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의 주력모델 랜서가 2010년에 접어들면서 새 모델을 선보였다. 기존 모델과의 차이점은 거의 없으나 변화의 핵심은 차량 자체가 아니라 크게 다운된 가격이다. 탄탄하고 스포티한 준중형급 세단으로 기억되는 랜서, 보다 착해진 녀석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글, 편집 /
김정균 기자
(메가오토)
사진 /
박환용 기자
(메가오토)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미쓰비시는 한때 일본에서의 결함 은폐 사건 때문에 그야말로 썩어 빠졌던 시절도 있었지만, 본래는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랠리 경주에서 명성을 쌓고 괜찮은 차를 만들어내는 한 가닥 하는 메이커였다.
국내에서는 과거 현대차가 미쓰비시의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지금은 단종 된 구형 에쿠스, 스타렉스, 싼타모 등의 모델들은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했거나 미쓰비시 차량 그대로를 판매하기도 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쓰비시와 오래전에 갈라서고 독자 기술력으로 엄청나게 성장한 현대차가 새삼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미쓰비시도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면서 푸조 시트로엥 그룹과 협력해 안정적인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한국 수입차 시장에도 진출하면서 자사를 대표하는 랜서 에볼루션, 아웃랜더, 이클립스, 랜서 등의 모델들을 차례로 선보인 후 치열한 시장 상황 속에 고군분투를 계속해 왔다. 인지도가 낮고 마케팅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기업 이미지 때문인지 몰라도 그간 만족스런 판매량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주력 모델인 랜서의 가격을 1년 만에 큰 폭으로 다운시켜 2천만원대 시장에 진입함으로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각이 살아있는 디자인을 바탕으로 다부지고 튼튼해 보이는 것이 랜서의 주된 이미지. 전체적인 디자인, 전면 마스크, 커다란 리어스포일러 등이 얼핏 보면 공도최강 란에보와 착각할 만큼 유사하기 때문에 도로에서 마주치는 한 성능 한다하는 모델들이 은근슬쩍 다가와 들이대기도 한다.
외관에서 기존 모델 대비 변화된 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도어손잡이의 크롬 재질과 블랙배젤 리어램프가 난이도 높은 틀린 그림 찾기처럼 달라졌을 뿐, 다른 부분은 모두 동일하다. 우연히도 시승차의 색상 또한 1년 전 당시의 시승차와 마찬가지여서 같은 차를 다시 만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페이스리프트 개념이 아닌 가격 인하가 주된 목적이니 겉모습이 많이 변한다면 오히려 이상할 터, 여하튼 변화된 요소 중에서 크롬 도어손잡이는 괜히 손자국만 생기고 랜서와 전혀 안 어울리는 것 같아 불만이지만, 블랙배젤 리어램프는 작은 차이라 해도 기존보다 세련된 느낌이라 만족스럽다.
인테리어 디자인 역시 란에보와 많이 닮아있으며 간결하고 심플한 터치들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너무 심플해서 최근의 추세에 비하면 세련된 맛이 부족해 보이고,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사용된 플라스틱류의 재질감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녀석의 가격과 성격을 감안하면 수긍이 가다가도 동급의 다른 차종들과 비교하면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 하지만 시트, 스티어링휠, 기어변속레버 등 몸이 닿는 부분은 모두 가죽으로 처리된 것을 보니 다시 용서가 되기도 한다.
디테일 또한 기존모델과 거의 동일하지만 계기판이 보다 업그레이드되었다. 다소 칙칙했던 속도계와 타코미터는 깔끔하게 변해서 시인성이 좋아졌고, 가운데 붉은 톤이었던 디스플레이창도 상큼한 컬러로 변경되어 각종 정보를 표시해준다. 공조장치 조작 다이얼을 크롬으로 처리한 것도 작지만 달라진 부분. 스티어링휠의 패들시프트는 랜서에게 있어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이기 때문에 빠져서는 안 될 장비.
