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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정점에 올라선 로드스터, 포르쉐 뉴 박스터

90년대 초반 경영 위기를 맞은 포르쉐는 진입장벽을 낮춘 모델로 난관을 돌파하려 했다. 따라서 박스터는 911과 일정 수준의 부품을 공유해 제작단가를 낮추면서도 판매 간섭을 피하기 위해 미드십 구조를 채택했다. 당시 포르쉐의 디자인 수장이었던 함 라가이가 디자인한 컨셉트카는 1993년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되어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후 1996년 출시된 1세대 박스터는 포르쉐의 구세주가 되었다.

글, 사진 / 김동균 기자 (메가오토 컨텐츠팀)


이처럼 포르쉐에게 부품 공유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박스터는 지속적으로 911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회사 수익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3세대 박스터 역시 새로운 911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5개월여의 차이를 두고 등장했다. 911과 마찬가지로 박스터 역시 고유의 코드네임이 존재하는데, 1세대가 986, 2세대는 987, 지금의 3세대 박스터는 981이다.

현행 박스터의 외관은 샤프한 헤드램프 형상과 도어 옆을 과감하게 파내고 자리 잡은 에어 인테이크 등이 마치 카레라 GT를 연상케 한다. 섀시는 알루미늄 합금을 46% 이상 사용하고 마그네슘을 섞어 구형 대비 35kg까지 무게를 줄였다. 그럼에도 비틀림 강성은 약 40% 높아졌다.


휠베이스는 60mm 늘어났으며 앞, 뒤 오버행은 각각 40mm, 18mm 짧아졌다. 100mm 앞으로 옮겨온 윈드스크린은 경사가 더 가파르게 기울어졌다. 이러한 각각의 수치 변화는 큰 폭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어우러진 모습은 이전보다 매끈하고 날렵한 인상을 준다.

새로운 루프는 마그네슘 프레임을 적용하고 접었을 때 덮개가 따로 없는 간결한 구조로 무게를 12kg이나 줄였다. 열거나 닫을 때 걸리는 시간은 단 9초, 시속 50km 이내에서는 주행 중에도 작동된다. 실제로 조작하는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기존의 반자동식에서 완전 자동식으로 바뀐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뒷모습은 한 눈에 박스터라는 이미지를 느끼게 하면서도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양 옆의 테일램프 중간에서 시작되어 뒷부분을 가로지르는 돌출된 라인은 디테일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 위로는 전동식 리어스포일러가 맞물리며 하단에는 트윈머플러가 중앙에 위치한다. 휠은 19인치가 기본 장착되며 옵션으로 20인치도 마련된다.


실내는 다른 포르쉐 형제들과 비슷하다. 카레라 GT에 뿌리를 둔 인테리어 디자인은 파나메라와 카이엔, 911을 거쳐 박스터에게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실내를 요모조모 살펴보면 포르쉐다운 친숙한 향기가 물씬 풍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기능에 충실하며 화려하지 않아도 고급스러움이 살아있다.

시승차의 실내는 조금 심심하지만 구매자에겐 수많은 컬러와 옵션의 선택 권한이 주어진다. 즐겨 입는 수트와 같은 색상의 가죽으로 실내 전체를 감싸도 좋고, 여자친구나 와이프가 좋아하는 핑크 컬러 스티치로 마감해도 된다. 물론 그에 따른 대가는 인내와 돈이지만.


박스터의 기본 가격은 7,850만원, 박스터 S는 9,560만원이지만 국내 소비자들이 대부분 선택하는 코리안 패키지만 더해도 박스터 8,960만원, 박스터 S가 1억 1,290만원으로 올라간다. 주차 센서와 열선 시트, 로드스터에는 필수인 윈드 디플렉터, 심지어 바닥 매트에도 추가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은 단지 ‘포르쉐는 원래 그래’라는 설명만으로 납득하기 어렵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복잡한 생각을 뒤로 하고 시동을 걸자 포르쉐 특유의 박서 엔진 사운드가 순간 귓속을 파고든다. 계기는 911이 다섯 개의 원으로 이루어진 것에 비해 박스터는 간단하게 세 개로 정리됐다. 세 개의 원에도 필요한 모든 정보가 빠짐없이 담겨 있어 911의 나머지 두 곳에는 무엇이 표시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앙의 타코미터와 왼쪽 속도계는 당연하고 오른쪽으로는 각종 차량 정보와 함께 G포스를 확인할 수 있다.


한적한 도로에 접어들자 또렷해진 엔진음이 다리를 타고 내려가 자꾸만 오른발을 간질인다. 못이기는 척 오른발에 힘을 주자 뒤에서 하모니를 이루는 카랑카랑한 엔진음과 배기음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내친김에 스포츠 플러스 버튼을 눌러 박스터의 잠재력을 이끌어낸다.

본색을 드러낸 박스터는 운전자의 기대와 요구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엑셀러레이터를 밟는 장단에 맞춰 거침없이 뻗어나가고, 코너를 과격하게 공략해도 힘든 내색 전혀 없이 여유롭게 탈출한다. 무엇보다 여전히 정상에 머물러 있는 것은 박스터의 핸들링 감각. 포르쉐의 새로운 전동식 스티어링은 이제 더 이상 의심의 눈초리를 받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최고출력 315마력, 최대토크 36.7kg․m의 힘을 발휘하는 박서 엔진과 7단 듀얼클러치(PDK) 변속기가 조합된 박스터 S의 파워트레인은 빠르게 반응하면서도 부드러운 유연성이 매력적이다. 따라서 크루징이나 고속주행 모두 만족스러운 느낌을 전해준다. 엔진 출력이 5마력 상승하고 차체가 가벼워졌기 때문에 무게당 출력은 10마력 높아졌지만 몸으로 느껴질 만큼 큰 차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기계적 리어 액슬 디퍼런셜 록을 제공하는 포르쉐 토크 벡터링과 훌륭하게 개선된 PDK 변속기의 조합은 박스터를 더욱 민첩하고 빠른 차로 만들었다. 패들시프트를 이용한 변속에도 빠르게 반응해 즐거운 주행을 방해하지 않는다. 더 커진 몸집은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도 주지 않으며 가벼워진 무게의 장점만이 녹아들어있다.


박스터는 여전히 데일리카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다. 스포츠카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만 아니라면 크루징에서의 승차감에 불평을 늘어놓긴 쉽지 않을 것이다. 연비는 시승차인 박스터 S의 경우 10.1km/L로 이전 모델보다 약 15% 향상되었다. 특히 탄력 주행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면 변속기가 구동축과 분리되어 연료 소모를 줄인다. 물론 스포츠모드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3세대 박스터는 일취월장한 스타일만큼이나 내적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실제 주행감각은 수치로 드러난 성능을 뛰어넘는 느낌이고, 승차감은 한결 상냥하며 핸들링은 여전히 정상에 있다. 포르쉐 박스터는 당분간 활력 넘치는 최고의 로드스터로서 굳건한 지위를 유지할만한 자격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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