셔 부릉부릉부릉~ 그야말로 눈부시게 내달렸다.
에필로그
엔트리급인 박스터부터 시작되는 포르쉐의 라인업은 위로 올라갈수록 성능과 가격이 조금씩 높아지는 아주 절묘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를 선택해 타다 보면 그 모델에서 약간 아쉬운 점을 그 윗급이 갖추고 있어 업그레이드의 유혹을 받게 된다. 따라서 카이맨을 타다 보면 911을 타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레 생길 것이고, 진정한 포르쉐는 911 뿐이라는 골수팬들도 많다. 물론 그 의견엔 기자도 상당히 동의한다. 911의 매력은 엄청나니까.
하지만 새로운 카이맨S를 시승해본 결과, 얼마 전 911에서 꽤 높은 그레이드의 모델을 경험했음에도 그와 비교해 부족하다는 느낌보다는 카이맨 자체의 매력과 존재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911 까레라를 타보면 까레라S를 원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까레라4S, 터보에 이르기까지 눈이 높아질게 뻔하지만, 카이맨S를 타면서 911 까레라를 원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가격으로 보나 밸런스가 유리한 드라이빙의 재미로 보나 카이맨의 매력이 더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뒤에 S라는 이니셜 정도는 붙어줘야겠지만.
시승기 서두엔 한층 업그레이드된 완성도를 자랑한다고 언급했으나, 사실 이번에 만난 카이맨S는 감히 완벽하다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정도였다. 모두에게 완벽한 차는 없어도 최소한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오너에겐 완벽할 만큼 높은 수준이다. 결국 신형 카이맨S 때문에 또다시 포르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이젠 더 이상 이 매력적인 바이러스를 치료하고 싶지 않다. 신종 인플루엔자는 초기에 발견하면 무난하게 치료가 가능하다지만, 독일에서 발생한 이 악어 인플루엔자는 백신이 개발될 일도 없다. 겉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죽지도 않으니 더 문제다.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게 되는 병인데, 치료법은 딱 한가지, 악어 한마리 입양하는 수밖에 없다. 젠장, 파란색 악어 때문에 적금들게 생겼다.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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