살짝 불편한 부분들도 몇 가지 있다. 첫째, 야간에 4개의 윈도우 조작버튼 중 한군데만 희미한 조명이 들어오는데 이게 너무 흐릿해서 눈으로 보고 찾아내긴 힘들다. 물론 실제 오너라면 손가락이 자동으로 감지해 내겠지만 전반적인 조작버튼들의 조명 밝기가 다소 아쉽다.
둘째, 열선 시트 조작 스위치가 컵홀더보다도 뒤에 있기 때문에 눈으로 보면서 조작하려면 상당한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기자처럼 몸이 뻣뻣한 사람을 배려해주지 못한 부분.
셋째, 스티어링휠이 틸트만 되고 텔레스코픽이 안 되는 것은 국산차에서 자주 지적했던 불편 요소인데 미쓰비시 모델들도 대부분 그렇다. 기자와 같은 체형의 경우, 오른발을 가속페달에 맞추기 위해 시트를 뒤로 조절하면 스티어링휠은 너무 멀어져서 팔을 쭉 뻗고 잡아야 하기 때문에 텔레스코픽이 지원되지 않는 모델들을 시승할 때마다 좀처럼 자세가 잡히지 않아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2리터 배기량의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으로 최고출력 145마력(6000rpm), 최대토크 19.8kg.m(4250rpm)를 발휘하는 랜서, 수치상으론 평범하지만 효율과 반응이 뛰어난 CVT 변속기가 맞물리고 단단한 하체, 높은 차체 강성으로 인해 꽤나 재미있는 드라이빙이 가능하다. 엔진은 평범하지만 그 외의 파워트레인들은 기대 이상의 수준인 것이다.
따라서, 기존 모델의 시승기에도 언급했다시피 공도최강 랜서 에볼루션의 감각을 절반 가격인 랜서에서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동급의 타 모델들과 차별화된 즐거움을 더해주는 요소. 전반적으로 물렁함과는 거리가 멀고 적당히 단단한 감각이기 때문에 일상의 평범한 주행에서 편안하게 타는 용도로는 젊은 오너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성격이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 뻗어나가는 감각은 배기량이나 수치 대비 의외로 흡족하고 매우 경쾌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스티어링휠 양쪽의 패들시프트를 까딱까딱 조작하며 빠른 변속 반응으로 요리조리 내달리는 맛이 일품인데, 동급의 다른 모델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드라이빙의 재미가 랜서에서는 살아있는 것이다.
다만 4기통의 한계인지 몰라도 가속페달을 깊게 다루면 엔진음이 꽤나 침투하고, 속도를 높일수록 들이치는 노면 소음과 풍절음 등의 전반적인 방음대책에선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단단한 하체가 뒷받침되는 코너링 실력은 유달리 돋보이는 부분. 출력이 높지 않은 전륜구동인데도 시승 경로를 와인딩 코스로 정하게 되는 몇 안 되는 모델중의 하나가 바로 랜서다. 급격한 코너에서도 좀처럼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으며, 섀시가 엔진을 이기고 있기 때문에 시종일관 믿음직한 구석이 있다.
스티어링휠의 감각은 기본적으로 묵직하면서 노면 정보를 잘 전달해주는 편으로, 18인치 휠/타이어가 장착되어 그러한 성격이 더 강하다. 약간 더 소프트하기를 원하는 오너라면 17인치 이하의 휠로 교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에필로그
랜서는 동급의 다른 모델들 대비 성격의 차별화가 돋보인다. 드라이빙의 재미가 살아있는 준중형급 수입 세단으로서 평범한 세단을 탈피하고 싶은 젊은 층의 오너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최대 600만원 인하된 가격은 더없이 플러스적인 요소. 한국시장 진출 당시보다 안정된 환율과 공격적인 전략이 맞물린 이러한 가격 정책은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볼 때 언제나 대 환영이다.
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으로 생각지 않는 오너들에게 보다 착해진 가격으로 운전 재미를 선사해 줄 미쓰비시 랜서, 앞으로의 더 나은 활약을 기대해 본다. 아울러, 단순히 엔진 마력 등의 수치만으로 차를 평가하는 일부 편협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리라 예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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