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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올드카, 1990 대우 에스페로



1987년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 해제 이후 승용차 시장은 경쟁이 치열해졌다. 합리화 조치 상황에서도 계속 승용차를 제작해 노하우를 축적한 현대자동차는 조치 해제 이후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대우자동차는 그런 불리한 상황 속에  승용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 개발을 서둘렀다.



1990년 9월 26일, 강남 한국종합전시장(현 코엑스)에서 3년간 1천3백억원을 투자해 개발한 프로젝트 J카의 신차발표회가 열렸다. 프린스와 르망 사이의 포지션을 담당할 신차의 이름은 바로 에스페로. 차명 'Espero'는 스페인어로 '희망하다, 기대하다'라는 의미를 가졌다. 에스페로는 신차발표회 이후 10월 23일 첫 출고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가격은 수동변속기 모델 960만원, 자동변속기 모델 1,055만원이었다.



에스페로의 차체 디자인은 이탈리아 베르토네 디자인센터의 도움을 받아 완성됐다. 차체 라인을 매끈하게 처리하고 앞부분보다 뒷부분을 들어 올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형태로 날렵한 세단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특히 라디에이터 그릴을 제거한 전면부와 유리판으로 제작된 C필러는 인상적인 부분. 그러나 디자인을 따라잡지 못한 기술력의 부재로 C필러에 센터바를 추가했는데, 이는 최초의 디자인 컨셉을 해치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



초기 에스페로는 르망 임펙트에 적용됐던 2.0리터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 4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해 각각 13.5km/L, 12.2km/L의 연비를 기록했다. 또한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 컴파운드 링크 서스펜션을 적용해 승차감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에스페로의 스펙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시대를 초월한 공기역학적 설계다. 0.29Cd의 공기저항계수는 2008년 현대 제네시스가 0.27Cd를 기록할 때까지 무려 18년 동안이나 국산차 중에서는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에스페로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에스페로는 애매한 포지션으로 기존의 중형차 시장과 새로 확장된 준중형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자사의 다른 차종과 배기량이 겹치는 딜레마와 마주했다. 또한, 최초의 독자개발이라는 과정 속에 겪은 각종 시행착오로 인해 완성도 부족현상까지 겹치면서 결국 판매부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에 따라 에스페로는 상품성 증대와 위기탈출을 위해 계기판을 디지털로 교체하고 컵홀더를 추가하는 등 편의장비를 개선했으며, 안테나를 앞 펜더에서 뒤 펜더로 옮기고 분리된 형태의 리어램프를 길게 이어 컴비네이션 형식으로 교체하는 등의 부분변경을 감행했다.



가장 문제였던 파워트레인은 영국 로터스사의 자문을 구해 1.5리터 DOHC 엔진을 개발해 적용했다. 새로운 엔진은 저속구간과 저회전 영역에서 국내지형에 가장 적합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고속주행 능력이 경쟁 차종에 비해 부족하다는 단점에 따라 몇 번의 파워트레인 교체 끝에 1994년에는 2.0리터 엔진을 제외하고 1.8리터 엔진을 추가 적용하기도 했다.



에스페로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를 끌었다. 수출기간 3년 동안 전체 생산량의 43%인 23만6,882대를 판매했는데, 가격 대비 세련된 디자인과 다양한 장비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현대 엘란트라와 기아 세피아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1997년, 후속 차종인 누비라가 출시되면서 단종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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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te* 2017-12-26 11:30 | 신고
2017년 11월 기준 대우 에스페로 운행 차량대수
에스페로 10,601

자료출처 - 카이즈유(www.carisyo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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