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묻혀있던 ‘8’의 명성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1989년 처음 등장했던 1세대 8시리즈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스포츠 쿠페다. B필러가 과감히 삭제된 디자인과 12기통 엔진은 당시의 8시리즈를 회상시키는 가장 큰 특징으로 여겨져 왔다.

2019년, 6시리즈가 단종을 맞이하자 럭셔리 쿠페 자리를 슬쩍 꿰차고 들어온 8시리즈. 신형 8시리즈 라인업 중 스포츠카와 세단의 타협점을 정확히 명중한 그란 쿠페 모델을 타고 궁금증을 해소해봤다.

일단 외관은 매우 과감하고 맹렬하다. 전통을 계승한 기다란 보닛과 브랜드 역사상 가장 얇은 헤드램프, 에지를 살린 육각형 키드니 그릴, 공격적인 하단 범퍼와 공기흡입구까지 어느 곳 하나 역동적인 개성을 놓치지 않은 모습이다.

전체 길이는 5,075mm로 2도어 쿠페 모델을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비율을 갖췄다. 2열 헤드룸과 사투를 벌인 듯한 C필러는 이상적인 각도로 누워있고, 늘씬한 후면부는 U자형 라인과 함께 볼륨감을 극대화했다.

실내는 다홍빛이 돋보이는 투톤 가죽으로 뒤덮여있다. 12.3인치 계기판과 10.25인치 모니터, 센터콘솔 등은 BMW의 최신 디자인으로 가득하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크리스탈 소재의 글라스 데코다. 기어노브와 공조기 다이얼, 시동 버튼 등에 적용되어 한층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완성시킨다.

시승차는 840i xDrive M 스포츠 그란 쿠페 모델로, 3.0리터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50.9kg·m를 발휘한다. 상시사륜구동 시스템이 뒷받침되는 0-100km/h 가속 시간은 4.9초이며, 안전 최고속도는 250km/h까지다.

낮은 시트 포지션을 치켜 올린 후 본격적인 주행에 나섰다. 역시는 역시. ‘8’의 성능은 딱히 흠잡을 데가 없다. 바닥에 달라붙는 차체와 탄탄한 기본기가 인상적인 어댑티브 서스펜션, 후륜 조향이 동반된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은 저속과 고속을 오가며 완벽한 팀플레이를 선보인다.

가속 페달의 반응은 즉각적이다. 속도를 높이면서 흥이 절로 나는 세팅이지만, 한편으론 심각하리만큼 안정적인 주행능력이 뒷받침된다. 든든한 브레이크는 340마력의 출력이 우습다는 듯 속도를 순식간에 잠재운다. 나름 화끈한 배기음과 함께 실내로 소음이 파고들 법도 한데, 전반적인 정숙성은 굉장히 탁월한 편이다.

덩치 큰 쿠페형 세단이지만 굽이진 고갯길에서는 xDrive 시스템과 낮은 무게중심이 더해져 BMW가 추구하는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제대로 상기시킨다. 온몸을 짜릿한 긴장감으로 휘감았던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뒤로한 채, 컴포트 모드로 GT카의 매력을 다시금 맛보며 주행을 마쳤다.

8시리즈 그란 쿠페의 경쟁 차종으로는 포르쉐 파나메라와 메르세데스-AMG GT 4도어 모델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단언컨대, 달리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BMW의 야심작 신형 8시리즈의 이상적인 퍼포먼스는 소비자들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할 것이다. 다시 깨어난 8시리즈의 질주본능은 이제 시작이다.